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알게 됐다. 남자들도 참 불쌍하다는 것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돌덩이다. 어떤 날은 쇳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다가, 어떤 날은 물에 젖은 미역처럼 기분나쁘게 몸에 휘감긴다. 지긋지긋하기도 할 것이고 무섭기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짐은 내 어깨의 일부분으로 굳어질 것이다. 그 무게감으로부터  파생되는 비굴함과 초라함. 그리고 누추함. 이 세상의 모든 가장들은 그래서 늘 피곤한 모습이다. 제발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낙 싶다고 소리치지만 그 외침은 허무하게 공중에서 사라질 뿐이다.

 허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들의 굴레는 그들이 스스로 만든 족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 내 군대식 문화도 그들이 만들었고 폭탄주 문화도 그들이 만들었다. 여가를 재미있게 보내지 못하는 것도 그들이고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것도 그들이다. 물론, 그들도 상사와 사회적 분위기, 공교육 등을 통해 지금의 남성으로 트레이닝 됐겠지만, 결국 회사 내 신입사원을 자신과 똑같은 남성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역시 그들이다. 상사인 기득권자를 그렇게 욕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그 자리에 올랐을 때, 그 역시 자신의 상사처럼 행동한다. 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자식을 마주한다.

 물론, 이것이 남성만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남성, 여성 불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삶이 힘겹고 재미없고 부담스럽고, 그래서 40대 이후 돌연사가 많아지고 하는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여자 중에도 고약한 상사도 있고, 홀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도 있고, 술자리에서 제일 먼저 폭탄주를 강요하는 선배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 관한 문제이지 비단 남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매일 한탄하고 불평하고 흐느껴 봐도 우리 사회의 악순환 고리는 아직도 끊기지 않았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후에 더욱 독한 시어머니로 변신하는 것처럼, 폭탄주를 억지로 마시며 신음하던 신입사원은 몇 년 뒤 자신의 후배에게 이를 강요하는 선배가 된다. 이러한 병폐를 뜯어고치고 싶은 의지가 있는가?

나는 우리사회가 이러한 의지가 없다고 본다. 폭탄주 문화가 계속 이어져 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를 수정하기 보다는 벌써 이런 문화에 적응해 버린다. 그래 놓구선 찔찔 짠다. 힘들다고. 이건 아니다.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수용하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폭탄주를 억지로 먹이고 다음날 술자리가 힘들다고 투덜대는 부장은, 너무 모순적이지 않은가.

p.s. 아직도 이런 초보적인 수준의 책이 인기를 끈다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다. 인생을 재미있게 지내야 하고 권위를 털어내야 하고 대화를 해야 되고 여가를 즐겨야 되고,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다니, 섭섭하다. 본인들이 스스로 굴레를 만들었으면서. 남탓인양, 자신만 피해자인양 위로 받는 게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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