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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정글 2
캔디스 부쉬넬 지음, 서남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섹스 앤더 시티로 잘 알려진 캔디스 부쉬넬. 그녀가 이번엔 ‘립스틱 정글’로 돌아왔다.
주인공 빅토리는 패션의 정글 뉴욕에서 소위 ‘잘 나가는’ 패션 디자이너. 모두들 그를 만나고 싶어하고 인터뷰하길 원한다. 매번 인터뷰에서는 ‘일이 결혼과 아이를 포기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빅토리는 생각한다. ‘여자의 경우, 왜 결혼과 아이가 없으면 일에서 성공했음에도 실패한 삶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oo 부인, oo 엄마라는 것은 남성이 자신의 몸과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채운 족쇄다.
또다른 주인공 웬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사 사장인 웬디는 그녀가 제작한 영화마다 흥행카드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문제는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당연히’ 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루마니아로 출장을 갔다 온 것이 웬디를 모성애도 없는 일 중독자로 만들었다. 슈퍼우먼 콤플렉스가 또 한명의 여성을 끝도 없는 벼랑으로 떠민다. 바쁜 사회생활에 시달리고도 가정에 소홀했다는 죄책감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고질적인 질병이다. 여성은 또 하나의 무거운 족쇄에 메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발목을 잡는 족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족쇄는 부메랑이 되어 남성에게 날아간다. 여성상을 만든 족쇄는 무의식적으로 이와 반대되는 남성상을 만들었다. 웬디의 남편 셰인은 전업주부다. 그는 아이를 키우고 가사일을 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낸다. 셰인은, 성공했지만 일만하는 웬디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웬디는 이런 상황이 분하고 억울하기만 하다. 무능력한 셰인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는데 양육권도 뺏기고 매달 양육비도 보내야 하며 게다가 셰인에게 일자리를 찾으라고 강요하지도 못한다. 남편의 일 중독으로 힘든 전업주부들에게 법이 위의 모든 것을 허락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무능력한 남편을 갖고 있는 커리어 우먼들은 이런 상황이 억울하다. 남성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족쇄가 남성도 가두고 있고 여성도 얽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몸의 차이가 만들어낸 족쇄는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도 모를 만큼 얽히고 설킨 그물처럼 남성과 여성 모두를 억압하고 있다. 누구도 이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것은 심지어 날카로운 시각으로, 여성으로 살아가기의 어려움을 보여준 캔디스 부쉬넬도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세계, 뉴욕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자축 파티를 연다.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며 웬디는 이곳을 ‘정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캔디스는 ‘립스틱 정글’이라 정정한다. 립스틱 정글이라니. 여성이 지배하는 정글? 아니면 여성이 승리하는 정글을 의미하는 것인가? 남성도 여성도 정글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고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립스틱이나 넥타이 정글이 아닌 정글은 그저 정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