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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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퇴물, 값 떨어져, 어다 써먹냐, 좋은 시절 다갔다, 30이면 인생 끝이지, 남자 37살과 같다는 둥.빨리 시집 안 가면 평생 못간다, 고를 처지 아니니까 대충 맞추라는 둥 32살 여자는 녹 슬 대로 녹 슨 고물 취급이다. 난 그냥 난데...

여자는 점점 조급해지고, 두려워지고, 무서워지고, 급기야 돼먹지 않게 여자 나이 운운하는 세상에 대해 울컥 화가 치민다. 그러다가도 위축이 된다. 어차피 이런 말들을 지껄이는 남자들 중 한 명과 사랑을 해야 하니까. 그녀는 100세 수명을 자랑하는 이 세상에서 유독 30살 넘은 여성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요지경 속에 살고 있으므로. 32살 노처녀의 심리 상태는 카오스, 그 자체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제 나는 고물이 돼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예기치 못했던 나의 운명. 더 좋은 사람과 평생을 지내려고 했던 것뿐인데. 더 합리적이고 성숙하고 나이스하고 젠틀하면서도 배려심 있는 그런 사람을 찾기 원했던 것뿐인데... 이제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니. 누군가와 달콤한 사랑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답답하고 모든 문제는 더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엉망진창이 된 머리는 더 이상 생각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이제 무작정, 대충 고르기 시작한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아니어도 '남자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하면서 두세 번 더 만난다. 이놈이 시원찮긴 하지만 여기서 헤어지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지 않을까 주판알을 튕겨본다. 마음에 딱 들지 않으니 막상 결혼하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쿨하게 헤어지지도 못하겠고, 그녀의 저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러니 그녀의 머릿속은 오죽이나 복잡할 것이며, 영혼은 또 얼마나 피곤할지. 그놈의 성질이 문제라고 그래서 한심한 코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온갖 애교와 아양으로 역겨운 웃음을 날린다. 현명한 행동일까, 거짓 가면일까. 그녀의 고민은 가면 갈수록 광활해진다.


게다가 '멋진 남자'의 기준도 20대 초반과는 확연히 다르다. 키가 172cm여도, 약간 대머리여도, 이런 것들은 이제 다 부질없어진다. 탄탄한 직업에 부모도 웬만큼 재산을 갖추고 성격도 싸이코가 아닌 한, 그러면 괜찮은 남자다. 참 간단하다. 그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그의 조건을 사랑하는 걸까. 아님 적당한 조건을 가진 그를 사랑하는 걸까. 조건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의 매력에 경제적인 능력 등을 포함해서는 안 되는 걸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의문들에 치여 이제 그녀는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 모르겠다! 그냥 이 정도면 됐으니 결혼하자, 마음 먹어도 쉽지 않다. 내 나이에 이 정도 조건은 다시 없는 기회라며 조급한 마음으로 끼워 맞춘 사랑이 사랑일까? 그렇다고 세상이 정한 기준으로 퇴물인 내가 누군가를 더 기다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이렇게나 복잡한 심정의 그녀와 결혼한 그 남자는 과연 행복할까. 무엇인가에 떠밀리듯 결정한 결혼, 과연 사랑일까.


사랑이 아니라고, 너는 지금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라고 그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열등하고 하자 있는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빛과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홀로 태연하고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비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혼자 있기 두렵고 쓸쓸해서, 고독하고 외로워서, 혼자 사느니 그래도 70점 정도의 사람을 만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그녀의 생각을 누가 코웃음 치며 비웃을 수 있을까.


다만 그저 씁쓸할 뿐이다. 32살 노처녀의 사랑은 그래서 항상 쫓기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32살 노처녀의 서러운 처지를 겪지 않기 위해 28, 29살 여성이 조바심 내며 결혼을 하는 것도. 세상이 말한 결혼적령기의 여성(약 27~32 정도인가? 이 기준도 불분명 하지만...)들이 모두 무엇인가의 시선에 얽매이는 것도 안타깝고, 그녀들과 결혼한 남성들은 대체 어떤 사랑을 꿈꿨는지. 32살 노처녀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면 진실한 사랑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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