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김욱동 지음 / 소명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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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호모 디지투스는 호모 사피엔스를 품는다

 

 

앤드루 솔로몬은 평생 난독증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예일대와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선 심리학 박사 과정 까지 밟고 있다. 1,000쪽이 넘는 책을 써 각종 도서상을 휩쓸었다. 내가 그를 보며 얼마나 많은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20대 후반에 원인 불명의 난독증으로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의 오탈자를 알아채긴 커녕 능동과 피동을 구분하지 못하고 어순이 뒤바뀌고 문장이 뒤엉켜 보이는 증상을 겪기 시작하면서 나는 공부를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었다. 뇌에는 아무 하자가 없다는데, 정신병자로 몰리면 어쩌나 그래서 취업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며 외울 수 있는 모든 건 외웠다. 1년이 꼬박 걸려 지금은 스스로도 별 이상을 못 느낄 만큼 예전으로 돌아왔다.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읽고 쓰고, 강박적으로 활자를 대하는 버릇이 남았다. 그래서 독해가 예전보다 더 정교해진 것 같다가도, 책을 읽는 속도는 여전히 대중없이 들쭉날쭉하다.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고 생각을 안 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앤드루 솔로몬이나 내가 앓고 있는 난독증이 본인에겐 심각한 문제인데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토익 등 각종 시험을 잘 못 보는 이유를 아무리 얘기해도, 노력 안한 것을 핑계 댄다고 생각하지 믿지를 않는다. 편집자보다 책 속 오탈자를 더 잘 찾고, 지인들이 SNS나 메신저에서 오독하는 것을 바로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디지털 난독이 흔한 시대인 것이다. 졸지에 앤드루 솔로몬이나 나 같은 이들은 별 것도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떠는 완전 정상인이 되어 버렸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은 20세기의 대학 교육이 쓸데없이 많은 인문학 전공자를 배출하였고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면서 교육법을 바꾸고 인문학 스스로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성토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지금의 인문학 담론은 디지털 시대를 의식하며 형성되고 있다.

 

소설 <폼페이>(2003)를 매일 저녁 30쪽씩 읽게 하고 그 이튿날 아침 역시 뇌 자기 공명영상으로 측정해 보았다. 소설을 읽은 뒤에도 닷새 동안 매일 아침 같은 방법으로 뇌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소설을 읽은 이튿날 아침에는 언어의 감수성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좌측두엽의 신경회로가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 p.69

앨빈 토플러는 <미래 충격>(1970)에서 이러한 정보 과잉이나 폭주 현상을 신체 비만에 빗대어 정보 비만(infobesity)’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정보를 뜻하는 인포와 비만을 뜻하는 오비시티를 한데 합쳐 만든 신조어다. 물론 토플러는 이 용어를 지나치게 정보가 폭주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정보 비만이라는 용어는 은유적 표현 못지않게 글자 그대로 축어적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무리가 없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최근 들어 디지털 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나머지 과체중이 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p.84

학자들이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하는 방법은 예전과 눈에 띄게 달라졌다. 즉 옛날의 논문들은 좀처럼 인용하지 않고 최근 논문들만 인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보 이용은 편리해진 반면 연구의 폭은 전보다 훨씬 좁아졌다. 정보의 양이 아무리 많고 이용하기가 아무리 편리해졌어도 정보의 질이 오히려 옛날보다도 못하다면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학자들한테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여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구어와 문어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언어의 질이 떨어졌을 뿐더러 적잖이 오염되기도 하였다. - p.85

국내 영미문학 번역의 대표적인 권위자인 김욱동 박사가 올 1월 신간을 냈다. 그런데 지금까지 냈던 문학 이론서나 영문학 및 번역과 관련한 책이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일반 인문서의 형태이다. 제목은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이다. 지금껏 50여 권이 넘는 책을 내왔으나 이 책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원고를 쓴 적이 없다(p.5)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오죽하면 펜을 잡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대학 강단에서 내려온 지 꽤 된 노학자였다. 가르치는 일과 멀어진 이였다. 일부러 쓰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학자로서의 양심과 소명의식을, 저자의 통렬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은 각종 인문학 강좌에서 발표했던 글을 모아 한 몸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흔히 모음 글 형태로 내는 일반적인 단행본화한 강의 책과는 다른 책이다.

 

그리고 책 자체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200쪽도 채 안 되는 분량에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많이 넣고, 문장이 평이하다. 또 온갖 정보의 인용과 큐레이션으로 점철된 백과사전식 혹은 자기계발서형 구성을 취하고 있다. 11장으로 구성된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은 디지털 시대와 인문학의 현황을 6장에 걸쳐서,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이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를 4장에 걸쳐서 다룬 다음 마지막 장에서 정리 및 결론을 내리며 끝낸다. 유일무이하고 새롭다는 느낌은 주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우리 언어로 다룰 필요는 충분하였던 책이었다. 인류의 언어는 음성 언어 중심에서 문자 언어 중심으로 진화하였다. 디지털 시대 도래 이전의 활자와 책 자체가 인류 정신의 총체였고 지식 권력의 원천이었다. 그 헤게모니를 디지털 시대가 완전히 무너뜨렸다.

더 많은 아이를 접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내면화하여 풍성한 이해력과 공감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 아이가 책을 잘 읽는 아이가 될 수 있다. - p.94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매클루언의 주장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30대 말부터 시력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한 니체는 더 이상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쓰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1882년 그는 마침내 몇 해 전 한스 말링-한센이 발명한 타자기를 구입하였다. 두 눈을 감고도 니체는 이제 타자기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문체가 예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데 있다. 니체의 산문이 전보문처럼 짧고 경구적인 데다 좀 더 탄탄하게 되었다. - p.103

거의 무한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엄청난 디지털 정보를 흔히 바다에 빗대고 있지만,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인터넷 이용자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유익한 정보를 낚기보다는 그 바다에서 익사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러나 막상 지혜나 지식에 대해서는 사막을 여행하는 목마른 사람처럼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정보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정보 고속도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교통이 막히기 일쑤다. 이렇게 양만 많을 뿐 이용 가치가 별로 없는 정보를 두고 흔히 인포-가비지(infogarbage)’라고 부르는 사람들마저 있다. 산업 쓰레기나 폐기물이 지구 생태계를 망가뜨리듯이 이러한 정보 쓰레기도 인간의 정신 세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 p.105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텔리겐치아의 태도는 현재 둘로 나누어져 있다. 한 가지 태도는 과거의 부르주아지 지식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디지털 시대에서 희망을 본다. 새로운 시장을, 더욱 용이해진 대중 선동의 가능성을 본다. 대중들은 계속 모르고 문제의식이 없어야 한다. 대중들이 정보의 홍수에 멀미를 느끼고, 생각하기를 싫어할수록 인포그래픽과 큐레이션은 독점되고 인텔리겐치아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진다. 그저 인문학이 위기고 여러분은 바보라고 할 뿐 해법을 알리는 데는 소극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기꺼이 대중을 가르치고 그들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것이다. 대중을 동시대를 사는 동반자로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한다. 모두가 최악의 길을 피할 수만 있다면 선교사 같은 투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욱동과 이 책은 후자의 태세를 취하고 있다.

보통 대학 내 인문학의 위기를 논할 때 구조조정에 열을 올리는 대학이나, 예전 같지 않은 대학생들을 주로 언급하는데 저자는 인문학자들 자체를 서슴지 않고 맹렬히 비판한다. 전세계 논문의 디지털 DB구축이 이루어진 이후 전자화된 최근 논문 위주로 인용하는 연구 풍토가 형성되었는데, 과거의 지식 유산을 찾아보지 않는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옳은 태도냐고 묻는다. 신조어 쓰는 재미에 빠져 언어 파괴와 축소에 기여하고 있는 대중도 문제지만, 그걸 방관하고 편승하고 부추기는 지식인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문학의 건강한 미래에 있어 모두가 취할 수 있는 해법이 있다고 강하게 확신한다. 그렇기에 무기력하고 비관론에 빠진 사람은 꾸짖고 함께 힘을 내자고 독려한다.

 

디지털 시대에 피상적인 독서는 가능하지만 심오한 독서를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 전통적인 독서 방법이 바로 심오한 독서. 버커츠는 진리나 의미, 인간의 본성과 삶의 과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는 이러한 독서 방법밖에는 없다고 지적한다. (...) (심오한 독서는) 책 한권을 천천히 명상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에서 삶에 대해 꿈을 꾼다. - p.108

인문학의 영혼은 바로 활자 매체와 책 그리고 도서관이다. - p.200

활자 매체와 책이 사라지면 인터넷도 사라진다. 이 두 가지는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돈을 주고 사고판다는 정보화 시대, 아날로그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디지털 왕국을 세운 디지털 시대에 인문학은 옛날의 인문학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이점에서 인문학도 집을 나간 탕아와 같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좌절과 절망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탕아처럼 인문학도 디지털 세계에서 온갖 희열과 희망, 좌절과 절망을 겪은 뒤 다시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올 것이다. 만약 인문학이 디지털 문화와 손을 잡는다면, 그래서 참다운 의미에서 창조적으로 통섭을 이루어낼 수만 있다면 21세기에 학문의 왕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 p.201

생각이 다른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의 담론에서 또 다른 위로 혹은 힐링을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디지털 바보론은 화살이 개인에게 겨누어져 있다. 이렇게 훌륭한 기술을 똑바로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바보를 자처하다니 유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은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매체가 달라지면 사유가 달라지고, (인간발달과정에 있어) 독서 발달이란 개념을 망각해 버렸고, 학습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보 선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무언가를 읽어도 뇌가 상당히 활성화된다. 디지털 치매와 난독은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만, 그것의 발생 이유가 개인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따스한 위안이다. 저자는 디지털 문화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을 대하는 자세는 누구보다 애틋하고 사려 깊다. 마음씨 좋은데 똑똑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책이었달까.

저자의 결론은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디지투스로 진화해야 한다.(p.199)”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통합적 사고, 통섭이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기치가 아니라, 문자 시대의 인문학에도 존재했던 인문학의 본질적 기능이다. 활자(아날로그)와 디지털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그래서 그는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완전히 바뀔 수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예민한 성인 독자의 경우 학술 출판 전문 소명출판사의 책이고 대학 교수였던 저자의 책이기에 기대하고 들었다가 약간 당황할 수 있다. 문장이나 내용 자체도 굉장히 쉬울 뿐더러, 청소년서에서 많이 쓰는 편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청소년서 같은 일반교양서의 모양새를 취하는 까닭은, 저자의 최근 관심사가 청소년 교육이기도 하고, 청소년을 주 타깃 삼아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책을 읽을지 말지 선택하길 바란다. 청소년 혹은 책을 잘 안 읽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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