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년을 살아보니] 곧 백세 노교수에겐 버킷 리스트, 어린 독자에겐 새길 인생론

 

 

 

‘#제발늙어서라고하지말아쥬남은여름이많소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여름나기의 힘듦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았다. 장수를 확신하고, 삶에 집착함을 드러내는 표현. 서른 이후를 삶이 내게 가져다 준 변화였다. 사회과학 용어 중에 ‘time horizon(시계,시평 정도로 번역하나 원어로 주로 씀)’이란 표현이 있다. 행동함에 있어 내다보는 시간의 범위로, 천성과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 대개 정치인들이 짧다. 천성이 엉뚱하고 별났던 나는 무사히 어른이 되고 오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과연 10살이, 20살이, 30살이 될 수 있을지 아홉수의 마지막 날까지 의심하고 궁금하였다. 천지분간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어떻게 나는 오늘 살아 있는지가 매일 신기하여 신에게 감사하였다. 근거 없이, 서른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던 내게 서른은 인생의 끝처럼 느껴지는 막막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서른 넘어서의 삶을 하루하루, 내가 감히 바라지 않았던 선물 같이 귀한 시간들로 살고 있다. 

 

 

오래 사는 기분,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 그것이 궁금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이고, 일부는 이미 지났기에 영원히 겪지 못할 것이기에. 김형석 박사를 처음 안 것은, 작년, 집에 있다가 어머니께서 애청하시는 MBN <동치미>에서 특강하시는 것을 우연히 보면서였다. 98세쯤에 연애를 다시 하고 싶다며, 정년퇴직한 지 30년이 지났어도 강연과 저술을 멈추지 않고 계속 미래를 계획하며 삶이 전진하는 그를 보며 고개가 숙연해졌다. 어머니도 감동 받고 팬이 되었다. 이달 초 나온 그의 신작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를 어머니 선물로 드리기 위해 들여서는 어머니보다 먼저 읽었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읽기 쉬운 인생 에세이(인생론)’ 류지만 그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었다지만, 아흔 넘어서까지 사는 것은 드문 일이고, 그 나이에 완벽한 의사소통과 거동 뿐 아니라 저술까지 가능한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행복론, 결혼과 가정, 우정과 종교, 성공명예, 노년의 삶 다섯 가지 주제()로 한 장당 예닐곱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생 회고와 학문적 담론, 인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인생’. 책장은 술술 넘어갔으나 정신없이 인덱스로 표시하였다. 표시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책 전체를,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을 삶이 행복했다고 하면서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는 독서하는 조국을 바랐다. 별거 없는데 별거인 교육철학이 있었다. 이 책은 인생 버킷 리스트의 일환이다. 표시한 두 번째 방향은 근 100년을 살며 굳혀진 나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대표적으로 적어도 사람은 75세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보다 수십 년 더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표시한 마지막 방향은 책 군데군데 박혀 있는, 아포리즘 삼을만한, 한두 문장의 표현들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통적으로 부정한 것이 있다. 노인의 가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존경받을 가치 없는 꼰대라고 별별 이유와 별별 예시를 들어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훌륭한 젊은이가 아니고 훌륭하게 삶을 살아내지 않듯 모든 노인이 훌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연륜을 부정하는 것은 이념은 갈려도 결국 기저 공통분모는 경제 논리 때문이다. 이 소외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끔찍한 것임에도, 아직 늙어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김형석 박사의 이 신작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는 귀한 것, 인류 역사와 정신의 근간인 연륜을 새기고 존경한다. 특히나 격동의 한반도 백년을 온몸으로 겪은 그가 육필로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역사기록과는 또 다른, 전율마저 느끼게 하는 별스러움이 있다. 98세 연애담도, 진짜 100세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길. 멋진 어른을 알아 신명이 한참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백년이 늙은게 아니라 세월이 흘러간 것이라던, 몇달 전 SBS 뉴스 인터뷰가 깊게 인상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