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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말이 많다.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는 둥(에피쿠로스),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치한 표현이라는 둥(세네카), 하루의 1/3을 열정, 친구, 책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사상가가 될 수 없다는 둥(니체).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참 많은 말들을 했다.
그들의 말은 나를 위로하고 나를 감싸 안는다. 때로는 정신 차리라고 혼쭐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울고 있는 나를 질책하기도 한다. 바보 같다고. 당대 최고 지성인들의 지혜로운 말들은 그렇게 나를 기른다.
우리를 성숙케 하는 그들의 말. 이 많은 사람들의, 많은 말들 중 그들이 진정 내뱉고 싶었던 말은 뭘까? 왜 이들은 이렇게 많은 말들을 했을까. 왜 이들은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때로는 가르치며, 때로는 설득하며, 때로는 강요하며. 왜 그랬을까.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집착했다. 우리 모두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 직관적으로 대답하는데 서툴다며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철저히 고민했던 그. 그는 그렇게도 행복하고 싶었나보다. 생각을 한 걸음 진전시켜 보면, 그렇게도 행복하고 싶었던 그는, 현실 속에선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나 보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사색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그래도 행복에 다다르지 못해 한 평생 어찌하면 행복한가에 그리도 골몰했나 보다.
세네카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나 보다.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걸."
그의 이 한마디 말에 마음이 아리다. 삶이 통째로 눈물을 요구했던 그의 삶. 매 순간 순간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치받아 올라왔을 목 메는 그의 슬픔. 한 고비 한 고비 넘기가 너무 힘들어 발에 채이는 자잘한 돌멩이에는 아예 초연해진 그다. 소송에서 패하거나, 가난하거나, 유배당하거나, 뭐 다를 바 있냐는 심정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쇼펜하우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짙은 고독이 물씬 배어나온다.
어떤 대화가 그 자신의 독백만큼 지적이고 유쾌하겠느냐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엔 그 어느 누구로부터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었던 그의 처절한 외로움이 깊게 담겨있다. 천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값싼 동질감을 얻느니,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라고 청년들에게 조언하던 그였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철학자로 지금까지도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는 쇼펜하우어지만, 현실에선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다. 천재는 불가항력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으니 괜한 세간의 무식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지 말라는 것이 그의 주된 철학 흐름이다. 그의 철학에서 되려, 그가 얼마나 상처를 입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고 싶었을까. 대중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자들의 말은 지금까지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울림을 준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엔 쓰라림이 있고 고독이 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간절히 원했던 그들. 그러나 그렇지 못해 몸부림치며 혼절했던 그들의 하루하루들. 그리고 그 순간들. 그들의 말은 역설적으로 너무도 불행했으며 힘겨웠고 외로웠던 그들의 인생, 그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