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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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는 작가가 3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에 쓴 자전 소설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줄거리를 쓰는 것조차 어렵다. 소설 속 화자는 벽에 난 구멍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노인에게 나팔꽃을 건네는 신비로운 광경을 본다. 어느 날 그 여인은 꿈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방 침대에서 죽는다.


이때부터 화자의 의식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 여인을 토막 내어 땅에 묻고 돌아와 아편 중독에 빠져든 후 몇 번이나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세상이란 늘 한결같다. 그는 어두운 방 침대 위에 누워서 죽을 병에 걸린 채 좁은 창으로 한정된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더듬을 따름이다. 마치 그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이란의 카프카라 불릴 정도로 천재 작가인 사데크 헤다야트는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4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삶에 관해 자세히는 모르나, 아마도 목표와 이상이 정치와 현실의 벽에 계속 부딪히자, 결국 좌절감에 빠져 약물과 술로 의존하는 나날을 보낸 듯하다. 그러한 그의 염세주의적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눈먼 올빼미>다.

어디까지 자전적 얘길 쓴 건진 알 수 없지만, 소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그로테스크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탐미적이고 환상적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다. 마치 영원히 깨지 않는 꿈속을 방황하는 듯하고, 그것이 곧 삶의 실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몇 번의 무섭고도 지리멸렬한 꿈에서 깨고, 또 깨고, 계속해서 다른 꿈을 꾸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처럼 모호하고 흐릿한 경계선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제목이 뜻하는 눈먼 올빼미란 무엇일까? 소설 속에서도 몇 번의 상징적 존재로 묘사되는 올빼미는 무슨 의미일까? 그냥 올빼미라면 환한 낮을 피해 밤의 어둠으로 날아드는 존재다. 적어도 밤에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눈먼 올빼미는 밤에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눈 마저 빼앗긴 올빼미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눈먼 올빼미는 그 자체로 그냥 올빼미 형상을 한 그림자다. 실존이 아닌 허상이다. 작가는 말한다. 실존이 죽은 세상에서 허상이 존재 가치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고.

우리는 눈먼 올빼미임에도 눈이 멀었다는 걸 모른다. 밤이니까 어두운 거라고 합리화한다. 진실을 보는 눈을 상실한 채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어쩌면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허접쓰레기 같은 진실을 거짓된 가면으로 덧칠하듯 꾸민다. 이 소설은 그 가면을 향한 조롱이며, 그 가면이 모두 벗겨져서 나온 맨얼굴에 관한 외침이다.

실존이 사라진 시대에 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때 이 소설은 끝까지 읽으면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하는 책으로 유명해서 금서로 취급됐다. 이란인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두려워한다. 적어도 영어로 번역되고, 다시 그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책이 품은 맹독 같은 기운은 많이 희석되었으리라. 그만큼 이 책을 읽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정말로 깨지 않는 꿈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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