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피천득을 사랑한다. 그의 수필은 영롱한 수정 같고 밑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냇물 같다. 글이 맑다는 것은 작가의 영혼과 생각이 맑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사람들이 피천득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수필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인간 피천득’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는 욕심 없는 사람이었다. 부귀나 권세를 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책을 하루 종일 읽을 수 있는 자기 방 하나로도 그는 행복했다. 그는 가난했다. 하지만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혹여 자신은 용돈이나 책값, 생활비 따위로 마음의 자유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5월을 사랑했으며 딸 서영이와 함께 눈 내리는 서울의 겨울거리를 걷고 싶어하는 낭만주의자였다. 소소한 것으로부터 인생을 풍요롭게 할 줄 아는 사람.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그저 빛깔을 바라보기 위해 포도주를 주문하는 그는 그야말로 멋을 아는 사람이다.

이에 비해 나의 마음은 참으로 각박하다. 돈이 없고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친구들과 만나 정담을 나눌 여유마저 버렸다. 꽃 한 송이 살 바에야 그 돈을 아껴 학교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는 것이 지금 나의 삶이다. 나는 아무래도 피천득의 여유를 따라가지 못할 듯싶다. 돈이 없어도 멋을 잃지 않는 삶이란 이처럼 힘든 일이다. 나도 피천득처럼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정작 나를 가로막는 것은 나 자신인 것을... 나의 욕심과 나의 현실적 계산이 나를 겹겹이 가로 막는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피천득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그 분의 생이 더욱 아쉽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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