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와 당신은, 우리는 TV 앞에서 무사하다. TV 속 세상은 전투기가 날고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나와 당신은, 우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무사하다. 그리고 멀쩡한 낯빛을 하고, TV 속 세상을, 이라크의 먼지 바람을, 팔루자의 화염을 멀거니 바라본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을 때, 나와 당신은, 우리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TV 속 팔루자를 관람한다. 맙소사, 세상에 자신이 원해서 택한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자살까지도, 죽음을 향한 욕망에서가 아니라 고통 없는 삶에 대한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을진대.
나와 당신은, 우리는 오늘도 어제처럼 하릴없이 살아간다. TV 속 세상에서 전쟁이 벌어지건, 사람이 죽어나가건 상관할 바 없다는 듯이. 나와 당신은, 우리는 점심엔 뭘 먹을까를 고민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버스 유리창에 고단한 어깨를 기댄 채 퇴근한다. 그리곤 멍하니 TV 앞에 앉는다. 오늘도 이라크는 한바탕 시끄러웠군, 하며 소란스런 세상에 약간의 냉소를 보낼 수도 있고, 오늘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었나 보군, 하며 약간의 연민을, 제 양심이 조금이나마 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이, 슬쩍 던질 수도 있다. 나와 당신은, 우리는 그런 황량한 살풍경 앞에서 으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언제나처럼. TV 속 세상은 끔찍해도 TV 밖 나와 당신의, 우리의 일상은 꿈쩍 않는다. TV를 끈 나와 당신이, 우리가 잠깐, 아주 잠깐, 아까 본 이라크 어린이의 눈물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 오래 생각하진 않는다. 생각해도 딱히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다, 머나먼 이라크 땅의 비극이 나에게 닥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감상에 젖는 자신의 나약함이 징그럽기에. 그새 나와 당신은,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생각을 슬그머니 접은 채, 피곤했던 하루 일과를 잠시 돌아보고, 내일 해야 일과 만날 사람들을 대강 점검한 뒤 잠자리에 든다. 내일을 살아야 하기에.
우리에겐 우리의 내일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엔, 그들의 내일이 들어설 자리가 하나도 없다. 나와 당신에게, 우리에게 그들은 없다. 그들은 그저, 그들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나와 당신이, 우리가,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나와 당신은, 우리는 그저 TV 밖에서, 앞에서, 위에서, 아래서 그들을 지켜볼 따름이다. 그들만이 TV 속 세상에서 울부짖고, 피 흘리며, 사지가 찢길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없고, 또한 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야만, TV 밖 세상과 TV 속 세상이 뚜렷하게 나누어질 수 있고, 그럼으로써 나와 당신이, 우리가 그 밖에서, 그들과 다르게 무사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것이라 나와 당신은,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우리는 TV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들은 TV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그들은 TV 속에서 겨우 존재할 뿐이다. 과거의 한 자락으로만. TV 속 그들의 삶은 현재가 아니다. 그들의 모습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현재가 되길, 나와 당신은, 우리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재형이라면, 우리의 삶이 굉장히 불편해질 것이기에, 우리의 여유가 대단히 침해받을 것이기에, 우리의 머리가 몹시도 무거워질 것이기에, 우리의 안전이 상당히 위협받을 것이기에, 우리의 미래가 끔찍이 흔들릴 것이기에, 우리의 영혼이 뿌리째, 저 밑바박에서 흔들릴 것이기에. 만약에, 만의 하나라도, 그렇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들을 연민해야 하고, 그들을 치료해야 하며, 그들을 도와줘야 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과거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이제 다 지나가 버린 일에 불과한 것으로, 그래서 나와 당신이, 우리가 지금까지 늘 그래온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신나게 구경만 해도, 안심하고 넘어갈 수 있게끔. 그들은 영원히 과거형으로만 존재한다.
과연, 이런 나와 당신, 우리란 존재는 무엇인가? 진정, 나와 당신이, 우리가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나와 당신이,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해서, 그들의 현재에 대해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만약 있다면, 적어도 전쟁 반대 집회에 한번이라도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당신은,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위의 물음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진정, 나와 당신이, 우리가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나는 대답하기 어렵다. 당신은 어떤가? 나와 당신은, 우리는 오로지 제 삶에 바빴고, 늘 그렇듯이 제 아픔만을 과장했다. 온몸이 가시넝쿨에 찔려 철철 피를 흘리며 사지를 떨고 있어도,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고통일 뿐이었다. 나와 당신은, 우리는 오로지 제 새끼손가락에 박힌 가시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것만이 나와 당신에겐, 우리에겐 그나마, 끔찍해 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나와 당신은, 우리는 사람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