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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쇼코의 미소>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p24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p.28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p.33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p.34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p.47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껍데기만 보고 단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치솟을 무렵, 나는 그 사람들 편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p.48
할아버지는 늘 내게 먼저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서 좋은 말들을 했다. 아주 번듯하게 잘생겨서 사위라고 데리고 다니면 면이 섰다는 이야기,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 밥상머리에서 늘 웃었다는 이야기, 천성이 다정해서 엄마나 할아버지의 생일을 잊지 않고 작은 선물들을 줬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pp.52-53
<씬짜오, 씬짜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pp.85-86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p.92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속에서 이는 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는 이모의 얼굴에서 엄마는 이상한 쓸쓸함을 봤다. 막막하고 두렵지만 행복한, 무언가를 간절히 희망하면서도 주저하는 얼굴.
pp.100-101
가죽지갑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어린 여자애를 보면서 엄마는 그에에게 왜 고작 이런 것 하나에 그토록 당황하고 행복해했는지 묻는다. 너는 더 좋은 것들을 누렸어야 했다고, 그럴 자격이 있었다고. pp.102-103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15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p.115
<한지와 영주>
그는 보복하고 질투하며 분노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했고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고 믿었다. 전쟁에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짓들을 저질렀는지 알았으면서도 그는 신의 사랑을 믿었다. p.126
이십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해야 할 시기였고, 여기서 치열함이란 죽기 살기로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한 경력을 쌓는 것을 의미했다. p.128
<먼 곳에서 온 노래>
“이거 놓으세요.” 미진 선배가 기자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씨발, 이 더러운 꼴을 꼭 쟤한테까지 보여야 합니까? 전 이제 그러기 싫어요, 싫습니다.” pp.198-199
<미카엘라>
여자는 미카엘라가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의 끝에는 ‘나 때문인가’라는 일말의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긴, 자신은 미카엘라에 대면 너무 처지는 엄마였다. p.221
어쩌라는 건가. 아빠, 지금 이 집안을 빈곤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은 세상도 자본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다. (…) 엄마가 엄마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아빠 같은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이건 사랑도 뭣도 아니라 일방적인 착취라고 말이다. p.225
여자는 옆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