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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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따르면 먼저 돈이 필요하다. 그녀는 연간 500파운드 정도의 고정적인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조건은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지적인, 예술적인, 그러나 비생산적인(돈을 버는 것을 생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꼭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래야 한 주제에 관해 여유를 가지고 깊게 고민할 수 있고, 고민의 결과를 타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런 고민의 시간들 속에서 굶어죽지 않을 수 있다. 지적 자유가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다는 그녀의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니 맞는 말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자유는 공허할 뿐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고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구구절절이 말로 설명할 필요 없겠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고요히 생각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은밀한 장소. 이것 역시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누군가가 픽션을 쓰려면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여성에게는 이 문제가 절실하다. 언제부터인지 추정할 수도 없이, 여성은 거실이나 부엌에서 타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이 역시 구구절절이 논할 필요 없겠다. 생각해보니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란 꼭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 그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그 누군가의 진정한 방을 만들 것이다. 우리가 18세기 여성의 소설이나 희곡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성들은 꾸준히, 독자적인 방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울프가 살았던 20세기 초반보다 사정이 훨씬 나아졌지만, 글쎄. 애엄마가 가질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란 과연 충분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신뢰, 기대감, 지지. 아니 기대나 지지가 아니더라도 핍박을 하지는 말아야겠다.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키츠와 프롤베르와 그 밖의 천재적인 남성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그녀에게는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자신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핍박을 받고서도 온전히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냐고 울프는 우리에게 묻는다. 무관심도 인간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옥일 것이다. 지옥은 타인이라고 말했던 사르트르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이라면. 그는 자신감을 잃고, 위축될 것이고, 두렵고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그 단계를 지나면 인성이 왜곡되고 비뚫어지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은 남자아이들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순종적인 미를 강조하는 교육을 학교에서, 집에서, 암암리에, 무의식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갖는 믿음이 얼마나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가를 생각하면, 우리가 갈 길은 너무나 멀다.


갈 길이 멀든, 이미 온 길이 꽤 되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꾸준히,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가는 것일 게다. 울프는 그 미래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은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기회를 이전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노예처럼 남성을 모방하면서 여성은 이 기회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더 가난해야 한다. 가난이란,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을 뜻한다.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 독립적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건강과 여유, 지식, 기타의 것들을 소량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돈. 그러나 이 이상은 안 된단다. 1페니라도 더 벌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단호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순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순결이란 직업을 통해 살아갈 만큼 충분히 벌었을 때 돈을 위해서 두뇌를 파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즉,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그만두거나 오로지 연구와 실험을 위해 종사해야 한단다.


그녀의 이 정의를 들었을 때, 머리를 맞은 듯 띵~ 했다. 가난이란 살아가기 충분한 돈을 버는 거라니! 가난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벌었을 때 그만 둬야 하다니! 와우~ 모두가 기를 쓰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요즘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이렇게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거구나! 무엇인가를 뒤집으려는 고민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아무튼 더욱 가난하고, 더욱 순결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마구 치솟아 오른다. 배지나 훈장, 학위 등을 신랄하게 조롱하면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충성심으로부터 탈피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재미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방에서 어찌하면 더 가난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들이. 푸훗,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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