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어른 초등학생] 나를 껴안는 시,간

 

 

 

3 3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고, 학교에서 자기에게 편지쓰기를 시켰다. 태어나서 처음 내게 썼던 편지,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그 편지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나에게 그 어떤 토닥임이나 응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의고사 몇점을 달성했는지, 혹시 마음이 바뀌어서 수시를 썼는지 한참 묻다가 내 미래를 확신하며 끝냈다. ‘믿는다는 나를 껴안을 줄 몰랐던 내가 내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애정 표현이었다. 그마저도 잘하지 못했다. 나를 껴안는 법을 배우기 전에 나는 이미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었다. 다섯 살에 갓난아기를 업고, 여섯 살에 다섯 살 아이를 밥 먹이고, 일곱 살부터 큰집살림을 시작하고, 여덟 살에 급우들이 토한 것을 치웠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결핍을 애인에게서 채우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여자가 아니라 엄마(아내)인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 심장이 산산조각났다. 누군가 아이답지 않은 아이를 볼 때 가장 슬프다고 하였다. 애어른인 것을 의식한 적이 없는 줄 알았지만, 그런 평가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며 상처받았다.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마스다 미리의 2013년 작 에세이 <어른 초등학생(원제 상동)>이 최근 박정임의 번역으로 나와 읽었다. 좋아서, 눈가가 자꾸 시큰하였다. 마흔셋의 어른’ ‘(마스다 미리)’초등학생’ ‘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이야기다. 일단 책을 말하는 책으로서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서평집 등 책을 말하는 책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이 (멋진 독서 가이드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나 (남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우월감에 빠져 독자들을 외롭고 불편하게 한다. 안 그래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땐 잘 안 들어오고 고독감에 휩싸이는데 젠체하기까지 하면 더욱 멀게 느껴진다. <어른 초등학생>은 책들을 말하나 어떤 꼭지도 그런 느낌이 없다. 두고두고 기억나는,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그림책 스무 권을, 그 책을 읽던 때의 일화와 맞물어 소개한다. 그리고 각 꼭지가 끝날 때마다 해당 책의 출판 정보(표지, 제목, 작가)를 언급해두었다. 이 책을 번역출간한 이봄(문학동네 계열사)은 번역 여부와, 번역 정보, 해당 책에 대한 짧은 소개도 담았다.

 

 

나는 그림책을 아주 좋아한다. 사서가 얼굴을 기억해 아이는 언제 데려 오냐고 묻는 어린이도서관이 몇 곳 있을 정도로 미혼 치고, 유관 직업이 아닌 것 치고 즐겨 읽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해서 읽으면서도 나름대로 아이와는 어떻게 읽을지를 고민해보곤 한다. 그래서 내가 아이였을 때 읽었던 그림책을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까가 무척 궁금했고 어린 나를 키웠던 소중한 그림책들의 상당수가 지금은 나오지 않음을 아쉬워하였다. 그런 점에서 <어른 초등학생>이 무척 부러웠다. 일본에서는 1969년생 작가가 초등학생 때 읽은 그림책이 지금도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는 스무 권의 그림책 중 절판된 것은 단 한권이라 그걸 찾으러 체코(체코 그림책이었다)다 여행간 이야기가 만화로 실려 있다. 물론 그림동화나 전래동화 같은 몇 백 년을 살아남아 부모와 자식이 당연하게 공유하는 그림책들도 많지만 이런 나온 지 몇 십 년밖에 안 된 현대그림책도 오랫동안 읽히며 공유하고 싶다.

 

  

에세이와 만화를 통해 구현되는 어린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는 어른 마스다 미리의 회상으로 살린 것이다. 그래서 어른의 시선이다. 이 어른은 어린 자신이 애틋하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 자꾸 말을 걸고, 안아주려 한다. 아이었을 땐 몰랐던, 어른이 되어서야 알고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은 어른의 자기애적 오지랖일 뿐, 어린 당시의 자신은 굉장히 씩씩했고 생각이 없었으며 충분히 아이스러웠다고. 다만 몰라서 친구에게 상처 입히고, 몰라서 어렵게 생각했던 것이 약간 아쉬울 뿐. 내가 눈물 지으며 <어른 초등학생>을 읽고 한참 책을 품고 있었던 것은 과거의 자신을 대하는 현재의 마스다 미리에 나를 투영시켰고, 너무나 공감했기 때문이다. 외모와 생기는 못해졌지만 나는 30대를 겪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나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럽게 대하고, 나를 토닥이는 여유를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그렇게 알고 싶었던 나를 껴안는 방법을 어른이 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저절로,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무럭무럭 늙어가는 이 시간의 순간순간이 즐겁다. 나의 어른 초등학생을 곱씹게 해준 멋진 어른 마스다 미리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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