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개인이 전기(傳記)작가를 갖는다는 것은, 즉 누군가가 내 인생을 전기로 써 준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요, 행운일 것이다.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안다는 것은 참 흔하지 않은 일이다. 부모도 어려서의 일만을 파악할 뿐이요, 형제도 그렇다. 친구도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할 것이고, 이는 부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자신이 벌인 활동과 기억을 정리해줄 전기 작가가 없었다. 그는 서로 다른 그릇들에 자신의 전기를 흘려 담아버린 것이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나서 그의 어깨를 어루만진 다음 각자의 일상으로 뿔뿔이 사라져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들은 자기 일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각기 다른 그릇에 흩어져 버리고 마는 한 사람의 일생. 그 조각나버림이 안타까워 알랭 드 보통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 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 고달프고 지난한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것은 단연 '애정과 관심'. 애정이 있어야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얄팍한 관심으로는 한 사람을 오롯이 알기에 부족하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어린시절부터 가족관계, 식습관, 성격, 로맨스, 가치관, 철학 등등. 심지어 성격 상의 단점이나 깎아버린 발톱 등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까지. 그 모든 것들을 혐오하지도 않고 질려하지도 않을 만큼의 충분한 애정이 필요하다, 한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선... 그러한 관심을 '인내'라 표현하고 싶다.

인내심을 가진 결과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후. 그 때는 본격적인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고 그에 공감하는 것.  알랭 드 보통은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다. '베개 이론'을 설명하면서. 베개 이론이란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남들의 경험 한 조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타인의 심리적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베개 밑을 보듯 뻔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 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 또한 걸려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많은 밤들을 견뎠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알랭드 보통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베개 아래 놓여 있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렇다면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된다. 아이를 잃은 어미의 심정을,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다른 이의 경험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고 충분한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한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이야기 한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바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면 안 되겠구나...

어쨌건 저쨌건, 이런 저런 고비를 넘어 한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됐다고 생각되는 경지에 이르른 다음. 그 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의지'. 흔히 우리는 이 사람과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처음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보내지 않는다. 마치 서로를 지겨워 하는 오래된 연인처럼. 그들은 처음 서로에게 보냈던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상대방의 일에 흥미를 잃는다. 그저 서로를 밋밋하게 바라볼 뿐.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알고자 하는 의지는 줄어든다.'

더 세밀하게 알려하지 않고,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무관심. 서로에 대해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커녕,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를 주고 받으며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는 시간들. 이미 나는 너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교만함.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는 이전의 관계 쪽으로 서서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찌된 역설인지...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았다.', 누군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라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은 듯하다. 그것이 남녀 관계든 아니든. 동료, 친구, 상사, 심지어 가족까지. 나, 누구를 성급히 판단한 적은 없는지.. 혹은 누군가 나를 함부로 규정지어 울고 싶은 날은 없었는지. 제대로 나를 알아주지 않아 외롭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있었는지... 반면 내가 조급히 판단해버린 그들도 나처럼 아파했겠지...  

나를 알아줄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리고 내가 알아줘야 할 사람은 또 누굴까. 살면서 그런 지기들을 몇이나 만나게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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