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문부식, 삼인)를 다시 들췄다. 얼핏 그 속의 저 문장들이 나의 것인 양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착각이다. 그 착각은 5월의 원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문부식)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이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그 5월의 광주가 어김없이 또 돌아왔다. 망월동에 아름다운 묘지가 들어섰고, 피해자 보상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광주는 역사에 제 이름을 남겨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조국은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를 학살하려 한다. 2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우리는 광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내 나이 스물여덟. 96학번에 불과한 내가, 5월의 광주를 원죄처럼 느낀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아마도, 그건 내가 뿌리부터 전라도 사람이란 증거이리라. 전라도 사람은, 결코 5월을 잊지 못한다. 죽어도 잊지 못한다. 내가 거기 없었다 해도,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이 서린 상처는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스민다. 시간을 거슬러 스미고, 스며서 곪아 썩는다. 언제나 그렇다. 내 피에도 얼마간 그 한이 서려 있다. 나를 키운 건, 오 할은 그 피다. 피의 바람이다.
80년, 저 홀로 섬처럼 고립된 광주에서, 사람들은 대동 세상을 이뤘다. 수많은 무기가 넘실거렸지만,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장의 아주머니들은 밥을 해 날랐고, 여공들은 도청에서 밥을 해 먹였다. 거리와 도청에 모인 사람들에게. 청년들은 무기를 들었다. 오로지 제 형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내 어릴 적에도(90년 즈음) 데모가 있는 날이면 광주 대인 시장 사람들은 김밥을 해 날랐다고 한다. 그 때도 그들은 대동 세상의 기억을, 그 꿈 같은 기억을 잊지 않고 간직했던 것일까. 촛불 집회는 대동 세상의 또 다른 꿈을 보여 주었다. 칼빈 소총 대신 우리 손에 들려진 촛불은, 광주라는 역사의 척후병을 향해 흔들렸다. 그 척후병의 숭고한 희생으로, 역사는 여기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조국이 그저 침묵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대동 세상에서 뜨겁게 조국을 기다렸다. 하지만, 조국은 끝내 침묵했다. 침묵은 그 어떤 무기보다 차갑게 끔찍했다. 광주에 고립된 그들은, 제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처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되었다. 그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한은 보복을 원하지 않는다. 보복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 한은 달래줘야 한다. 그건 돈의 문제도, 보상의 문제도 아니다. 그건 진실의 문제다. 거대한 악이 행해질 때, 그 악에 오로지 침묵하기만 했던 광주 밖의 사람들이 달래줘야 한다. 광주에 대한 사과를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광주에 더 이상 무슨 사과를 한단 말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당신의 침묵을 깨는 것, 오직 그것이 광주를 기억하고 광주를 기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홀로 버려진 그 모든 것들 앞에서 숙연해하고 분노하는 것만이, 광주를 살리는 길이다. 오직 그것만이 아픈 광주를 치료하는 길이다. 이라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버려진 것들이 모욕당하고 있다.
“‘우,리, 승,리,할, 수, 있,을,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때 가슴이 먹먹해지고 까닭 모를 슬픔이 밀려와 앞에 선 동지를 와락 끌어 안았다. 이제, 그때 하,지, 못,했,던, 대,답,을, 1,4,년,이, 지,난, 뒤, 세번째 감옥에서, 한,다. ‘이,기,든, 지,든, 괜,찮,아!’라,고. 바,위,를, 만,나,면, 돌,고, 둔,덕,을, 만,나,면, 넘,으,면,서, 끝,끝,내, 거,대,한, 바,다,에, 이,르,는, 물,의, 운,동,을, 깨,달,은, 뒤,의, 대,답,이,었,다.”(285)
예전에, 저 글을 옮겨다 적어놓은 적이 있다. ‘이기든 지든 괜찮아’. 저 한 마디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 가슴을 때린다. 우린 항상 이기는 것에만, 오로지 그것에만 관심을 둔다. 나 역시, 매일, ‘당신’들을 이기려고 안간힘쓴다. 당신보다 더 유식하기 위해서, 당신보다 더 능력 있기 위해서, 당신보다 더 좋은 차를 갖기 위해서, 당신보다 더 넓은 평수의 집에서 살기 위해서 아득바득 싸우고 또 싸운다. 당신들을 이기고 돌아온 날이면, 난 어김없이 앓고 만다. 겉으론 득의만만한 내 표정엔 어딘가 그늘이 져 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날이 그렇게 나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나의 영혼은 살을 내린다. 영혼의 뿌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살을 내린다. 나날의 싸움에서 당신을, 세상을 이긴 만큼, 난 조금씩 변해간다. 변해가며 썩어간다. 지식을 쌓으며, 관계를 쌓으며, 돈을 쌓으며 썩어간다. 쌓아두기만 하면 그저 썩을 뿐인데도, 오로지 쌓는다. 쌓는 것은 썩는 것이다. 그러다, 무언가가 툭 떨어져 버린 느낌이다. 그게 무얼까. '당신'도 그런 적이 있는가? '당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당신'도 나처럼 그렇게 가끔 아픈가? 그게 무얼까.
매일 매일의 싸움에서 지는 걸 생각해 본다. 그 싸움에서 정말 질 수 있을까. 가끔은, 너무 지쳐 날 놓아버리고 싶은 날에는 언뜻 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난 기어코 이기려고 애쓴다. 질 수 있기를, 가끔씩은 지기도 하고, 또 가끔씩은 선뜻 지기 위해 넘어지기도 하기를. 그 싸움의 복판에서, 한없이 지고 말없이 작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전투에서는 지고, 싸움에서는 이기는’ 역설의 진리와 함께 뒹굴고 싶다. 작아지면서 안으로, 제 안으로 커지고 깊어지고 싶다. 그렇게 웅숭깊어질 수만 있다면.
광주를 기억하는 것, 전라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상처받은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분명 지는 싸움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것이다. 비록 지고 또 지지만, 바다를 그리는, 바다로 향하는, 바다에 이르는, 바다를 이루는 그 과정을 제 삶으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이여, 나날의 싸움에서 우리 지기로 하자. 아, 광주여, 삶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