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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나를 사랑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하지 마라.


혼자 하는 여행은 지극한 나르시시즘의 소산이다.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으면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혼자 버티긴 힘들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3주 동안 여행하면서, 저 물음을 놓지 않았다. 3년 동안의 사회 생활 동안, 외면했던 저 물음을.

이 여행은 시작이다. 몇 번 더 국내를 돌아보고 나서, 세계를 둘러볼 것이다. 다음 번 여행은 내 몸을 갈아서 이 산천을 돌아보고 싶다. 오로지 내 몸뚱이 하나로. 아무도 가지 않는, 혹은 아무나 가지 않는 길로. 아주 먼 거리만 빼고는 차에 의지하지 않은 채 말이다. 자전거도 좋고, 두 발로도 좋다. 사찰 하나에 이르기 위해 몇 날이 걸릴지 모르고, 서원 하나에 다다르기 위해 며칠을 길에서 보내야 할지 모를 그런 여행을. 그렇게 내 몸으로 힘겹게 닿은 곳은, 어디든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며 눈물겹게 소중할 것이다. 그곳의 풀 하나, 돌 하나까지도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부모처럼 서럽게 반가울 것이다. 그곳에 이르는 길이 내 핏줄처럼, 그곳의 땅이 내 몸뚱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반가울 것이다.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처럼, 멀리 돌아서 더 멀리까지 이르는 여행이면 좋겠다.

우리 산천을 둘러보는 여행은, 풍경과 마주치는 여행이다. 그 풍경들은 대부분 소박하나, 이땅의 역사와 숨결을 지니고 있어 웅숭깊다. 이 땅의 숨결을 들이쉬지 못하면, 이 땅의 역사는 가슴 속에서 살아 굽이칠 수 없다. 이 여행은 내 안에 몇 개의 물굽이를 새겨놓았다. 그것은 이 땅에 대한 것이었고, 이 땅에서 피땀 흘려 제 생을 일군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만나야 하는지 모른다. 더 깊은 것들과 더 작은 것들을. 내 작은 그릇이 차고 넘칠 때까지. 작고 하찮은 것들에 깃들인 크고 넓은 것들을 바라보는 눈길을 길러야 한다. 그 눈길로 세상의 후미진 모퉁이를 돌아봐야, 돌보아야 한다. 세상에 저 홀로 버려진 것들 안에 깃든 넓고 아름다운 빛을. 그래서, 나는 홀로 떠났는지 모른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 위해서. 아직도, 몇 번은 더 떠나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날도 올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세상을 쓸고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과 사귀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수만 가지의 관점을 살아 있는 가슴으로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세상 속에 퍼뜨리며 끊임없이 갱신하는 그런 여행을.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끝없이 잇대고 새끼 꼬듯 엮는 그런 여행을.

 

동해, 해 뜨기 직전의 하늘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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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아래서 섬진강은 수런거린다. 섬진강은 지리산 밑자락을 살포시 감싸며 돌아간다. 산을 품어 안은 강은 넓고 넉넉하다. 강과 산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정겹다. 그 둘은 두런두런 정답다. 산은 강을 덮지 않고, 강은 산을 깎지 않는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운명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운명을 개척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굽이를 도는 강은 운명을 끌어안아 운명을 사랑하는 삶을 침묵 속에서 보여 준다. 강은 산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강은 굽이굽이 에돌아 제 길을 간다. 바다에 이르는 길을. 강의 꿈은 바다다. 강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바다를 꿈꾼다. 그게 강이 꿈꾸는 자세다. 그러므로, 지리산 굽이를 돌아 흘러가는 섬진강은 황홀하다.
그 황홀함 앞에서, 나는 무참했다.

지리산, 대원산 가는 길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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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서원은 유성룡이 지은 서원이다. 병산(屛山)이란 이름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에서 유래한다. 그곳에 가면,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왜 그곳이 병산서원인지, 혹은 병산서원이어야 하는지를. 서원은 그 앞의 산과 강에서 적당한 거리로 물러나 앉았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 거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서원과 자연은 둘이되 하나처럼 느껴졌다. 풍경과 어우러지는 가장 적당한 거리를 병산서원은 구현하고 있었다. 하여, 서원 안으로 앞강과 앞산이 흘러들고 스며든다. 강당의 정중앙에 앉아 있노라면, 산이 서원으로 스며드는, 서원이 산으로 다가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서원의 규모는 작으나, 그 작은 것이 크고 거대한 산을 제 속으로 들어앉히는 모습은 놀랍고 아름답다.
살아 있는 문화재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병산서원은 내게 일정한 답을 주었다. 안동 하회마을이 죽어 있는 문화재의 표본이라면, 그 바로 옆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살아 있는 문화재의 귀감이다. 서원의 마루는 깨끗이 닦여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라는 안내문은 그지없이 반가운 것이었다. 신발을 벗고 누각 위에 올라앉으니 앞산이 내 눈과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이해할 게 아니라, 사람의 손때가 묻고 사람의 발길이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한다면 말이다. 적어도, 건축물에 한해서는 나는 그리 생각한다. 현재의 온기와 과거의 운치가 어우러진,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화재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병산서원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고작 두 대뿐이다.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이웃하고 있다. 그 둘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가자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병상서원은 그 너머에 자리한다. 병산서원 가는 길에서 만난 강과 산은 넉넉하고 풍요롭다. 나는 가는 길은 버스를 탔고, 오는 길은 차를 얻어 탔다.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가게 될 때는, 가는 길은 걸어서 들어가야겠다. 병산서원을 감싸는 그 넉넉한 강과 산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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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헐거운 마음인 채로 어디에서건 자유로웠고 무엇 앞에서건 거침없었다. 떠난 길에서 나는 그랬다. 그 자유는 행동의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이 하는 일, 마음이 저 홀로 하는 일로부터 나는 자유로웠다. 사랑도, 욕망도, 번민도 죄다 마음이 하는 일들이다. 마음이 제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 홀로 하는 일로부터 나는 자유로웠다. 떠난 길에서 나는 그랬다.

 

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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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다. 떠나는 자는, 떠나려는 맘과 떠나지 못하는 몸 사이에서 서성인다. 혹은, 떠나고자 하는 몸과 떠나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나서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떠나기 전날 밤, 몇 개의 짐을 꾸리며 나는 외롭다. 오로지 혼자다. 떠난 길에는 기댈 누군가도, 손을 잡을 누군가도 없을 것이다. 가방에 짐을 챙겨 넣으며 얼마나 떠나 있을지 가늠한다. 일정을 정하고 가방을 싸는 게 아니라, 가방을 싸면서 대강의 일정을 정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머물지, 정하지 않은 채 나는 다만 헐거운 마음으로 떠나고자 한다.
떠나는 자는, 필요와 피로 사이에서 갈등하며 짐의 무게를 가늠한다. 짐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제 한계를 생각한다. 담아가지 않으면 아쉬울 것이나, 담아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 짐의 무게만큼 나는 나아갈 수 있다. 정확히 그만큼이 내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짐을 싸다말고 삶의 무게를 생각하니 눈물겹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 어디까지 살 수 있을까.
― 떠나기 전날의 기록




 

 

 

 

 

 

 

 

 

 

 

강릉, 경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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