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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각 언론과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긴장감이 넘치는’, ‘생동감으로 가득 찬’, ‘긴박감으로 눈을 뗄 수가 없는’ 등등 역동적인 단어들을 줄줄이 열거했다. 굉장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사로잡는다는 평이 넘치고 넘쳤다. 묻고 싶다. ‘당신도 정말 이런 느낌이었는가’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덮고 난 후 나의 감상은 많은 사람들이 남긴 평과 엇갈렸다. 급박하고 긴장감이 넘치기 보다는 밋밋하고 아득한 느낌이었다. 활기가 넘치던 거리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아 스산하고, 건물은 마치 부드러운 케이크를 누군가 손으로 짓누른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고 묘사돼 있어도 난 그저 그랬다. 현실이 아닌 소설로만, 그것도 나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때로는 무지가 인간성 상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요즘 신문과 뉴스를 잘 보지 못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대해 자세히 보고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소설과 비슷한, 너무도 같은, 가자지구의 현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장면 1
갑자기 총격이 시작됐다. 사춘기 소년들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 소년이 다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다. 그러자 같이 달리던 친구가 총에 맞은 친구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친구를 안은 소년의 머리를 잔인한 총알이 관통했다.
#장면 2
몇 미터 앞 다리 위에 한 남자가 총을 맞고 숨져 쓰러졌다. 한 남자가 숨진 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리로 향한다. 아직 총구를 겨누고 있던 저격수들은 남자를 향해 총알을 발사한다. 시신에 총알이 박히는 소리가 들린다. 또다른 한 발은 50센티미터 차이로 남자를 비켜갔다. 어딘가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식은땀을 흘린다.
무엇이 소설 속 이야기고 무엇이 가자지구의 현실인지 구분할 수 있는가.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위 장면 중 하나는 허구고 하나는 '엄연한 현실'이다.
가자지구에 낭자한 핏자국들과 많은 사람들의 오열을 눈으로 보고 읽으니 그제서야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책은 허구라기보다는 현실을 담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소설을 읽은 후 아득했던 나의 머리는 아찔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했다고 해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트라우마적 상황을 밋밋하다고 느꼈다니...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나 아닌 바로 내 옆 사람 앞으로 단 하나의 총알이 빗나가기만 해도 호들갑을 떨며 기절했을 텐데 말이다. 전쟁에 대한 무지가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이 인간의 감수성까지 증발시키는 순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분노, 민간인을 볼모로 한 각 이익세력에 대한 비판 따위는 무지로 인해 사라졌다. 허탈하다.
나와는 반대로 사라예보의 시민들은 공포로 가득찬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을 노리는 총알 세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다리 위에서 희생당한 이름도 모르는 자의 시신을 수습한다. 길거리에 시체가 나뒹구는 상황은 '정상적인 사라예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므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첼리스트는 <아다지오>를 연주하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듣고 꿈을 꾸며 각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에 빠진다. 숨만 쉰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만 살아남는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인간이기에...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다고 주저리 주저리 말하지는 않으련다. 인간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말로 내뱉어 정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뿐이다.
이들처럼 스스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어느새 신경이 무뎌지고 둔해졌으니... 속상하다. 나이를 먹음이 슬픔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평생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외모를 가꾸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청춘의 싱싱한 지각과, 부조리에 대한 치열한 분노와, 그리고 세상을 향한 순수한 눈물 한 방울. 젊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50세, 60세가 되어도 '이런 젊은이'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이다. 평생 진정 살아있기를, 그리고 약한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예민함을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