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시간’보다 ‘버텨내는 시간’이 더 많은 이 하루 끝에는 늘 숨차고 목마르고 삶을 가누기 버거운 내가 지쳐 쓰러져 있습니다.
드라마 #나의아저씨 OST #어른
그 곡이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어른, Grown Ups> 작사가 #이치훈 님의 글에 눈물이 또르르 내려앉았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의 기적이다.
아이를 낳아보니 더 알겠더라.
이 작은 심장이 힘차게 쿵쾅거리는 매 순간이 기적이란걸.
하지만 우리를 가두는 이 사회는 ‘존재’는 그냥 존재 일뿐, 그 너머 너를 증명하라 우리를 ‘한계’라는 벽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우리는 아니, 나는 ‘버텨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 ‘존재’에 감사하기보다, 계급을 매기기 시작하며 자괴감을 느낀다.
금수저, 흙수저.
오래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금도끼, 은도끼에서는 내 도끼가 흙이 묻은 쇠도끼라 솔직하게 말하면 금, 은도끼까지 덤으로 주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내가 흙수저라 말하는 것에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동화책에선 솔직해야 상을 받지만, 현실에선 숨겨야 그나마 평범해질 수 있다.
동화와 현실의 괴리감이 이런 것일까?
어쩌면 로로들에게 감상에 적은 동화보다 냉혹한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게 더 현명한 육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어찌보면, 동화의 제목이 쇠도끼가 아닌, 금도끼, 은도끼인 것부터 세상의 주인공은 금수저, 은수저임을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너무 꼬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