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향미의 예술

커피의 생명은 맛과 향이다. 따라서 이 맛과 향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커피는 향미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예술 한번 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생두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상상하는 맛과 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양질의 생두. 그런데 국내에서 양질의 생두를 구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전문가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내 생두 시장 자체가 작아 좋은 생두를 수입하기 어려운 업계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 지점이 국내 커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좋은 생두에서 좋은 커피가 나온다는 사실. 잊지말자. 

좋은 생두를 구입했으면 그 다음은 로스팅 과정이다. 그러나 로스팅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각 산지별 생두를 수없이 볶는 과정에서 정확한 로스팅 포인트를 찾아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생두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연습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극한수행!을 마친 후에야 비로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로스팅 스타일을 도전할 수 있다. 

로스팅 다음으로 중요한 과정은 추출이다. 그런데 추출 기구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추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다양한 추출 기구의 성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기구에 맞는 분쇄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컨대 종이페이퍼를 이용한 핸드드립을 할 것인지 융(Nel)을 사용하여 내릴 것인지 또는 사이폰을 이용할 것인지 등에 따른 적절한 분쇄도를 설정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방문했던 커피집의 커피가 너무 맛있어 그 집의 커피콩을 구입해 집에서 마셨는데 왜 커피맛이 다를까? 라는 경험이 있었을텐데 이런 경우 가장 큰 이유는 분쇄 입자 때문이다.  

이렇게 분쇄도는 커피 맛과 향을 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물론 훌륭한 한잔의 핸드드립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선 분쇄도 뿐만이 아니다. 커피 원산지, 볶음정도, 물의 온도, 추출 기구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예술의 길은 멀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아무리 좋은 생두와 완벽한 로스팅 그리고 최적의 추출 등의 조건이 맞다 하더라도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혼을 느낄 수 없으면 맛있는 커피 한잔은 미완성이라고 봐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된 커피만이 진정한 향미의 예술품이 아닐까?

커피 추출 온도에 대해서

여러 추출 방법중 대표적인 페이퍼 드립방식은 다양한 이론이 개발되어왔고 현재도 꾸준히 연구가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추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페이퍼 드립시 준비 도구는 드립퍼와 써버, 추출 용량에 알맞는 종이 페이퍼, 드립 전용 포트(물줄기가 가늘게 일정하게 나오는 주전자) 등이 필요하다. 도자기나 동 드립퍼의 경우, 추출 전 따뜻하게 데워 놓아야 한다. 특히 온도가 낮은 겨울에는 꼭 지켜야한다. 차가운 상태로 그냥 추출을 하면 커피 추출 온도가 내려가 커피 맛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써버 또한 뜨거운 물로 한번 데운 후 사용해야 하며 커피 잔도 미리 데워놓는 센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커피 추출 온도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고온 추출이 있는데 95도 전후의 온도로 추출한다. 커피의 쓴맛과 개성적인 맛을 강조할 때 사용하며 가능한한 빨리 추출해야 한다. 중온 추출 방식은 85~90도 사이로 커피의 추출액의 농도가 편한하여 대중적인 커피를 지향할 때 사용한다. 저온 추출 방식은 70~85도를 말한다. 이 온도는 다양한 신맛 중 부드러운 신맛을 나타낼때 사용하는 방법이며 물을 붓는 추출 속도는 조금 천천히 해야 한다.

물론 세가지 방법 모두는 3분 내외를 기준으로 추출되어야 한다. 3분을 초과하면 커피의 잡성분까지 추출되어 커피 맛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커피는 각각의 추출 온도에 따라 다양한 커피 맛과 향이 표현된다. 또한 적당한 1인 기준의 커피 용량은 10g의 원두가 적당하며 1인 커피 추출은120cc~150cc이며 기호에 따라 15g, 20g을 1인 기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1인분을 추출하기 위해서 달랑 10g의 원두만을 갈아서 추출하면 온전한 커피 맛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20g을 추출하여 원하는 분량을 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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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의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는 1973년부터 멕시코 인디오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주 고된 커피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프란스 신부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가난이 왜 해결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커피 재배 농가들과 연대하여 커피협동조합(UCIRI)을 설립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 날 공정무역 커피 운동의 시발점이되었다. 당시 프란스 신부는 유럽의 여러 NGO 들과 교류하였는데 특히 종교간 개발기구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니코로전과의 만남을 통해 공정무역커피 브랜드 '막스하벌라르(Max Havelaar)' 개발에 합의를 한다. 프란스 신부가 커피를 생산하면 니코 로전이 커피를 유럽 시장에 팔기로 한 셈인데 이들은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드디어 1988년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커피 제품을 발매한다.

그런데 공정무역 커피가 어떤 커피인지 알기 위해선 먼저 공정무역(Fair Trade)의 개념을 살펴봐야한다. 공정무역은 이른바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주되, 돈이나 식량으로 원조를 하기 보다는 거래를 통해 이 들 스스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다시말해 공정무역의 핵심은 '원조가 아닌 거래(Trade nat aid)'에 있다. 그 이유는 원조라는 방식이 국가간 또 다른 종속 관계를 형성시켜 불평등한 구조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세계화가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가치인지에 대한 의심과 그동안 드러났던 자본주의 시장 구조의 모순을 바로잡아 보자는 의지에서 1960년대 영국의 옥스팜을 중심으로 공정무역 운동은 조직화되기 시작한다.

공정무역 커피, 그 탄생의 배경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유럽에서 공정무역커피 운동이 시작되었을까?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아니면 부유해서? 또는 다들 착해서? 설마...커피는 유럽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커피는 이슬람 문명권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간 음식이다. 게다가 유럽만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착해서 그런건 더더욱 아니다.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경쟁을 잊었는가? 따라서 이런 질문은 공정무역 커피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일 수 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선 수많은 설(썰?)들이 있지만 종교와 관련이 깊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디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홍해를 건너 이슬람 문화를 통해 발전해 나갔는데 처음 유럽에서는 커피가 이교도의 음식 즉 악마의 음식이라 배척하고 금지 했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똑같지 않은가? 금지하면 욕망이 생긴다. 게다가 커피는 매력적인 음식이 아닌던가. 결국 유럽의 크리스트교 문명권에서 금지되었던 커피가 해방되면서 커피는 급속도로 유럽 사회에 퍼져나간다. 그러나 커피가 자라지 않는 유럽의 고민. 그래서 항상 예멘의 모카항을 통해 커피를 조달했던 유럽인들. 이들은 당연히 커피 재배에 욕심을 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이 식민지 개발에 열을 올린 수많은 이유 중엔 커피도 분명 한 몫을 차지하리라. 왜냐하면 오늘 날 커피 산지로 유명한 나라들치고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공정무역 커피 운동은 이러한 자기네들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죄의식을 깔고 있다. 게다가 미국을 중심으로한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가 세계를 재편하면서 자존심 상한 유럽인들은 뭔가 대안적 시장주의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공정무역 커피 운동은 미국 중심의 자유시장에서 거래되는 커피의 수급 구조가 고스란히 과거 식민지 수급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과 이 상태로는 커피 생산국들의 가난이 개선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인간적, 사회적,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지킬 수 없다는 유럽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각성으로 시작된 것이다. 

주목받고 있는 공정무역

최근 한국에서도 공정무역 커피 제품이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커피 뿐만 아니라 초코렛, 설탕을 비롯하여 의류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단체들의 마케팅이 하나같이 '착한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제품의 구매는 분명 착한 소비임이 틀림없지만 세상은 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착하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면 스스로의 시장을 그야말로 '착한 시장'으로 한정짓게 되어 오히려 나중엔 성장의 걸림돌로 되돌아 올 위험이 있다. 착하다는 제품의 속성 보다는 제품 자체의 품질과 철학에 대한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오늘날의 공정무역 커피 운동은 단순히 공정한 가격을 통한 거래를 넘어선 여러가지 가치가 담긴 운동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특히 커피 생산자들의 생태적 환경 개선 및 사회 문화적 인프라 확충을 통한 인간적 삶 영위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커피 식민지를 소유해본 적이 없는 한국도 공정무역 커피 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음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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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힘 - 커피가 병을 예방한다
오카 기타로 지음, 이윤숙 옮김 / 시금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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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커피는 뉴스의 단골 아이템이다. 거의 매일 또는 하루 걸러 커피 관련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그만큼 커피는 요즘 시대 대중적인 아이템이다. 특히 커피와 건강의 상관성에 관련된 뉴스는 민감하게 반응들이 쏟아진다. 왜냐하면 어제는 커피가 몸에 좋다고 나왔다가 오늘은 또 몸에 나쁘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되는 걸까?

오늘 우리는 이러한 논쟁에 방점을 찍을 한 권의 책을 만날 것이다. <커피 한잔의 힘>이란 책이 바로 그것인데 <커피 한잔의 약리학>이란 제목으로 2007년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책의 저자 오카 기타로씨는 이른바 일본의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은 약사이자 약학박사로 예방 의학 측면에서 커피의 효능을 약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전문적이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사에서 커피가 발견되고 음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약(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필두로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로 일단 분위기를 돋군다. 그리고 2부격인 '커피 마시기의 이로움' 장에서 본격적으로 커피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증명해나간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커피가 일본의 공식 문서인 '약전'에 까지 올라와있을 정도로 약용 작물로 분류가 되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커피를 약학적으로 접근한다. 커피는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을 적게 만들어주며, 당뇨병도 예방하며 간경변증과 간암 마저 발병률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또한 내장지방과 고지혈증에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성인병(생활습관병) 예방에 커피가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단, 이 책에서 언급한 커피는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 커피에 한정되어 있으며 심지어 로스팅을 통해 원하는 약리적 성분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1인의 입장으로 참 뿌듯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제약회사들은 이처럼 만병을 예방하는 커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제약 회사 입장에선 커피가 자신들의 돈벌이에 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예를들어 커피가 당뇨도 예방하고 간암을 예방한다면 소비자들이 그냥 커피를 사먹고 말지 비싼 돈을 주고 누가 약을 사먹겠냐는 거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자뭇 흥미로워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약사 아저씨가 쓴 이 책은 커피 애호가 뿐 아니라 커피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에게까지 커피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커피를 좋아하는 당신, 마음껏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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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쿨루스 1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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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우는 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은 전통적으로 고정화된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즉, 평생 고용 신화를 자랑해왔던 일본 주식회사의 신화들이 하나씩 붕괴되면서 일본은 그동안의 여러가지 모순들과 억압된 욕망들이 하나씩 사회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아마 일본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 생각한다. 거리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양산한 홈리스가 활보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미래 없는 직장 대신에 자본주의와 타협한 프리타가 되기를 선택했다. 반면 그동안 사회적 그늘에 가려져 있던 오타구와 같은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기존의 엘리트 지향적 가치는 재평가 되기 시작했다.

만화 <호문쿨루스>의 주인공 나코시도 결국 재조정되고 있는 일본 사회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한때는 잘나가는 엘리트 회사원, 그러나 지금은 홈리스 신세다. 하지만 그는 다른 홈리스완 달라 보인다. 그것은 비단 그가 회사원 차림의 양복을 입고 공원 벤치가 아닌 자신의 자동차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그는 호텔과 홈리스가 우글거리는 공원 사이의 도로상에 차를 세워놓고 사회적 경계에서 지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지내는 자동차다. 마니아틱한 올드 모델의 마츠다 소형차. 그는 오늘도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잠들어 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근원적인 평안함을 느끼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어느 날 펑키한 차림의 의대생 이토 마나부가 나코시의 차창을 두드린다. 용건은 자신에게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으면 70만엔을 주겠다는 것이다. 트리퍼네이션이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어 식스센스를 활성화 시키는 시술이다. 나코시는 그 제안을 처음엔 거절한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의 자동차가 불법 주차로 견인되고 차가 없어진 나코시는 광장공포증으로 현기증을 앓는다. 나코시는 결국 이토를 찾아가 자동차를 찾기 위해 자신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이른바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는다. 그 후부터 나코시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호문쿨루스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무의식의 괴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그 이미지화된 트라우마 괴물들이 나코시 자신의 호문쿨루스와 링크되면서 나코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혼란을 느낀다. 과연 나코시는 타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될 것인가?

나이트 샤밀란 감독의 <식스센스>에서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소년 콜의 고민은 바로 나코시가 느꼈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남들에게는 안보이는 트라우마 괴물이 보이는 나코시, 한맺혀 이승을 떠돌아 다니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식스센스 능력이 있는 콜. 결국 콜에게 보이는 유령이나 나코시에게 호문쿨루스를 통해서 메세지를 보내는 인간들은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나 또는 가정이 개개인들에게는 결국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인데 그 상처의 근원을 찾다보면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해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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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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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딱 15년 차다. 무라카미 류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라카미 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와 같은 세대와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국에서 나보다 15년 나이가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무라카미 류와 동시대에 태어난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류와의 공감대가 없을 거란 얘기다. 즉, 류와 연도적 동시대가 아니라 정서적 동시대인은 오히려 한국에서는 나와같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무라카미 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우리에게 80년대가 투쟁의 시절이었듯이 60년대말을 치열하게 보낸 사람이다. 이른바 전공투 세대인 것이다. 게다가 밀려오는 미국의 팝문화의 세례를 받으면서 자라왔으며 한편으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대국으로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면서 자라왔다는 점이 그와 딱 15년 차이가 나는 나와 같은 세대와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류를 만나면 항상 해주고 싶은 얘기가 몇개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뭐니뭐니 해도 류, 당신이 아무리 일본이 최악이라고 말해도 그보다 더 최악의 환경인 한국이란 나라도 있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류는 지속적으로 관료화되고 박제된 일본의 바보 같고 비능률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비판을 해왔으며 일본을 이끌어 왔던 엘리트란 집단이 얼마나 허황되고 무능한 집단인지 지적을 해오면서 아울러 일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던지고 있는데 사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비판하는 일본의 문제들은 한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 [69]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 소설 중의 하나였다. 69라는 다소 선정적인(내가 이상한가? 자꾸 李箱의 69가 생각나고 섹시한 상상이...*^^*)제목의 소설인데 알고보면 1969년도에 벌어진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러니깐 1969년 무라카미 류가 고등학생일때의 일종의 성장소설을 빙자한 모험담이다.

오로지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뭔가 멋진 일을 꾸미고 싶어하는 켄은 당시의 전공투의 무기력한 학생 운동에 냉소를 퍼붓듯 옥상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봉쇄하는 이벤트를 꾸민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학을 맞는 한편 16미리 단편 영화를 제작하여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이러한 사건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얼마나 경직되있고 폐쇄적이었는지에 대해서 고발함은 물론이요. 일본의 학교와 선생들에게 일갈을 날린다. 하지만 하지만...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일본의 69년도는 한국의 84년보다 분명 자유로웠던 같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어느 나라가 더 자유로웠냐가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등학교라는 합법화된 감옥(교육이란 명목으로 가두어 놓은 공간)인 학교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제발 좀 알고 고쳐야 되지 않겠나라는 것인데, 어찌된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교육은 여전히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듯 하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미래의 경쟁력은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아니라 학창 시절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냈는지에 대한 추억이 많을 수록 높아진다는 진리를 아직도 한국이나 일본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어쩌면 그것이 너무 좋은 걸 알기에 일부러 못느끼게 하는 고단수 정책일지도...)

류의 [69]속의 선생을 죽이고 싶었다라는 한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로 만든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가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기는 권상우가 포효하듯 외치는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란 말에 다 담겨져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데 [69]또한 상상력 부재의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희망 없음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소설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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