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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평점 :

소설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요즘 통 읽지못했다. 읽을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여유를 잃은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일본 소설 물을 수 놓다.
일본 소설은 뭐랄까? 참 잔잔하다. 그렇다고 평화롭게 잔잔한 호숫가 같지도 않다.
물 속에서는 거센 소용돌이가 있지만 물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 굳게 잔잔해지려 노력하는 모습이랄까?

물을 수 놓다. 이 소설도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하기도 개운해지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각자의 시점으로 일상이 펼쳐진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등장인물과 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상의 갭은 꽤나 크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읽어내며 독자인 나의 이해도는 깊어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오카 기요스미(이하 기요)는 고등학생이자 남자아이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할머니의 영향인지 수를 놓고 옷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반해 기요의 누나는 ‘귀엽다’ 표현되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할만큼 무채색 같은 여자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만 봐도, 이 소설이 포커스하고 있는 부분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역할과 억압’이란걸 유추할 수 있다.
기요의 할머니는 정말 따뜻한 분이다.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언제나 선택권을 주고, 모든 상황을 충분히 들어주고 감싸안아주는 분이다. 남자아이인 기요에게 수 놓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할머니다.

할머니의 생각들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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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여자는 예쁘고 현명하다”고 했다.
남편은 “귀엽다”고 했다.
칭찬을 가장해 억압해 왔다.
그것은 억압이라고 규탄하기 위한 표현을, 나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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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성별에 억압받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늘 꿈꿨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늘상 품고 있는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뜻밖에 말을 해서 정말 놀랐다.
수학을 잘하는 기요의 여사친 구루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자인데 수학을 잘하다니 대견스럽구나.” 이때 조금은 소름이었다. 그 말을 한 후 구루미가 수학을 잘하는데 성별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말한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할머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당황한 모습이랄까?
이래서 가치관이 스며든다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스스로 사회관념과 다른 가치관을 늘 품어왔는데,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일본 소설 물을 수 놓다는 우리도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성별에 대한 역할과 억압에 대한 내용을 한 가족의 일상에서 소소하게 풀어내고 있다. 커피 한 잔과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조금씩 음미하듯 읽어내려간 시간동안 온전히 시간을 누릴 수 있어 즐거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진솔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