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터즈 - 눈만 뜨면 티격태격, 텔게마이어 자매의 리얼 버라이어티 성장 여행기
레이나 텔게마이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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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터즈] 여동생들은 대체 왜 그럴까요? 본격 여동생 분석 그래픽노블

 

 

 

19901022일 오후 415분 그자가 태어났다. 어머니(아내) 몸에서 곧 사람이 생산된다는 사실에 진정이 되지 않던 나와 아버지는 쫄쫄 굶고 있었다.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긴장이 풀린 부자가 조금이라도 요기를 하려고 붕어빵 하나 먹고 왔더니 그자가 나타나 있었다. 할머니께서 으미, 화상들하며 그 중요한 순간에 처먹으러 나갔다 왔다며 두 사람의 등짝을 때렸다. 큰애가 돌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치밀하게 터울 계산하여 낳은 아이였고,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긴 진통에 지쳐 깊은 잠에 빠졌고, 아기는 빨리 씻겨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춤을 췄고, 아버지는 염화미소를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며 미래는 막막할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낀 나는 고래고래 울부짖었다. “나는 쟤한테 미미(인형)도 안줄 거고 토토(자동차)도 안줄 거고(이하 온갖 장난감 이름 나열)안줄 거야!” 어이없다며 웃는 어른들을 뒤로 하며 나는 생애 처음 인생의 쓴맛을 느꼈다. 그날 나의 왕국이 무너졌다.

     

 

어디서 많이 본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Smile(2010, 국내 미번역)>의 작가였다. 교정기를 낀 변형 스마일이 작가 본인을 상징한다고(<씨스터즈>에는 여동생 스마일도 표지에 등장).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고, 상도 받은 작품이라 SNS에서도 많이 회자되어서 표지는 익숙한 작품이었다. 돋을새김에서 <씨스터즈(2014)> 번역본을 냈다는 소식을 알고 같이 읽으려고 찾아보니 <Smile>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없는 상황이었다. 없어서 못 읽지 만화와 그래픽노블을 좋아하기도 하고, 집에 미국 그래픽노블은 소장하고 있는 게 없어서 호기심에 덮어놓고 읽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그림체가 추억은 방울방울해서 끌렸다. 미국 냄새라고 해야 하나, 책을 펼치자마자 그립고 익숙한 감정과 조우하였다. 나는 90년대 어린이였다. 매일 TV에서 애니메이션을 방영했고,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특선 애니메이션이 몇 개고 편성되어 있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미국, 유럽 애니메이션도 일본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방영되었다. <피너츠> 등 미국만화를 가장 먼저 접했다. 대부분 레이나 텔게마이어의 그림체 같았다.

 

레이나 텔게마이어는 풀컬러 그래픽노블을 그린다. <Baby-sitters Club(2006-2008, 국내 미번역)>은 리메이크였고, 창작 장편은 <Smile>, <Drama(2012, 국내 미번역)>, <씨스터즈> 밖에 없어 아직 작품세계를 속단할 수 없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생각났다. 노희경이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빼놓지 않는 설정은 세상의 모든 딸들은 그 모양이다(못됐다)’. 남들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인 여자도 어머니하고는 투덕거리고 상처 입히는 딸로 그린다. 그게 그녀 평생의 문제의식이고 극작을 통해 자기 속죄하고 있다. <Smile><씨스터즈>는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Smile>에서 잠깐 등장하는 여동생 아마라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자매 이야기를 주제로 푼 책이 <씨스터즈>이다. <씨스터즈>를 통해 레이나 텔게마이어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세상의 모든 ()동생들은 문제다. 형들이 고생이 많았다, 이것들아.’ 앞으로 같은 메시지의 그래픽노블을 계속 그릴지 궁금하다. ‘형제는 마르지 않는 소재의 원천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내게 포대기가 지급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귀엽다고 하지도 안아주지도 않았다. 사라졌던 내 젖병과 딸랑이가 나타났고, 내 등과 장난감은 그자의 침 공격을 당해야 했다. 어머니는 소꿉놀이에서 아기 역할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지만 딱 그 뿐이었다. 똥 싸재끼고, 울고, 무겁고, 귀찮아! 지금은 나이 어린 쌍둥이고, 취향도 비슷하지만 처음엔 같은 원료로 같은 공장에서 생산했는데 모든 게 달랐다. 높은 곳만 발견하면 보자기 매고 가서 뛰어내리고 전대물 놀이에 심취하던 나와 달리, 그자는 집에 처박혀 블록이나 로봇 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의지하다가도 수틀리면 태세 전환해 맨날 나만 혼났다. ‘쌔가 빠지게숙제를 해놓으면 그자가 고치거나 베껴서 ‘(나이에 맞지 않는)고퀄리티라고 지네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물론 한두 살 차이 나는 형제만큼 격렬하게 싸우진 않지만, 그렇다고 우애가 퐁퐁 솟고 평화롭지는 않았다. 서로의 영향으로 나는 나잇값을 못하고 그자는 겉늙었다. <씨스터즈>를 읽으며 미국 언니 너도 그랬냐며 책등을 토닥거렸다. 객관적으로 독서를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내가 큰놈이어서 그런 걸까. 동생, 외동들은 어떤지.


 

단 하루만이라도 동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아마라는 레이나의 업보다. 레이나가 수많은 큰놈들이 저지르는 실수 동생 낳아 달라타령을 부모님께 시전 했으니. 아기 아마라는 속을 알 수 없는 파괴왕이었고, 어린이 아마라는 언니안티왕이다. 그런 아마라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레이나-아마라 비슷한 터울(5)로 남동생이 생겨 동생 가진 자의 쓴맛을 알게 된 것. 그래서 레이나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본능적으로 언니를 보면 못 놀려 안달이다. 앞서 <Smile>-<씨스터즈>의 관계처럼 후속작을 언급한 것은 이 책의 구성 때문이다페이지 배경 톤을 달리 해 과거회상과 현재가 계속 교차하게끔 구성해 놓았다. 그래서 레이나가 어떻게 언니가 되었는지, 언니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얘기들이 담겨 있지만 막상 이 책의 주제인 현재는 한 가지 사건이다. 멀리 사는 사촌을 만나기 위해 엄마와 세 남매가 캠핑카를 타고 일주일 여행하는 이야기(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비행기 타고 따로 옴)로 책 한권을 끝냈기 때문에 이런 구성이라면 500권도 넘게 연작 시리즈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을까, 실제로 더 특별히 애증이어서 일까. 뒤표지에는 슈퍼 왕짜증이라고 표현해두긴 했지만 <씨스터즈>에서 막둥이 윌과의 갈등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제목대로 자매 전쟁에 주 초점을 맞췄다. 겁이 많고 얌전한 레이나와 달리 까칠하고 힘이 넘치는 아마라. 가족여행에서도 레이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가는데 아마라는 시종 언니 괴롭히기에만 관심이다, 게다가 애완용 뱀까지 태워서 레이나를 떨게 하는데. 그런데 아무리 미워도 형제는 까도 내가 까는’ ‘애증관계다. 오랜만에 사촌을 만나서 반가움도 잠시 생각보다 잘 안 맞고, 결국에는 그래도 레이나-아마라 연합이다. <씨스터즈>는 책 내내 묻는다. ‘도대체 동생들은 왜 그렇냐고.’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 모든 동생들에게 형 눈엔 어렸을 때 당신들 이렇게 보였노라고는 말할 수 있다. 동생들의 대답, 부모의 대답이 궁금하다.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그래픽노블이었을까.



(서평을 쓴 후에 <Smile>이 작년에 예림당에서 <웃어도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걸 알았습니다. 해당 책 네이버책DB에 원서 연결이 안 되어 있고 작가 이름 표기도 영문 표기 없이 '레이나 텔거메이어'로 되어 있어서 몰랐습니다. 서평 준비하면서 좀 더 치밀하게 검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p.s.- 책 끝에 실제 텔게마이어 자매 사진이 나온다. 그림체와 묘하게 닮았다. 이미 읽으면서 이성을 상실하고 서평에 개인사도 많이 털어 놓았을 만큼 <씨스터즈>를 읽고 그자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도 형제가 있어서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이 책을 읽고 있던 순간에도 그자와 꼭 붙어서 기차여행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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