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 여자가, 결혼을 해서, 산다는 것.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행복하기는 커녕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살을 할 만큼이나... 책이 너무나 많은 일을 한꺼번에, 그것도 이런 상처 쯤이야 온 대한민국 여성의 일상이라는 식으로 쏟아내 사실 결혼에 대한 큰 회의가 든다. 철없는 소녀처럼 결혼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주인공들의 고통만은 비껴가련다.

이들의 아픔에서 비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자살을 선택한 영선의 결혼생활부터 살펴보자. 희생. 그녀의 문제는 '희생'에 있었다.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고 남편의 성공을 뒷바라지한 그녀의 헌신. 희생과 헌신? 그래,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덕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먼저 상대가 그만한 희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나 한결같이 상대의 헌신에 대해 마음 깊이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성공에 비해 초라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귀찮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세상 누구보다 소중히 여길 사람. 그래야만 헌신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상대를 위해 자신을 버린 사람은... 희생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억울해 하지도 말고, 보상받으려 하지도 말고, 그저 줬으면 준대로 끝나야 한다.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라면 절대로 자신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훗날 허무한 자기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울 테니까. 더욱이 그 희생이 도피처가 돼서도 안 될 것이다.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겹다고 해서, 결혼생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하기가 힘에부치다고 해서, 혹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뒷바라지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것은 평생 더 큰 한을 가슴에 떠안는 꼴이다. 나는 여자니까 당연히... 라며 무개념의 진공 속에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상대방의 헌신에 한결같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또 자신의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을 만큼의 넉넉함'

이혼? 그래 이혼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다. 유학생 부부들이 다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부인이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하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왜 여자만 가사일과 육아를 책임져야 하냐며 왜 여자는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냐며 당당하게 싸운 혜완의 선택이 훨씬 용기있다. 애초에 여성을 가정부로 여긴 남자와 결혼하지를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하지만 싸움에도 대상과 방향이 중요한 듯 하다. 불합리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은 때때로 자신을 힘겹게 만든다. 혜완이 잘 정돈돼 있는 경혜의 집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가정'을 그리워하듯 말이다. 여자는 집에 들어앉아 살림이나 하기를 바라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으면 어땠을까. 그 변화에는 물론 자기 자신의 변화와 양보가 포함됐어야 했고. 혜완이 전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였다. 상대방만 잘못됐다 비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도 불완전한 존재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품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었다면... 물론 이런 아쉬움이 혜완은 이혼당해도 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우가 혜완을 향해 '왜 그가 이혼하고 싶어했는지 알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마치 주먹으로 때려놓구서, 상대방이 아파하며 신경질을 내니까 신경질을 낸다고 나무라는 꼴이다. 우리 모두는 성숙한 인간이 아니며, 그래서 결국 각 개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동시에 자신도 양보할 줄 사람. 그리고 각자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힘껏 애쓰는 사람.'

허영 덩어리 경혜는 어떤가. 그녀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조건에 치우쳐 선택한 결혼이었고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황폐하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은 경혜를 재미없어하며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경혜도 외로움을 못 이겨 같이 맞바람을 피운다. 이혼을 요구할 수 있고 위자료를 받을 수 있고 법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확보했다 해도 경혜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폐할 것이다. 결혼을 할 때 더욱더 고민해 봐야 할 사항은 능력도 조건도 아닌, 사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 진다.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고 쭈그러져 가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타인의 눈이 아닌 자신들만의 행복을 열심히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나 또한 상대에게 이런 사람일 수 있을까? 여성 해방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거룩한 개념들을 떠나 남과 여 모두 이런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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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언니 2009-04-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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