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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스토리
알렉산더 워커 지음, 김봉준 옮김 / 북북서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저자는 오드리 헵번을 깊이 사랑하게 됐나보다. 구절구절마다 헵번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녀의 작품 한 번 본 적 없는 나조차도 책을 덮고 나니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평가에 풍덩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를 나의 우상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녀에 대한 저자의 평가 그리고 그녀 측근들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녀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했으며, 그녀의 생기발랄한 웃음은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었다. 순진한 눈망울은 그녀를 공주로 만드는 데 충분했고 전쟁과 불우한 어린 시절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여줬던 낙천적인 모습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그녀의 청교도적인 책임감과 성실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명성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는 헵번의 배려와 희생. 어떤 남자라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엉뚱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 그렇다면 그녀에 반해 나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객관적인 자료조사를 위해 내 주변의 지인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평들이 나올 것이다.
까칠한 면이 있어서 사사건건 그냥 넘겨주지 않고 분쟁을 일으키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비롯해 화장실이나 주변 환경, 매연, 담배연기 등에 극도로 예민해 비위 맞추기 어렵다. 날카로운데다 고집이 세서 한 번 화가 나기라도 하면 지지 않고 끝까지 말대꾸를 하고 게다가 이해심이라든지 참을성이라고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아마 이 정도 평이 공통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너무 내 추측만을 적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장난삼아 했던 성격 검사의 구절도 한 번 적어 본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대충 그 테스트는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지나칠 정도로 확실하다.’는 정도로 나를 평가했던 것 같다. 한 번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과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으니까 이 평가도 인정한다. 한 친구가 나한테 했던 말도 생각난다. “야, 네 말이 다 맞아. 네가 옳아. 근데 너는 정치를 못해.” 그렇다. 이것도 인정하련다. 내가 옳아도, 내 주장이 타당해도 난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못해서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으니까.
그래, 그렇다. 나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는 이러해서, 또한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나의 조직 생활은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다른 이들은 ‘더러워서 참는다.'고 지나치는 일을 나는 꼭 맞서 싸워서 일을 크게 만든다. 그래서 미운털이 박혀 더 불합리한 일들을 당하고 그러면 또 싸우고 더 크게 미운털이 박히고... 악순환이다. 그래서 나도 노력 많이 해봤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화나도 참아도 보고, 교언영색하며 웃어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지내도 봤다. 지난 몇 년 간 엄청엄청, 무진장 노력 해봤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시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조직에 순응하기 위해, 혹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가면을 쓰지는 말자!‘다. 100번을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는 못해주겠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면서 나만 유독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자책도 해보고, 난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알게 됐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잘못된 거고, 그런 것들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을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함이 당연하고, 나는 단지 후자에 속해있을 뿐이란 사실을. 그냥 이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단지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 생각하며 쪼그라드는 것이 서글프다.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몸을 사리게 되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소심해 지는 내 모습이 가련해 보인다. 아무튼 내 결론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연연해하지 말자다.
그래도 한 사람. 그 사람으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그이가 내리는 평가는 부디 긍정적이었으면 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기준 미달이지만 그 사람으로부터는 나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고, 옳은 삶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현실은 비록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그 사람 앞에서는 당당하고 떳떳하고 자신감 있었으면 한다. 당신은 나이를 먹어도 세파에 쓰러지지 않고 항복하지 않았노라, 그런 칭찬을 듣고 싶다. 그 단 한 사람... 바로... 나... 한 치라도 속임없이 솔직하게, 모든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놓고, 마지막 날 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했을 때, 너, 그래도, 한 인생 멋지게, 아름답게 살았다고 자축하고 싶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았음을 자부하고 싶다. 그 평가가 어쩜 이리도 힘든지. 그 한 사람의 그 평가를 위해 나의 방황이 이렇게 깊고 끝이 없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도 기로에 서 있다. 다시 예전 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눅 들지 않기 위한 명함’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고 빨리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친구들과 비교해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서도 안 될 것이다.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도 해야 하고 이 어중간한 시점에 다시 곤두박질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려야 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지만 10년, 20년 후에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이것이 나의 ‘결코 소박하지 않은’ 소망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는 선행도 더 쉽고 더 큰 법이라 생각한다. 마치 오드리 헵번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처럼... 나의 눈물은 누구를 적실 수 있을지...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았으면...’이라고 책 앞장에 적힌 문구는 아마도 내가 나의 이런 소망들을 무의식적으로 꺼내 적은 것이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부디 그 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할 수 있는 한 크게 숨을 몰아쉬며 간절히, 간절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