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의 한반도
반도에는 원래 벼랑이 많은지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세는 항상 벼랑 끝에서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정상은 서로를 향해 '화염과 분노', '불망나니' 따위의 말 폭탄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이더니, 다시 핵실험과 코피를 터뜨리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은 일촉즉발일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이것도 잠시 '늙다리 미치광이'와 '로켓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를 재개하였고 싱가폴에서 역사적인 양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합의는 편지 한 장에 무산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여기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양국관계의 총론을 합의(혹은 복원)하였다.싱가폴에서 이제 한 번 만났을 뿐인 두 정상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면서, 일 년 만에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국 정상은 각론에서 크게 견해차를 보이며, '노딜 서밋'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남기고 재차 어색한 사이로 돌아섰다. 이어 어김없이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북한식 으름장이 나왔고, 미국은 '제재와 압박'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대화가 끊긴 침묵을 긴장이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웨딩카를 몰 것이라 낙관하며, 양국의 맞선을 지켜봤던 '한반도의 운전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시름만 그만큼 깊어졌을 뿐이었다.
이처럼 예측불허의 북미 관계는 상승과 추락을 밥 먹듯이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그러나 CNN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1989년 이후 15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대북 통 마이크 치노이에 따르면,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라기 보단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북미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막전막후를 가감 없이 담았다.
마이크 치노이는 시기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 집권기, 상대방으로 김정일이 맞서던 때의 대북이슈를 다뤘다. 그러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국방부를 주축으로 한 네오콘의 매파와 국무부와 동아태국을 중심으로 한 비둘기파의 권력투쟁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핵문제의 장기화에는 플루토늄 동결에 합의하였으면서도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비밀로 추진했던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협상과 대결이라는 모순된 신호가 동시에 흘러나와, 어느 것이 신호이고 어느 것이 소음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사안의 불확실성을 키운 미국의 책임도 일정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에는 2010년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약 1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정일이 죽고 그의 3남 김정은이 수령에 올랐으며, 부시를 지나 오바마가 물러나고 다시 트럼프가 들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그때의 주축들이 여전히 상당수가 대북전선 전면에 요직에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볼턴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①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이 책에는 굉장히 방대하면서도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서평에서는 지면 관계상 주목할 만한 인물의 일대기를 위주로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소개할 인물은 대한민국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혈기왕성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데올로기적 혐오로 인해, 1994년에 북미 간에 성사된 '제네바 합의'를 섣불리 어그러뜨릴까 일본보다 앞서 급하게 한미정상 회담을 잡는다.
미국으로 날아간 김대중은 국무장관 파월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였으나,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관여정책의 지속을 요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조지 W. 부시는 김대중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오히려 동맹국 한국의 정상을 'this man'이라 모욕하며 돌려보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면 심지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김대중은 아이젠하워, 닉슨, 그리고 레이건 등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증오스러운 공산 적대국과 대화를 한 바 있음을 환기시켰다.
김대중의 이어지는 말.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를 때도 그는 대화를 가졌다. 그럴진대 북한과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래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을 벌여야 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수단,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고, 대화를 포함한 다른 방법을 다 써본 뒤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 당시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왜 당신은 대화 옵션을 취하지 않는가?" pp.144-145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이후 재야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버지 부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북문제의 엄중함을 설명하고 일시적으로 부시의 강경기조를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다. 고군분투하는 김대중의 모습에서는 우리보다 강한 동맹국에게 자기주장을 포기하며 국익을 저버릴 것인지, 혹은 자기주장을 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고민과 수완이 엿보인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② 조지 부시와 국방부 및 네오콘 네트워크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 존 볼턴은 공화당 내에서 '네오콘'이라 불리는 강성 이데올로기 동맹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념은 다음과 같다.
'무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정치경제 체제를 이식할 수 있고, 독재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 봉쇄와 억지를 넘어서 '선제적 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보수주의적 강경 이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네오콘들의 득세에 따라,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직접 북한을 드나들었던 숙련된 대북 전문가들이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강경파들은 구체적인 정보나 데이터보다는 자의적 해석과 힘과 끓어오르는 분노, 특히 혐오감으로 북한 문제를 다뤘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다뤄야 했던 대북전략이 속된 말로 '뇌피셜'의 음모론에 지배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대북 투쟁과 미국 내 대북 관여파와의 노선투쟁에서 활약했던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중역을 맡고 있는 존 볼턴이었다.
파월을 비롯한 국무부 북핵 실무를 담당했던 동아태국의 제임스 켈리, 주한대사 토머스 허버드 등은 구체적인 정보와 현안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북한의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해법은 대북 관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교를 선전포고의 전단계정도로 생각하는 치기어린 네오콘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콜린 파월을 비롯한 비둘기파는 어떻게든 대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고 애썼으나, 부시 대통령 본인부터 북한 인민을 굶겨 죽이는 악성 독재자이자 피그미 김정일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뒀던 터였다. 쉽게 말해서 부시 행정부는 대북혐오는 있었지만 대북정책은 전무했다.
대화를 포기했으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울 미국의 채찍은 모조리 이라크를 향해 있던 상황이었다. 네오콘들은 북한을 위협하면, 위협에 굴복한 북한이 핵을 저절로 포기할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더는 제네바 합의가 존속할 수 없다고 파악했으며, 사담 후세인의 말로에서 핵이 없으면 이라크와 같은 꼴에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네오콘의 의도와 정반대로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③ 일본 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와 동시에, 일본의 지도자는 훗날 정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부시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고려해보라고 권고했다. 고이즈미는 말했다. "당신은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소. 김정일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오. 그는 신뢰를 받을 수도 없소. 하지만 당신은 그와 직접 대화를 가져야 하오." pp. 184-184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한국 국민 일반에서 전범국 일본의 재흥을 노리는 극우 수장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대북이슈에서 만큼은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충분히 재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충동을 제어하는데는 김대중-노무현의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뿐만 아니라, 부시의 친구로 불렸던 고이즈미의 설득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동아시아 동맹국들과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대북 압박책을 펼쳤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소외되기 보다는 미국의 지휘에 불응하고, 한국과 일본 각자가 단독으로 북한과 접촉하는 쪽을 택했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대북관계도 악화시켰으나, 동맹국들의 협조도 얻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불쾌한 심기를 무릅쓰고 직접 평양에 건너가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고이즈미는 김정일로부터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 받는 성과를 올린다. 양국은 '평양선언'을 도출해내며, 향후 식민지 배상 및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고, 납북자문제를 처리하며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일본 외교의 큰 성과였으나, 김정일의 납북자문제 인정은 일본 국내의 국민정서를 악화시켰다. 대북 강경론자로 유명했던 아베 신조는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이용하여, 이것을 일약 거물 정치인으로 오르는 기회로 삼았다.
일본 자민당 내 파벌보다 국민 여론에 기대어 자기 정치를 펼쳤던 고이즈미 또한 여론 악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소신과 달리, 더 이상 대북 관여정책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 고이즈미가 물러나자, 일본은 대북 강경책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었다.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의 유연함보다는 대북강경론을 앞세워, 일본의 재무장과 연계해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미래는 어디로?
대북 매파의 흐름은 오바마 행정부 8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일본 아베 장기집권으로 일치된 압박 정책을 보이며 지속되었다. 말미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가담하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핵을 완성하였고 붕괴하지 않았으며, 대북정책은 협상으로 되돌아왔다.
분명 아베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아베는 고이즈미보다 못한 인물이며,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시보다 현실적이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미-일-북-중-러가 끼어있는 한반도의 '6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하노이에서의 합의 연기(혹은 결렬)에 넋 놓고 비관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이후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거의 패턴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과거에서 교훈을 삼을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날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과거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북 보도와 기록을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9.03.18 @PrismM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