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당신은, 현실에 대해서, 현실의 진실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오늘은 그 얘기를 할까 한다.
나와 당신이, 우리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끔찍한 살육에 대해 침묵했다면, 적어도 그 점에 관해서는, 나와 당신이, 우리가 비인간적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비인간성이 나와 당신의, 오로지 우리의, 우리만의 탓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나와 당신의, 우리의 무감각과 무신경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 비난을 나는, 거침없이 얻어들어야 한다. 당신도 마찬가지. 하지만, 더불어 나와 당신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조각난 진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각난 진실은 우리를 무지의 벼랑으로 이끌었고, 무능의 늪에 빠뜨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실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의 일부였으며, 누군가의, 오로지 누군가의 진실에 불과했다. 뒤틀린 진실의 한 조각이 나와 당신의, 우리의 눈을 사정없이 찔렀고, 우리를 눈멀게 했다. 하여, 나와 당신은, 우리는 진실의 전체를 보지 못했고, 볼 수 없었다. 나와 당신의, 우리의 눈엔 여전히 사금파리가 박혀있다.
우리는 미디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미디어가 던져 주는 정보, 생각, 감정, 경험, 욕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미디어 너머의 세상에 대해 나와 당신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전혀 모른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모르고 있다.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나와 당신에게, 우리에게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오로지 TV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TV 속에 존재하는 것만이 온전한 세상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는지? 그러니,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그것들 뒤에서 엄연히 다른 세상이 꿈틀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 그 세상을 알기 위해, 그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미디어 안으로, 미디어 사이로, 미디어 너머로 기어들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디가 전해주는 반쪽짜리 세상밖에는 모르고, 반쪽짜리 삶밖에는 못 살 것이다.
도대체 나와 당신이,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의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나와 당신은, 우리는 진실의 한 자락이라도 움켜쥐고 있는가? 우리는 단지 조각난 현실을, 가공된 현실을 경험할 뿐, 아닌가?
이 전쟁에 대한 당신의 생각 역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전쟁이 시작되던 1년 전쯤으로 돌아가 보자. 신문과 방송은 연일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지원 가능성을 얘기했다. 또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폭압성과, 이라크 민중의 인권에 대해서도. 미국의 언론과 미국인들은, 저들은 오로지 그것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벌이는 양 미친 듯이 떠들었다. 당연히, 이집트에서 벌어질 끔찍한 살육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했다. 그리고 전쟁 개시 1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고, 그것을 찾겠다는 명분을 내건 이 전쟁에서, 오히려 개 같은, 정말 개 같은 대량 살상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라크 민중의 인권은, 후세인 시절만큼 퇴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공개된 이라크 포로들의 학대 장면을 담은 사진들은 끔찍했다. 문득,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이 떠올랐다. 엽기적인 학대와 동물적인 광기가 그 사진 속에서 넘실거렸다. 저기가 바로,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목화밭이었던 것이다.
대체, 나와 당신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왜, 아직도, 여전히,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가? 나와 당신은, 우리는 왜? 여전히?
이것은 전쟁인가? 아니, 나는 전쟁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명백한 침략이고, 침공이다. 명백한 학살이고, 살육이다. 헌데, 미국의 언론과 미국인들은, 저들은 ‘이라크와의 전쟁’(혹은 ‘이라크 전쟁’)이라고 떠들었고 떠들어댄다. 그 규정 속에서, 그 명명 속에서, 이라크는 세계 최강의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어떤 국가가 된다. 정말, 이라크‘와의’ 전쟁이란 말인가? 정말, 와의? 그렇게 말하면, 이 전쟁은, 한순간에, 지극히 쌍방적인 것으로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전쟁은, 나와 당신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일방적이었다. 그것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라크(혹은 이라크의 민중)‘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이었고 학살이었다. 그게 미디어가 정해준, 이 전쟁의 알량한 이름, ‘이라크와의 전쟁’이라는 그 이름보다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혹은, 미국인의 진실이 아니라, 이라크와 이라크 민중들의, 그들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담고 있을 것이다. 명명은 이렇듯 중요하다. 우리가 ‘이라크와의 전쟁’이라고 쉽게 말하는 그 순간, 이라크에서는 엄청난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카타르의 위성 방송인 알자지라만이, 그나마 그 전쟁에서 이라크 민중이 고통 받는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미국 정부는 당연히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잇다. 미국무부 대변인이라는 녀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자지라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정확하고 거짓되고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고, "우리(미군)가 대형폭탄을 사용하지 않은 장소에서 사용했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공격하지도 않은 모스크(이슬람사원)를 공격했다고 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은 장소에서 죽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카타르 정부에 알자지라 방송에 대한 통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프레시안 4월 28일자)
우리는 오로지 미국 언론과 미국인들의, 저들의 시각에서 이라크를, 중동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의 시각이 아닌, 저들의 시각에서. 또한, 그들의 시각이 아닌 저들의, 오로지 저들만의 시각에서. 저들의 세상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을, 더불어 우리들의 세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저들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세상을 우리의 세상에 잇대어, 그 세상에서 우리와 그들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세상이 아닌, 저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유가와 세계 경제를 논하고,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이라크와 같은 현실은 잊은 채 환상만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고 있진 않는지? 우리가 발 디딘 이곳은, 저들의 세상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의 다소 복잡한 인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들 : 한국. 그들 : 미국. 저들 : 이라크. -> 우리들 : 패권국의 눈치만 살피는 중진국 나부랭이들. 그들 : 제1세계에 속하며, 자신들만이 오로지 정의를 점유하고 있다는 맹신에 빠져,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 것들. 저들 : ‘그들’의 발밑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밟히는, 자국의 생사여탈권을 언제라도 강탈당할 수 있는 약소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