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8평의 땅에 세운 9평의 집. 28평 빼기 9평은 19평. 설계시공의 시간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고 정원을 어찌할 지는 미뤄 두기도 했다.

물론 땅 중에 어디에 집을 세울지 고이즈미 씨가 신중하게 결정했다.

부지는 동서 약 7.5미터이니까 동서 7.5-5.4=2.1미터 / 남북 12.3-5.4=6.9미터의 여유가 있다.

남과 북에 4미터 폭의 도로가 있다. 도로를 지나 남쪽으로 넓은 생산녹지가 있고 북쪽은 주택이, 서쪽으로는 아파트가 있다.

“오픈된 집이니 도로와 좀 떨어진 편이 좋겠지요.”라며 고이즈미 씨는 가능한 한 북쪽으로 붙여 남쪽에 정원을 늘릴 생각이었다.

게다가 “도로에 접해 현관이 있으면 도로에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정원에 들어와 집까지 오는 거리가 있는 편이 좋아요.”라고 설명했다. 남측에는 커다란 창에 맞게 3.6×2미터 크기의 데크를 붙였다.

택지 주위에 담을 만드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 보고 관두었다. 작은 땅에 작은 집이다. 이 이상 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심겨져 있지 않은 땅에는 언제부터인가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나는 식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가사는 대부분 마누라 몫이니 정원은 당연히 마누라 담당이다. 토끼풀과 민들레를 심어 볼까. 꽃이 좋을까. 야채를 키워 먹을까 고민한다.

기회는 1년 정도 후에 찾아왔다. 식물을 잘 아는 대학 후배 고이케 마사히사가 벽면 녹화에 협력했다. 집의 벽면에서 약간 떨어뜨려 와이어를 치고 잘 달라붙는 성격의 식물을 심는다. 식물은 점점 더 자라더니 지금은 건물 전체가 숲이 되었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식물을 심었다. 부쩍 자라더니 이제 정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유심히 생각해 본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라는 이름은 스미레와 아오이가 자라는 집이라는 의미로 붙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었던 스미레와 아오이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10년 후 지금의 상태를 처음부터 상상해서 집을 지은 듯도, 전혀 상상하지 않고 지은 듯도 하다. 이런 변화는 큰 것 같지만 조금씩 일어나다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고도 느낀다. 동네 아이가 어느새 커 버려서 놀란 적이 있듯, 남이 보면 이 집의 생활도 크게 변화한 것이 아닐까.

“우선, 10년 정도 쾌적하게 살았던 것을 생각해 보죠.” 라고 고이즈미 씨가 말했다.

그 말대로 그다지 문제없이 쾌적하게 지낸 10년이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씩 떠올려 보고 싶다.

내가 처음 『아홉 평 나의 집』이라는 이 책을 낸 것은 집을 만들고 1년 뒤였다. 그때 이 집과 책을 만들 계기를 주신 분은 디자인평론가 가시와기 히로시 씨로 「실험 주택에 있어서의 실험 생활의 시도」라는 글을 보내 주었다. 이 글의 끝은 이런 내용이다.

“이 집의 복원은 물리적인 공간의 복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 ‘최소한’ 필요한 것만을 들여 사는 것, 실제 생활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즉 50년대 디자인된 실제 주택을 복원하고 거기서 다시 실행해 보는 것으로, 이 역시 실험적인 시도가 되는 것이죠. ……(중략)…… 이 공간에서의 생활은 질문의 연속일 겁니다. 우리들은 그런 질문들에 스스로 공부하고 답변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거의 잊어 버리고 살아왔지요. 새로 나타난 것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방대한 것들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만,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성장할 때에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나올 것이다. 그런 문제도 우리들은 진지하게 묻지 않고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실험적인 주거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인간과 물건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매번 스스로 물어 가면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기와라 씨가 지금부터 이 집에서 어떤 식으로 생활하고, 이런저런 문제에 대응해 나갈지 남의 일이지만 정말 흥미롭습니다. 실험 주택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이 10년 동안 나는 어떤 실험을 해 왔던 것일까. 살아오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해 온 것인지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살아온 것은 이 집과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 덕분이겠지. 감사를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2년 4월,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택잡지, 건축잡지, 디자인지는 물론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신문까지 다양한 미디어의 기자가 50명 가까이 모였다. ‘9평 하우스’의 판매 개시를 알리는 자리다.

마쓰자와 주택이 탄생한 1952년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누구라도 어디에든 지을 수 있는 집’이라는 모토로 시작된 마쓰자와 주택이다. 드디어 누구라도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설계한 양질의 주택을 이전보다 부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9평 하우스’는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마쓰자와 주택을 기본으로 현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쓰자와 주택의 5원칙이라는 것을 정리했다. 이것은 마쓰자와 건축설계사무소의 마쓰자와 유키히로 씨의 조언을 얻었다.

5원칙은 이렇다.


1. 평면은 정방형 (3×3칸) - 실용성과 미학

2. 바닥부터 천장까지 3평의 바람이 통하는 수직 공간을 둘 것

- 공간의 연속성

3. 외형은 약 4.5미터의 박공지붕 - 단순성, 합리성

4. 둥근기둥을 사용할 것 - 구축성, 부드러움

5. 정면에 출입구에 3.6×3.9미터의 큰 창을 설치할 것

- 비율, 내외의 일체화


이 5원칙은 ‘최소한의 주거’의 매력을 더하고 현대생활에 적합한 주택을 설계하기 위한 것이고 그 후에 적절히 기능하게 만들어 준다.

5원칙이라고 하면 르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이 유명하다.

1. 필로티(지주) 2. 옥상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연속창이다. 그때까지의 낡은 건축양식에 대한 안티테제라고들 한다.

마쓰자와 마코토 씨의 5원칙도 있다.

1. 시대성 2. 조화 3. 합목적성 4. 기능성 5. 경제성으로 건축설계시 지침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안토닌 레이먼드의 5원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9평 하우스’의 5원칙과 마쓰자와 마코토 씨의 5원칙을 의식해 만드는 것으로 하면 목표로 하는 주택의 방향성이 나타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집을 팔고 싶은데요.”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가 생기고 1년쯤 흐른 후 오픈 하우스 행사 때의 일이다. 많은 분들 가운데서 팔짱을 끼고 지긋이 집을 보고 있던 남자 분이 말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참석한 오카자키 야스유키 씨로, 이때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오카자키 씨는 1963년 치바에서 태어나 남캘리포니아건축대학(SCI-Arc)에서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게이오대학원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유저참가형 집 짓기를 연구했다. 건축설계를 전공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디자인 주택을 전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 갑작스런 소리라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생각했다. 집을 팔고 싶다고 해도 물론 우리 집을 가져다 판다는 소리는 아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와 똑같은 디자인을 팔고 싶다는 의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나중에 들은 말로는 오카자키 씨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어떻게든 손에 넣어 팔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구입 버튼을 누르면 집을 살 수 있게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 후 오카자키 씨가 설립한 ‘Boo-Hoo-Woo.com’이라는 사이트에서 영상을 이용해 주택을 소개하는 당시로는 흔치 않던 방식으로 우리 집을 알렸다. 그 영향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영상도 꽤 정성들여 만들었다. 오카자키 씨가 중심으로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만들어 촬영, 편집했다. 실제 우리 가족의 생활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그 취재를 통해 오카자키 씨의 사고방식과 의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혹시 이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자리를 마련해 9평의 집 상품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 그때는 ‘9평 하우스’라는 상품명을 정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잘 통했다. 오카자키 씨도 나도 기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자는 주의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려는 자세를 공유했다.

이렇게 ‘9평 하우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식사 풍경. 약 4미터의 바람이 통하는 공간과 남쪽 개부구가 기분 좋다. 직경 120센티미터, 높이 63센티미터의 둥근 테이블도 고이즈미 씨의 디자인이다. 매일 식사시간이 즐겁다.


상당히 특수한 집이라는 이유로 곧 잡지의 취재 이야기가 나왔다. 잡지 『브루투스』에서 ‘도쿄 23구 안에 집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우리 집은 23구 밖에 있지만 특집 편으로 평범한 가족이 살아가는 현대 최소한의 주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마쓰자와 주택 이야기를 포함해서다. 『브루투스』는 이제까지 3년간 1년에 한 번씩 주택특집을 해왔다.

그동안은 주로 건축가가 건설한 임대물건을 소개하며 평생 빌려 사는 것도 좋다고 주장해 왔다. 그걸 이번 호에서는 손바닥을 뒤집듯, 역시 작더라도 내 집을 지어 보자는 특집이다. 이건 뭐 내가 주인공일세.

나는 주로 업무로 취재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OZONE의 일이나 전람회 건이 아닌 내 개인의 일로 취재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반쯤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 어중간한 기분이다. 실은 이번 특집호 주택부품 소개 부분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이번 특집호에 ‘작고 마음대로인 집’으로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가 소개되었다. 보통은 그 사람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는 같이 일해도 알 수 없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취향이 전부 드러난다. 밖에서 아무리 숨기고 다녔어도 소용없다. 내 사생활은 공개되었다. 어쩐지 부끄럽다.

그 후에도 잡지 취재는 이어졌다. 『크로와상』, 『건축지식』, 『컴포트』 순으로 취재가 이어졌다. 취재 방법이나 소개 방식이 잡지에 따라 많이 달랐다.

그 후에는 텔레비전에서도 여러 차례 취재 요청이 이어졌다.

하지만 마누라는 텔레비전에는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본인은 물론 스미레나 아오이가 알려지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이 집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이 좀 달랐지만, 마누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족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방송에서 어떤 식으로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를 다룰지 모르니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잡지는 기본적으로 돈을 들여 구입하는 사람들이 보는 것이니 관심 없는 사람은 보질 않겠지만 텔레비전은 누구나 보는 것이므로 좋지 않단다.

일리 있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방송도 많으니 가족이 놀림감이 되는 것은 나도 싫다.

나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모든 취재에 응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와타나베 아쓰시의 건물탐방’ 프로그램에는 꼭 나가고 싶었다. 장수 프로그램으로 와타나베 씨가 직접 700채 이상의 집을 방문해 소개한 방송이다. 개중에는 건축가의 작품들이 많아 볼 만한 방송이다. 회사 일로도 심포지엄이나 OZONE에서 만드는 잡지의 취재 건으로도 신세지고 있었다. 들은 말로는 기둥전도 보러 왔고 마쓰자와 주택을 보고 정말 좋아했다 한다.

“그럼 당신만 나가요.”라는 마누라의 명령에 따라 나만 나가기로 했다.

방송은 즐거웠다. 제작진을 미리 만나 회의를 했지만 와타나베 씨는 촬영 당일 처음 집에 왔다. 와타나베 씨는 건축을 정말 좋아해서 공부를 계속한 덕인지 내가 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을 온전히 이해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마누라는 아직도 그 방송을 못 봤다. 나는 방영일에 부모님 집에서 봤다.

확실히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방영 시간에 집에 있던 마누라 말로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몇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단다. 나도 방송 다음날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 왔다.

이렇게 잡지와 텔레비전에 소개되자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는 금세 유명해져 버렸다. 한동안은 사람들에게 “방송 잘 봤습니다.”라는 인사를 듣고 다녔다.


매일매일이 신나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집

집은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이 집이 굉장히 쾌적하다는 사실이다. 놀러온 여러 사람에게 “살기에 좀 어떠십니까?”라는 질문을 듣고 “정말 좋습니다. 쾌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진심이다.

대부분 최소한 주거에 흥미를 표하며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별장이라면 몰라도 항상 사는 집이 그렇게 작아서 괜찮을까, 라고들 생각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꽤 각오가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살아 보니 내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고민 끝에 세운 집에 살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매일 쾌적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집이다. 아침이면 가족 모두가 테이블에 모여 앞에 펼쳐진 녹지를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이 테이블도 고이즈미 씨의 아이디어였다. 120센티미터 크기의 동그란 테이블이다. 이제까지는 90센티짜리를 사용하다가 바꾼 것이라 굉장히 커진 느낌이었다. 63센티미터로 기분 좋은 높이다.

눈앞에서 아침 해가 녹지를 감싸고 작은 새들이 날아오른다. 여행지의 리조트에서 묵는 기분이다. 앞길은 인적이 드물다. 출근하는 샐러리맨과 초등학생 정도다. 매일 같은 사람이 다니다 보니 그 시간도 일정하다. 길에서도 집 안이 보이겠지만 정원 길이가 5미터 정도 되니 시선이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생겼다.

휴일에 점심을 먹고 있으면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기분이다. 저녁에는 무엇보다 조명이 예쁘다. 저녁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면 상점가의 쇼룸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조명기구를 열고 들어가 만나는 바람이 통하는 공간이 정말 마음에 든다.

다다미방으로 해서 정말 다행이다. 천장 높이가 180센티미터인 4량 반 크기의 정말 작은 공간이다. 다실 같은 느낌이다. 2층의 워크룸도 편리하고 부엌도 좋다. 세면대, 화장질, 욕조도 쾌적하다.

바람이 통하는 공간의 마루에는 바닥 난방을 넣었다. 나중에 클레임이 많이 들어온다며 업자가 꺼려하던 일이었다. 내가 책임질 테니 해 달라 부탁하길 잘했다. 정말 안락하다. 낮에는 햇볕이 집 안 가득 비추니 따뜻해 난방은 저녁 때만 조금 사용하면 된다.

여름에 너무 덥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1층에서 올라가는 온기로 2층에서 견디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해, 1층 다다미방에 조그만 에어컨을 달고 정말 더운 날에는 그 방에 모여 지냈다. 남쪽의 큰 문을 열면 더운 바람이지만 잘 통해 견딜 만했다.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느껴 보니 작은 집이기 때문에 효율 높은 쾌적한 생활이 가능함을 실감했다.

손님들도 오래 머물다 갔다. 마음이 편한가 보다. 스미레와 아오이의 친구들도 놀러왔다 자고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 아직 남의 집에서 자 본 적이 없는 아이였는데 어쩐지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단다.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집인가 보다.

이 집에 살게 되어 행복하다고 매일 생각했다. 밤에 혼자 일어나 집 안을 둘러보며 행복함을 곱씹는다. 내가 좀 별난 걸까. 집에서 지내는 시간도 늘었다. 가능하면 집에 있고 싶다. 마누라가 부러워.

“이런 분에 넘치는 공간을 하루 종일 나 혼자 즐기고 싶다.”고 하면 마누라가 날 미친 놈 취급하겠지. “이렇게 작은 집에 어떻게 살아요?”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던 건 기억도 못하겠지. 이 집을 제일 마음에 들어한 건 마누라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