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양장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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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옥이라는 담벽 안에 갇히게 된다면 어떤 게 가장 힘들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유가 없다는 것. 자고, 입고, 먹고, 보고, 가고 싶은 이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하지 못 하다니!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답답함과 신경질적인 짜증이 한없이 밀려온다.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더위'라는 녀석도 수감생활에 있어 만만찮은 적수인가 보다. 신영복 교수는 뜨거운 한여름, 숨이 턱턱 막히는 수증기 같은 불볕 더위는 함께 생활하는 타인을 증오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증오를 산다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넘치고 넘치는 시간도 삶을 한없이 늘어지게 만들 것 같다. 어느 공휴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무 할 일 없이 하루종일 멍하니 TV만 보다가, 문득 오늘 하루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그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하루도 이런데 1년, 2년, 10년은 오죽할까.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것? 그것도 못 견딜 것 같다. 재미있는 일도, 신나는 일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시간들. 헛되고 헛되다를 반복해도 덧없이 사라지기만 하는 그 지옥 같은 시간들...

그러나 신영복 교수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그 시간들을 '성숙'과 '성장'으로 가득 채웠다. 평생을 하나에만 집중해온 장인처럼 묵직하고 깊은 사람.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거나 파르르 떨지 않는 사람. 화내고 비난하기 보다는 타인을 이해하고 그에게 공감하는 사람. 신 교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성찰을 이루었다.

'인간적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단지 형이라는 혈연만으로서 형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너의 형이 되기를 원하는 한, 나 자신의 도야를 게을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해본다.'는 고백이나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 수 없다. 생활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독백은 바쁘다는 핑계로 피상적인 사고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의 글을 보면 일상이 단조로워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니 신선한 글을 쓰지 못한다는 나의 푸념은 단순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감옥에서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보고 느끼고 행하고 있지 않은가. 매일 눈을 떠 회사에 가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고 잠시 쉬다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떠 회사에 가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고 잠시 쉬다 잠을 자고.... 하는 지루한 일상이라 화두가 없다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매일 회사에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신문과 책을 통해, 하다 못해 친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속에서도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되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나의 생활이 단조롭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간에 그 하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때문이다.

좀 더 생각해 보니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 깊은 사색에 잠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을 비우고, 내 마음에 가득한 욕심과 불만을 버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떨쳐냈을 때, 그래서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신 교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를 이루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도 비우고, 욕지거리로 상스러운 수감자들에 대한 비난도 비우고, 여기서 뭐하는가 하는 자책과 세상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워버렸기에 그는 많은 생각들을, 깊게 할 수 있었다. 천천히, 가만히, 조용히 혼자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비웠을 때야 비로소 채워질 수 있는 법인가 보다.

비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직 30살. 그리고 2009년도 아직 2월. 조급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 인생에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낙심에 빠져 삶을 단정짓기에도 성마른 시기. '비움'이야말로 '채움'의 전제. 지옥같은 시간을 보낸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처럼 나만의 사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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