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의 고민으로 눅눅했던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는 곳.
여기는,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입니다.
무슨 무슨 편의점 시리즈 흥행을 기점으로 세탁소, 잡화점 등등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 소설의 제목으로 대거 등장했다.
이번에 받아든 장편소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도 그런 류인줄 알았다.
그런 류가 뭐냐시면?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어 있는 소설이랄까?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지만, 요즘 퍽퍽한 일상에 그간 다양한 판타지 미디어에 자주 도피해서인지 차분히 읽어나가는 활자 속엔 제발 가미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판타지 소설이었다면 앞부분만 보고서 살짝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아니었다. 약간의 로맨스 우연히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귀엽지.
일상은 생각지도 못한 우연의 연속이니까 말이야.
서울에 살 때 나 역시 참 좋아하던 곳이었다. 연남동. 연남동 근처 책들이 엄청 빼곡하게 꽂혀있는 커피향 가득한 카페도 정말 사랑했고, 연트럴파크를 끼고 고즈넉하게 즐비한 아담한 주택들 옆을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좋았다. 아….
갑자기 서울 가고 싶네.
이 동네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서일까?
김지윤님의 장편소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을 읽는 동시에 눈앞에 연남동이 펼쳐졌다.
소설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곧지만 외로워 보이는 장영감 할아버지도, 육아에 지쳐 팍팍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애엄마 미라도 눈앞에 그려졌다. 꿈을 향해 내딛던 씩씩한 발걸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갈 길을 잃어가던 여름이도, 그런 여름을 만나 씩씩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던 하준이도.
모두 눈앞에 그려졌다.
빙굴빙굴 빨래방.
빨래방에 앉아 둘찌 로순이가 오줌을 지린 이불이 세탁기 안에서 빙굴빙굴 돌아가는 걸 넋 놓고 본 적이 있다. 그때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이불을 얼마나 어지러울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잘 살아내는 사람들이었다. 로또 번호나 알고 싶다고 한탄하는 세웅이도 있었지만, 그도 어찌 보면 꿈을 좇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닌 살아낸 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개개인들의 일상은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빙굴빙굴 돌아가는 세탁기 속처럼.
하지만, 결국 찌른 내가 진동하던 이불은 향긋해질 것이고 더 뽀송뽀송해질 것이다. 빙굴빙굴 돌아가는 어지러운 시기를 넘어서!!!
책 속 등장인물들도 어질 어질하던 그들의 일상을 살아내며 우연을 만나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든 저마다의 때를 만나 향긋해지고 있었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에서 모두를 연결해 주던 다이어리. 익명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결국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된 사연들이 참 아름다웠다.
코로나 이후 우리네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서로를 응원할 힘은커녕 주변을 돌아볼 기력조차 없다. 서로의 얼굴을 검게 가린 미디어, SNS에서는 익명이란 이름으로 날카로운 칼질을 하기 바쁘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그 안에 있던 다이어리 속 익명의 고민과 격려와 응원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