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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수필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작가는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기어이 생각해내 수필을 쓴다. 독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작가의 사색들을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맞이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모든 감정들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을 읽으면 마음이 아리다. 속이 부대낀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의 수필을 읽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부대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라는 수필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집중호우처럼 사정없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쓰나미였다. 한동안 나는 그 후유증으로 너덜너덜해진 나의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이 들었다. 피천득의 ‘인연’은 또다른 아림이었다. 그것은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눈물이 나려는 그런 서글픔이었다. 5월의 화창함 속에 나 혼자만 초라한, 그런 느낌이었다. 김훈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 또한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상처를 계속 쿡쿡 쑤셔대는 아픔이었다. 그것도 계속 같은 상처만을 쑤셔댄다. 그래서 나는 결국 신경질이 났다. 이렇게 수필마다 느낌이 다른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는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사고력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면서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꽃이 아름답다 느낄 때 그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을 떠올리며 삶은 치욕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탄식하면서 그는 이름 모르는 노인의 얼굴로부터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명제를 찾아낸다. 그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눈으로 우리들의 아둔함을 비판하고 있다. 역시 그는 기자다. 이런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기자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과 그가 보는 세상은 천양지차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작가의 이성과 함께 그의 감성을 실컷 맛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수필의 매력이다. 그는 막 무는 개가 동네를 돌아다녀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느라 허우적거린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과 자연들, 그리고 그의 사색들. 엄격한 목소리로 세상을 쏘아 붙이던 작가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감수성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이런 감수성이 있었기에 기자로 끼니를 연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성과 감성은 다른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다.
수필을 읽으면 얻는 것이 없다. 그저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회오리만 남을 뿐이다. 막 울고 싶은 슬픔이나 서러움, 외로움과 부끄러움 등,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감정들만 북받쳐 오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수필을 읽는다. 그것은 무엇 하나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수필의 허무함을 통해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좀 더 예민하게 갈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미련함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혼났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것을 흔들어 깨어놨고, 그래서 내가 상처를 입은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