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 지음, 박준형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현실적인 처방서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다른 어떤 시스템보다 더 나은 경제적 성과와 혁신을 만들고, 가치를 창조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단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점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주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14개 단점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빈곤은 소득 불평등 문제의 일부이고, 이는 다시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높은 실업률 문제가 이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2가지 해결책인 긴축재정과 부양책이 충돌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정치적 로비가 끼어들면서 정치인들이 금융규제와 환경보호 같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 권력 유지를 위해 표를 행사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문제들이 끼어든다. 예를 들어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기업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실업이 늘고, 기업들은 해외로부터 수입을 늘려서 자국 내의 일자리는 더 줄어든다. - p.335

 

 

현대 경영학이 낳은 최고의 천재이자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이후, 필립 코틀러 말고 또 경영학에서 ‘아버지’의 타이틀을 획득한 이가 또 있을까. 1931년생으로 올해 85세인 그는 서른여섯에 <마케팅 관리론>을 쓰며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널리 확산시키고, 학문적 기틀을 잡았다(마케팅이라는 자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발생). <마케팅 관리론>은 올 초 15판이 나왔으며 여전히 직접 쓰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여전히 활발하게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마케터로 일하거나 마케팅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큼 유명한 구루이다.

 

 

재밌는 것은 그가 경제학 박사이면서 경제서는 거의 쓴 적 없는 경영학자라는 점이다. 그것도 대학교 2학년 때 쓴 논문으로 무시험으로 시카고대학 석사과정으로 바로 들어간 후, 밀턴 프리드먼(시카고대학교), 폴 새뮤얼슨(MIT), 로버트 솔로(MIT) 세 사람 모두의 제자였고,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수학을 시카고대학교에서는 행동과학으로 박사후과정을 마쳤을 만큼 경제학도로서 가능한 정통엘리트진학코스를 다 밟은 인물이다. 시카고대학교는 신자유주의의 최정점에 있는 새고전학파의 요람이고 신자유주의의 창시자가 밀턴 프리드먼이다. MIT는 케인즈학파의 요람으로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는 신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를 아우르는 대표적 경제학자이다.

 

 

그런 필립 코틀러가 드디어 경제서를 썼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를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면서도 그까지 입을 여는 것을 보니 현재 자본주의가 위기이긴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였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일목요연한 프레젠테이션을 보는 듯 깔끔하고 정갈하였고 분량은 적당하였다. 모든 내용이 각각 완성도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촘촘히 얽혀 있었다. 처방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필립 코틀러는 말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너무나 두꺼워 완독한 이가 많지 않다고,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는 설명도 간명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쓴 책이기에 이런 분량과 구성을 갖추고 있다.

 

<자본주의의 14가지 단점> - pp.32~33

1. 지속적인 빈곤에 대해서 해결책을 거의 또는 아예 제공하지 못한다.

2.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진다.

3. 수십억 명의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못한다.

4. 자동화 때문에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5. 기업들이 사업을 하면서 사회에 초래한 비용 전체를 부담하지 않는다.

6. 규제가 없을 때, 환경과 천연자원은 남용된다.

7. 경기순환과 경제 불안정을 유발한다.

8. 지역사회와 공익을 희생시키고, 대신 개인주의와 사리사욕을 강조한다.

9. 개인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도록 조장하고, 생산 중심의 경제가 아니라 금융 중심의 경제구조를 이끌어낸다.

10. 정치인과 기업의 이익단체가 결탁해 시민 대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막는다.

11. 장기적인 투자계획보다 단기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계획을 선호한다.

12. 상품의 품질과 안정성 문제, 과대광고, 불공정 경쟁행위가 만연한다.

13, GDP 성장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14. 시장에 적용되는 공식에 사회적 가치와 행복이 빠져 있다.

 

필립 코틀러는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의 단점 14가지를 나열한다. 그리고 각각의 단점을 검토하며 실질적인 제안을 하며 마친다. 이 정도도 읽기 피로한 독자를 위해 한 눈에 책을 파악할 수 있게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장을 짧게 요약해두었다. 필립 코틀러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가장 최선의 경제체제이며 '더 나은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굳게 믿는다. 필립 코틀러가 분석한 자본주의의 속성은 이 14가지 단점이 각자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인데, 전략적으로 서술하여 그 역학관계가 좀 더 잘 보이도록 해놓았다. 특히 필립 코틀러는 이 14가지의 가장 중심에 소득 불평등을 놓으며 강조하고 있다. 소득과 부의 문제만 놓고 보면 피케티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그게 이 책의 전부가 아니며 이 책의 백미는 신선한 해법에 있다.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에서 필립 코틀러는 경제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짤막하게 말한다. 필립 코틀러는 행동 중심의 시장경제학자이자 시장에서 마케팅의 역할과 힘을 무시하지 않는 경제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경력이 자본주의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책을 목표로 썼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경제서지만 수식이나 그래프가 등장하지 않는다. 앞서 해법이 신선하다고 평가한 것은 내용보다 방식을 두고 한 말이다. 보통 ‘더 나은 자본주의’의 해법을 논하는 책들이 현황 분석과 비판에만 몰두하고 해법은 몇 가지만 제시하고 끝난다. 그런데 이 책은 해법이 각 장별로 대단히 다양한데다가 엄청나게 혁신적인 것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실천 가능한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런 대안을 최대한 많이 말해놓겠으니 이것들만이라도 지켜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증세의 경우 단순히 소득이 높고 재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걷으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문에서 세금을 제대로 못 걷고 있는지를 짚고, 수치를 어느 정도까지 올려볼 수 있는지 역사를 검토하는 식으로 굉장히 자세하게 제안한다. 그래서 크게 보면 이미 나온 이야기들이지만 적용 가능성을 훨씬 높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 직업 만족도와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급휴가와 휴일을 늘리라거나, 일자리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성장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미국식 자본주의와 기업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대목은, 미국 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경영 이론을 전적으로 따르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의 원제는 ‘Confronting Capitalism’이다. 우리말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어감이라(‘자본주의의 당면 과제’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까) 편집부가 무척 고심했을 것 같다. 부제와 표지까지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제목인 것 같다. 여러모로 ‘더 나은 자본주의’를 논하는 책 중 굉장히 읽기 편한 책에 속한다. 300쪽 조금 넘는 분량, 책 한 권만 읽고 현재 자본주의의 쟁점을 파악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의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주저 않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필립 코틀러의 독서 이력을 엿볼 수도 있는 책이라 이 책을 괜찮은 추천서 리스트로도 활용할 수 있다. 책 편집과 번역이 함께 진행되었는지 원서가 미국 기준 올 4월 15일에 나왔는데 한국어판 저자 서문이 포함된 번역본이 단 며칠 차이로 출간되었다. 그만큼 출판사가 자신 있게 내놓는 책이라는 것인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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