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으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싫습니다.

까마득하다. 나의 치열했던 첫 입사시절.
돌이켜보면,
그리 빡빡하지도 않았던 근무환경 같은데,
나는 왜 그리도 나를 궁지로 몰았는지 모르겠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부담감,
결과를 증명해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풋풋했던 내 20대를 갉아먹었다.
사람이 북적이던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정차의 순간에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내렸던 기억.
그 후로 종종,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선
숨이 조여드는 동일한 느낌을 맞이하곤 한다.
도서 <과부하시대>를 읽는 동안,
그때 그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아, 나는 과부하에 속수무책 당했던 거구나.
당신이 소진된 4가지 이유 중
‘과잉 성실’이라는 단어가
특히나 눈에 들어왔다.
그랬었다. 나는 성실했다.
내적 동기에 의한, 즉 ‘내가 원한’ 성실이 아닌
나쁜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픈 욕구의
‘남을 위한’ 성실이었다.
우리는 “완벽”을 위한 최선을 다하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리고, 나 역시 로로들(우리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지”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