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1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마술쇼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마리앙투와네트의 처형에 사용될 인형머리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것은 이후 벌어진 불가해하고 끔찍한 대사건의 전조였다. 악마적 두뇌의 살인마는 한적한 대저택을 빌려 손수 단두대를 만들고 그곳에서 한 여인을 무참하게 처형한다. 여인의 목이 잘려나가고 대신 그 자리에 사라졌던 인형머리가 놓인다. 이 괴기스러운 살인은 그러나 더욱 처참한 참극의 시작에 불과했다. 마술사들의 모임이 있는 별장에서 또다시 인형이 사라지며 죽음을 예고하는 피안개가 드리워진다. 이어서 사라졌던 인형이 달리는 열차에 산산히 부서져 조각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연이어 그 인형과 똑같은 운명으로 한 여인이 열차에 깔려 참혹하게 살해된다. 마치 세기의 대마술사 후디니가 부활하기라도 한 것 같은 가공할 위력의 살인마는 환상적인 마술을 부리듯 인형과 실제 사람을 번갈아가며 불가사의한 공포의 살인쇼를 계속 펼치지만 경찰들은 살인마에게 접근하기는커녕, 그 트릭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마냥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일본 모든 경찰이 두손 들어도 단 한 사람만은 예외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풀어낼 수 있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 그는 사건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천재적인 두뇌와 날카로운 직감을 총동원해 살인마의 심리와 동선을 추리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것을 비웃듯이 살인마는 명탐정은 물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버젓이 세 번째 살인을 마법처럼 펼쳐보인다! 천하의 가미즈 교스케조차 넉아웃시켜버린 마법같은 연속살인. 살인마는 어떤 번뜩이는 논리적 추론에도, 알리바이를 앞세운 탄탄한 수사에도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악마적 두뇌의 소유자. 그는 탐정에게 당당히 자신의 패를 다 내보이고도 유유히 빠져나간다. 마치 수갑을 차고 자물쇠를 건 강철 상자에 들어간 채로 얼음이 언 허드슨 강의 바닥에 놓인 후디니가 유유자적 그곳을 탈출해버린 것처럼! 그 즈음에야 가미즈 교스케는 알게 된다. 이 불가능한 살인쇼는 평범한 추리적 접근으로는 절대로 그 해답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명탐정의 머릿속에는 이 난제를 풀 단 하나의 명제가 번뜩, 떠오른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문신 살인 사건'으로 다카기 아키미쓰의 팬이 된 후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 거는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과연 명불허전, 작가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기이하고도 불가능한 범죄가 숨쉴틈없이 이어지고, 그 잔혹하고도 신비한 악마적인 마술쇼에 도전장을 낸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의 분투가 끝간 데 없는 긴장과 흥분을 제공한다. 정말로 한 편의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장르적 재미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문신 살인 사건'때도 느꼈지만 다카기 아키미쓰는 일본 추리의 대작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에 비해 한치도 떨어지지 않는다. 어째서 이 정도의 수준에 있는 대작가의 작품이 아직 국내에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아마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출간된다면 새로운 기대감에 부풀어 잠도 못 잘 것 같다. 부디 검은숲에서 이 작가의 후속작을 계속해서 출간해주길 기대한다!(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 책의 표지에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1'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2,3도 당연히 나와줘야 한다!) 


이 작품은 한 편의 미스터리 '이야기'가 가져야할 미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이한 발상, 신비스러운 공포, 잔혹한 상상, 불가능한 범죄, 반전을 거듭하는 폭풍같은 전개! 그리고 이 기묘한 이야기의 끝에는 불가해했던 모든 의문들이 마법처럼 풀리며 단 하나의 해답을 명쾌하게 내놓는다. 프롤로그에도 독자에 대한 도전장처럼 내놓는 것이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이다. 참고로 이 소설의 최대 매력은 '누가 범인인가'보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 있다. 작가는 애초부터 그쪽으로 포커스를 두고 소설을 전개시킨다. 때문에 누가 범인인가보다, 어째서 인형이 살해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릴 때 엄청난 충격과 전율의 쾌감을 만끽하게 된다! 한 편의 불가해한 마술쇼를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경이롭게 책장을 넘기게 만들던 이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비로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말하며 다시한번 책 제목을 언급한다! 정말로, 이토록 기괴하고 참혹한 사건에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이 해답 속에 후디니의 마술보다 치명적인 환상트릭이 숨겨져 있다! 궁금하다면 지금 책장을 펼쳐라.


p.s 덧붙여서 가미즈 교스케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두 편의 걸작 단편 '무고한 죄인'과 '뱀의 원'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보너스를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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