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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을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다. 피신은 태평양 한가운데 호랑이와 단 둘이 남게 된다. 호랑이가 배고프지 않아야 나를 잡아먹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내가 산다. 그래서 피신은 열심히 물고리를 잡아 호랑이에게 준다. 증류기로 물을 만들어도 호랑이가 먼저다.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살린다는 의미가 이런 거구나... 살다보면 이런 모순된 상황에 부딪치곤 한다. 회사생활, 사람과의 관계, 심지어 사랑에서까지...
호랑이를 살려야 하는 또다른 이유. 바로 고독이다. 호랑이가 죽으면 피신은 망망대해에서 철저하게 혼자로 남는다. 고독은 절망이다. 절망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라고 피신은 혼자 중얼거린다.
인간에게 고독이란 죽음보다 두려운 것인가 보다. 혼자라는 느낌,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주변의 왕따들. 이들은 사실 외롭다는 느낌을 넘어 공포로 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호랑이의 상태가 좋지 않자 피신은 다가가 호랑이를 살핀다. 그리고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혼자 남겨질 공포가 더 컸던 탓이다.
인생이란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이다. 적이 살아야 내가 산다는 것도 그렇고 적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도 그렇다.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인간이지만 모순투성이다. 나약하긴 얼마나 나약한지... 이 소설은 인간의 나약함의 극치를 모두 쏟아 보여준다. 태평양 속에서 피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물고리를 잡고 물을 만들고 기도를 하는 것 뿐이다. 인생에서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짜 적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붙잡고 사아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