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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 쇼콜라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단희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다. 그녀는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모토 아래 외고와 명문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대기업에 입사한, 그야말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반면 아린은, 뭐 하나 끝까지 제대로 해내는 일 하나 없는, 지금 당장 쉬고 싶고, 자고 싶고, 눕고 싶은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리하여 결국 백수가 되어 버린, 그저 그런 인생이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좀 애매하다. 어떤 날은 단희처럼 칼 같은 데가 있다가 또 어떤 날은 아린처럼 에라 모르겠다며 나자빠져 버린다. 난 그러니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포즈로 둘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말이다.
둘 중에 확실히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단희를 선택하겠다. 이 세상 되는 일 하나도 없고 뭐 하나 쉬운 일 없고 누구든 다 자신만의 고민으로 허우적거려야 한다면, 이왕이면 그래도 잘 나가는 쪽이고 싶다. 인간관계도 어렵고 나이 들면 들수록 어른이 되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자기 진로나 먹고 살 일이나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일 하나쯤은 덜고 싶으니까.
모르겠다. 눈치도 없고 융통성도 하나 없고 타인의 감정도 배려 못하는 감정 불구자 단희가 되어 왕따가 돼야 한다고? 그걸 선택하는 게 옳은 건지. 어차피 굶어 죽지 않는 바에야 다 거기서 거긴데, 그리고 아린도 나중에 주먹밥 집 주인이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는데 오히려 아린이 나은 선택 아닌가?
에잇, 모르겠다. 선택은 너무나 어렵다.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회사에서 어떤 팀으로 옮겨야 할지, 밉상인 팀장 앞에서 내 표정을 숨기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회의 시간에는 어떤 보고를 어떤 단어로 말해야 할지, 그래서 총체적으로 회사에서는 내 이미지를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할지, 어떤 남자 친구를 만날지, 어떤 결혼 생활을 할지, 친구에게 서운한 일로 화를 낼지 말지, 화를 낸다면 어떤 타이밍에 낼지, 버럭 화를 내놓고서는 미안하다고 먼저 말을 할지 말지, 파.. 숨이 찬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우리는 주말에 혼자서 책을 볼지, 아니면 친구와 영화를 볼지, 아니면 다 때려 치고 주구장창 수다를 떨지 마저도 선택해야 한다.
대체 좀 멍... 하게 있을 수는 없는 거냐고!!!! 최근엔 이런 저런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골치가 퍽이나 아팠나보다. 그래서 아무 선택도 안 하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싶다. 그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었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선택'했나 보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우왕좌왕 머리 굴리지 않고, 단순하게 어느 한 곳에 몰입하기 위해서. 이게 나은지 저게 나은지 저울질 하는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머릿속의 잡념을 사그라뜨리기 위해서. 선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선택은 훌륭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다른 선택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만화책 같아 보이는 책 표지를 보면서 커피숍에 앉아있는 여유로운 이 순간이 행복하다. 매일 오늘만 같아다오. 물론 지금도 책 표지를 보면서 초콜릿 브라우니를 나도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