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 -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1
강희안 지음, 이종묵 옮김 / 아카넷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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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소록] 꽃과 나무, 6세기, 세 사람

  

 

 

꽃다발 말고 화분을 선물하는 이성을 만나면 청혼하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동물만큼 식물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4년 전 아카넷의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 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첫 책이 강희안의 <양화소록> 역해본이란 것을 알고 언젠가 꼭 읽겠다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양화소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지이자 우리 역사에서 화훼와 분재를 다룬 저술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책이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으로 30쪽 정도이고, 주제와 내용상 한국 고전을 읽을 때 우선순위로 잘 두지 않는 책이다.(세조 때로 추정되나 정확한 집필 시기를 알 수 없고 독립 저술로 발표되지 못하고 강 씨 집안의 문집에 실린 상태로 알음알음 발췌 필사되었다) 국산 전문 원예지의 효시 격이라고는 하나 스스로 경험한 바를 기록한 관찰일기에 가까운 책이다. 게다가 6세기 전의 이야기, 수많은 종이 멸종한 시간이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는 단순한 텍스트의 번역을 넘어 깊이 있이 있는 학술 번역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필자의 개인적 역량에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더하여, 텍스트의 번역과 동시에 해당 주제를 통관하는 하나의 학술사, 혹은 문화사를 지향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고전이 동아시아의 고전, 혹은 세계의 고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p.6

 

 

수많은 고전 번역본이 나온다. <양화소록>의 경우도 이 책 출간 전 을유문화사의 번역본이 오랫동안 정본(?)처럼 기능해왔고, 이 책 출간 이후에 나온 눌와의 번역본도 그해 디자인이 좋은 책으로 수상되기도 했고 만듦새가 괜찮다. 그럼에도 4년 동안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아카넷의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으로서의 <양화소록>을 집은 것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이종묵 교수의 역해 때문이었다. 어찌나 살을 많이 붙였는지, 원문의 근 10배 분량이다. <양화소록>의 역해자이기 전에 국문학자이고 시리즈의 기획의원으로서 이종묵 교수는 고전 독서의 의미에 큰 초점을 둔다. 아무리 좋은 글이고 현재적 의미가 있더라도 고전은 과거의 글이고, 그래서 현재의 프레임에서 의미 있는 번역본을 제안하고 읽힐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풍부한 역해로 새로운 책처럼 느껴질 정도이기에 아카넷의 <양화소록>을 읽고 을유문화사나 눌와의 <양화소록> 원문 번역만 읽으며 비교 독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원문] 앞서 보았듯이 서향화는 고려 말 원나라를 통하여 들어왔다. 그로부터 강희안이 <양화소록>을 편찬한 것은 100여 년 남짓 지나서이다. 그러니 이때까지도 서향화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그 재배법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강희안의 집 사우정에 서향화가 있으니 중국의 문헌을 조사하고 또 스스로 재배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서향화를 키우는 법을 익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가꾸는 정성이었다. 그렇게 하여 아름다운 서향화를 얻었다. - 7.서향화 (p.211)

  

 

그래서 아카넷의 <양화소록>은 독서를 통해 꽃과 나무6세기의 시간을 세 사람이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책이다. 15세기부터 21세기, 강희안과 이종묵 교수와 독자 세 사람이 같은 꽃과 나무를 보고 생각하는 시간. 이종묵 교수는 <양화소록>에 영향을 준 더 오래된 책부터 <양화소록> 이후로 조선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 유관 저술과 예술작품들을 소개함으로서, 강희안과 독자와의 시간적 간극을 촘촘히 채워준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노송, 만년송, 오반죽, 국화, 매화, 난초와 혜초, 서향화, 연꽃, 석류꽃, 치자꽃, 사계화와 월계화, 산다화, 자미화, 일본철쭉, , 석창포, 괴석 17가지의 화훼물을 다룬다. 그에 화분에서 꽃나무를 키우는 법이나,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등 자신의 화초 가꾸기 노하우를 공유한다. 원예에 대한 그의 태도와 글쓰기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가 <양화소록>에서 그러했듯 수많은 선비들이 <양화소록>을 구해 읽고, 인용하고, 영감을 받아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 영조 시기 유박의 경우 <화암수록>이라는 원예 전문서를 쓰며 <양화소록>의 부록이라고 헌정하기도 하였다. 


 

[원문] 세상 사람들은 여러 꽃의 이름과 품종에 익숙하지 못하여 산다를 동백이라 하고 자미화를 백일홍이라 하며, 신이화를 향불화라 하고, 매괴화를 해당화라 하고, 해당화를 금자화라 한다. 같고 다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서로 혼동한다. 어찌 꽃의 이름만 그러하겠는가? 세상사가 모두 이와 유사하다. - 13.자미화 (p.320)

 

강희안의 원예 취미는 군자의 도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수양 성격의 양반 문화, 선비 문화이다. 예나 지금이나 식물을 가꾸고 기르는 일은 손도 많이 가고 여러모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이다. <양화소록>은 저자의 지위상 당대 최상위 취미유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것은 취미 규모의 과시보다 이 취미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희안은 관물찰리(대상을 보고 그 이치를 헤아림)하기 위해 꽃과 나무에 애정을 쏟았다. 강희안은 식물을 키우는 양생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양생이 같으며, 화훼를 돌보며 그 이치를 살피고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선비의 공부라고 보았다. 학자이자 관리이고 왕의 인척이기 전에 조선전기 대표 예술가이기도 했던 강희안. 이리저리 꺾꽂이를 하고 접붙이며 식물의 외양을 만드는 그의 원예도 혼이 살아 숨쉬는 예술로 느껴진다. 또 그에 영감을 받아 바로 시를 짓는다거나 과거의 서책을 찾으며 사색하고 흥을 향유하는 것은 어떻고.


 

[원문] 주상전하가 등극한 지 23년 된 해 봄, 일본에서 철쭉 몇을 진상하였다. 주상께서 내정에 두게 하였는데 그 꽃이 피자 단엽에 꽃송이가 무척 크고 빛깔은 석류와 비슷하였으며 겹겹으로 꽃받침이 붙어 있었다. 오래도록 꽃이 지지 않아, 색이 자색이고 천엽인 우리나라 품종과는 그 고움과 추함이 모모와 서시의 차이 이상이었다. 주상께서 아름답게 여겨 감상하시고 상림원에 나누어 심게 하고 바깥사람들에게 숨겨 아무도 이를 구하지 못하게 하였다.

  다행히 내가 인척이었기 때문에 한 종실 사람에게 작은 뿌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성품을 알지 못하여 하나는 화분에 심고 하나는 땅에 심어 시험을 해보았다. 땅에 심은 것은 얼어 죽었지만 화분에 심은 것은 탈이 없었다. 몇 년 사이에 가지가 번성하더니 4~5월이 되어 다른 여러 꽃이 진 후에 꽃을 피웠는데 자태가 농염하여 붉은 비단처럼 흐드러졌다. 실로 누추한 우리 집에서 감히 감상할 것이 아니었다. 객이 왔기에 화분 하나를 보여주었더니 아무도 무슨 꽃인지 알지 못하였다. - 14.일본철쭉 (p.331)


 

남귤북지가 정말인지 의심하며 한양에서 귤을 키우는 데 성공하고 그를 기록하는 대목에서 그의 탐구열을 엿볼 수도 있었다. 또 당대의 인식에 반기를 들며 산다와 동백, 자미화와 백일홍을 구분하는 등 치열하게 식물의 종을 공부하면서 즐기는 자세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 원문, 그리고 이종묵 교수가 추가로 보여주는 온갖 선비들의 글에서 엿보이는 원예에 대한 열정과 함께 가장 부럽게 느껴졌던 것은 정신적 여유였다. 아카넷의 <양화소록>의 내용 중엔 지금은 다시 구분이 달라졌거나, 무엇인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시중에서 취급하지 않는 꽃도 있다. 이렇게 다른 시간, 다른 시선의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이 있음에도 세월에 변치 않는 가치(정신)가 있기에 이 책에 푹 빠질 수 있었고, 이 책이 지금도 고전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흔히 가드닝이나 원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서양 책 위주로 참고하고 먼저 집는데, 꽃과 나무를 벗하는 선비의 기록 <양화소록>을 통해 한국적 정원 미학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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