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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다들 흔한 이야기들을 말한다. 엄마의 꿈. 고달픔. 자식에 대한 사랑. 헌신. 엄마의 아픔과 눈물. 엄마의 엄마. 엄마의 사랑 등... 그리고 모두들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난 이기적이어서일까? 물론 우리 엄마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세상이 모두 나를 외면해도 끝까지 내 편이 되 줄 그 분. 그 분의 존재를 느끼며 벅찬 눈물을 꾸역꾸역 참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머릿속을 뒤덮은 생각은, '내가 엄마가 된다면...'이라는 주제였다.
'나의 엄마, 그리고 모두의 엄마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아니 사실은 '그렇게 해야만 되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우리 엄마처럼?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고 머릿속은 풍랑을 맞은 것처럼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차분히, 그렇다면 과연 엄마처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의 인생을 단 몇 줄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책을 바탕으로 대충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봤다.
<엄마처럼 산다는 것이란>
1) 아파도 참고
2)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3) 자식들은 사무적으로 대하고
4) 아무도 그녀의 인생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런 존재.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처음부터 엄마였던 존재.
정리해 놓고 보니 1), 2), 3)은 다 4)에 포함되는 듯하다.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고, 돌봐주지도 않는... 하지만 늘 희생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퍼줘야 하는 사람.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망설임 없이 단호한 No! 하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도 처음에는 나처럼 주저 없이 '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엄마는 어떻게 '엄마'가 됐을까.
모성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좋은 것만을 주고 싶은 마음. 강아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비교 자체가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면 강아지에게도 맛있는 것을 주고 싶고 아프면 걱정이 되고 하는데 하물며 자식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조금 부족해도 자식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 모성애가 어머니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겠지... 아무리 모성애를 발휘한다고 해도 엄청난 희생과 헌신을 다 감내할 수는 없지 않을까. 자식들이 '엄마가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방으로 턱 들어가면 그녀도 화나고 섭섭했을 것이다. 열이 펄펄 끓어 도저히 아침에 일어날 수 없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갖고 싶은 화장품이며 옷을 사지 못해 애처럼 속상한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니며 뭐든 다 해줄 것 같던 남편이 꽃 한 송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때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눈물이 핑 돌 때도 있었을 것이다. 섭섭하고 힘들고 속상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엄마는 그렇게 지금의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모래알 같던 서글픔이, 다음엔 자갈 같은 아픔이. 그런 한숨이 기어이 바위가 되면서, 그러면서 그 무게들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지 않았을까? 새색시와 첫 아이의 엄마와 자식을 출가시킨 어머니가 각기 감당하는 무게가 모두 다르듯이. 고달픔에도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나보다.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이 땅의 모든 딸들처럼 엄마의 인생을 잘 모르기에, 엄마가 어떻게 완성돼 가는지 짐작도 못하겠다. 결국은 엄마에게 소홀했던 이 땅의 모든 무심한 딸들처럼 흔한 감정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엄마의 꿈. 고달픔. 자식에 대한 사랑. 헌신. 엄마의 아픔과 눈물. 엄마의 엄마. 엄마의 사랑 등... 결국 지금의 우리 엄마는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뜨거운 눈물이 핑...하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