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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오늘은 회사에서 조찬이 있다고 해서 아침 7시까지 회사에 왔다.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와야 된단다. 나 참 어이가 없다. 왜 돈 쓰면서 사람을 혹사시키는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해봐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남들 일어날 시간에 출근을 했으니 가뜩이나 잠이 많은 나의 머리는 점심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여전히 띵띵하다.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 이럴 때 호어스트 에버스라면 어떻게 할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언제나 나의 상상력을 초월하므로. 길을 잃고 차비도 없고, 게다가 더 이상은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할 때.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호어스트 에버스는 내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일단 눈에 띄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하고 집 주소를 알려주며 배달을 요청한다. 그리고 배달하러 나가는 아저씨에게 이왕 피자를 배달하는 길에 자기도 같이 배달해 달라고 조른다. 정말 기가 막히지만 탁월한 해결책이다. 나는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해 본 방법. 절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지금 뭐하는 거야 호어스트,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면 어떻게 해?
아차, 그렇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그런데, 시간 좀 낭비하면 안 되나? 어짜피 내 시간인데.
가끔씩, 아주 가끔씩 자신의 게으름을 질책하다가도 금새 자신의 방만한 생활 리듬을 잃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 대단하다는 감탄사만 절로 나올 뿐이다.
게으름의 지존, 의지박약 최고 권위자, 시간낭비의 달인. 게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지저분한 방안에서 오랫동안 참기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이런 호어스트의 모습은 감동적이라거나,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무언가 나사 하나가 풀린 사람 같고, 그가 보여주는 매일매일이 황당할 뿐이다. 그는 빡빡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한심한 편에 더 가깝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18년 째 호어스트는 무대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하고 있으며 그의 낭독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TV 시청료를 내기 싫어 조사관을 돈으로 매수하려다 TV로 매수하게 돼 버린 호어스트.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TV 볼 시간이 줄어들게 됐다며 흐뭇해 한다. 이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따뜻한 애정을 보낸다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어서 일 수도 있고 신선해서일 수도 있고 그 발상이 기가 막혀서 그럴 수도 있고.
어찌 됐던 간에 호어스트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다행이다. 그의 모습 속에서 아주 조금, 나의 모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청소를 하지 않아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 일주일 넘게 노숙을 한다거나, 매번 버스에서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명종 시계를 목에 걸고 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침잠 1시간을 위해서라면 연봉 천만원 정도의 감소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나와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
서평을 오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후 5시가 돼서야 글을 마무리했다. 아직도 내 머리는 띵띵하다. 지겹고 따분한 금요일. 이럴 때 호어스트라면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