2011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백수린 외 지음 / 한국소설가협회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읽는 동안의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려운 마음이란.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하지는 않고 다만 방 안 가득찬 고요함 때문에 마음까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다, 난 그냥 책을 읽고 있어서 마음이 차분해 진 거지 우울한 기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참 난해했다, 내 기분, 내 마음을 해석하기가. 소설 내용이라든지, 작가의 필체라든지, 뭐, 이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타인의 합격수기나 당선 소감을 읽는 것은 우울까지는 아니더라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괜히 배가 아프다더니,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소설을 합격수기로 치환시켜 시샘을 내는 내가 참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그랬다는 거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발표나는 날이면 법대 곳곳에 합격자 명단이 붙곤 했다. 그것도 아주 눈에 잘 띄는 곳곳에. 엘리베이터 옆, 도서관 앞, 과 사무실 옆 등등.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 없는 그런 곳들에 말이다. 그런 날 법대의 공기란, 그야말로 해석 불가다. 시험에 붙은 자나 떨어진 자나, 시험을 본 자나 보지 않은 자나. 우리는 서로의 눈길을 피했고, 섣불리 서로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누구는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기도 하고, 누구는 도서관에서 냅다 뛰쳐 나가기도 했다.

그 공기에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던 그 때. 순간적으로 이 종이 쪼가리에 이름 하나 올리기가 그렇게 힘든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종이 쪼가리에 내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볼펜을 꺼내 종이에 내 이름을 적어볼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금새 생각을 접었다. 나 혼자 적는 내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아무 것도 아닌 종이 쪼가리에 이름을 올리는 일에 누구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 하기도 하고, 누구는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패배감을 맛보기도 한다.

합격자 명단 앞에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인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러면서도 용기를 잃지 말자 다짐하면서, 나는 이제 영영 이런 기회는 갖지 못할 거라며 내내 풀이 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센 척하기도 하고. 그 때 그 순간의 난해하면서도 애매모호한 공기의 분위기며 냄새며 밀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이 박혀있는 그런 숨막힘들.

그래서 뭐, 어떤 종류건 어떤 시험이건, 합격자 명단, 합격자 수기, 이딴 건 웬만하면 내 인생에서 피하고 싶다. 그 뒤로 모든 시험에 다 실패한 건 아니지만, 나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려 기뻐했던 적도 있었지만, 암튼 그런 어려운 분위기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신춘문예 소설과 그들의 당선수기를 읽는 내내 까닭 모를 힘겨움이 나를 짓눌렀다. 원인도 모를 서러움 같은 거.

한국사회의 진입장벽이 높네, 지나치게 경쟁위주로 가네, 이런 골치 아픈 말은 접어두겠다. 그냥, 앞으로는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피하고, 뭐든 그렇게까지 소망하지 말아야겠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그저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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