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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왜 나는 글을 쓰고 싶어할까?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만 해왔던 일. 그리고 이제 진짜 시작해야 할 일. 글. 그런데 정작 본질적인 문제, '왜' 내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지에 대해 그동안 차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던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마음속 심연을 들여다 본다.
첫번째 이유는 자유로움이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종속되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볼 필요도 없는 무한한 자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고 그것들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싶다는 욕망. 말도 안 되고, 심지어는 한심하다고 까지 생각되는 온갖 구속과 규제와 억압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규격화'된 모든 포장들, 겉에서 보기에는 번지르르 하지만 안에서는 질식하기 직전의 내가 담겨 있는, 꽉 막힌 상자에서부터 탈출하고 싶다. 그 탈출구가 바로 글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 글이란, 단순히 글 자체가 아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그래, 이것 저것 꾸미지 말고 뼛속까지 솔직히 뒤집어 보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현재의 삶,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이 한심한 나날들을 뒤집고 싶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곳에 나와,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재미없는 일로 시간을 떼우며 괴로워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쳇바퀴. 학창시절에도 그랬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로보트 같은 비인간성. 그런 비인간성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으나 결과는 '회사'라는 더 끔찍한 쳇바퀴로 옮겨왔을 뿐이다. 난 아무래도 남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삶에서는 완벽한 부적응자인가 보다.
단순히 '자유를 찾고 싶다'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바람직하다', '성공적이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다른 면에서 바라보면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진보나 발전이 퇴보나 후퇴일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성공하기 위해, 혹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미리 만들어진 터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터널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을 실패자로 여기는 시선들. 게다가 환기도 안 되는 그 터널 안에서도 조금의 답답함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외쳐보고 싶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내 생각만 맞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가치관에는 옳고 그름이 없는 법이니까. 다만 그저 답답해서 말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 뿐이다. 인간과, 사랑과, 애정과, 예의와, 물질 이외의 소중한 가치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치는 사람들로 인해 나같은 사람들이 받는 상처들에 대해서 말이다. 혹 모른다. 터널 밖으로 튕겨져 나온 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한 저항하고 싶은 걸지도. 온갖 '규격'에서 벗어난 것을 이상한 것으로, 별난 것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의 그 이상한 고집이 진저리쳐지게 무섭다. 싫은 것은 싫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다. 같은 내용을 말해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저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고집쟁이', '다루기 힘든 아이', '까칠한 불만투성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글로 말하면... 아마 나에게 다른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내 생각이 너무도 낱낱이 밝혀지기에. 너무 솔직해 무어라 변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제대로 까발려지는 낯선 떨림과 수치심. 하지만 이에 대한 공포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가 남았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에도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고 싶다는 욕심. 가능할까? 근대 미술의 어머니,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는 "내 작품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실천했다. 나는 그녀처럼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내 글로 인해 눈물짓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내 글로 인해 따뜻함이 전해졌으면... 이렇게 조악한 끄적거림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지, 아니 무언가를 쓸 수나 있을지 사뭇 걱정이 된다. 자유롭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타인의 감동을 구하는 엄청난 욕심까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