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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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셜로키언이 뤼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1886, 한 젊은 영국인 의사가 생활고 때문에 연재하게 된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가 초대박이 났다. 옆 나라 프랑스에도 곧 번역되어 큰 인기를 누렸지만 프랑스인 독자들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즐겁게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우리 프랑스에는 내로라 할 만한 이런 소설이 없을까 하며 씁쓸해 한다. 항상 옆 나라를 의식했던 프랑스지만 대영제국도, 셜록 홈즈도, 그리니치 본초자오선도 죄다 못마땅했다. 의욕적인 잡지 편집장 피에르 라피트는 프랑스의 코난 도일을 만들고자 적당한 작가를 찾다가 모리스 르블랑을 발굴하였다. 그렇게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몇 편의 단편소설 연재가 끝나자 모리스 르블랑은 대놓고 셜록 홈즈를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셜록 홈즈와 왓슨을 등장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코난 도일은 자신의 캐릭터를 쓰고자하는 모리스 르블랑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래서 모리스 르블랑은 이름을 교묘하게 바꿔 에헐록 쇼메즈(헐록 숌즈)’윌슨이 등장하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들을 내놓았다.

 

문제는 모리스 르블랑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조예가 별로 깊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시작할 때 그는 코난 도일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리고 재능 있는 작가였지만 코난 도일과 글 스타일이 정반대였고, 애초부터 셜록 홈즈를 희화화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아르센 뤼팽에서 숌즈는 외모 상으로는 셜록 홈즈지만 셜록 홈즈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기암성>까지 발표가 되었을 때 코난 도일은 강하게 불쾌함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셜로키언들이 뤼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뤼팽과 숌즈가 대결한 두 가지 사건을 다룬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는 자신이 셜로키언인지 아닌지 테스트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책이기도 한다. 전편인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단편 헐록 숌즈, 한발 늦다에 이어 이 책까지 별 거부감 없이 즐겁게 읽었다면 전체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읽고 뤼팽의 매력에 빠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에는 금발 여인이라는 장편소설과 유대식 등잔이라는 중편소설 두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단행본 상으로는 첫 번째 사건, 두 번째 사건해서 마치 장편 소설 하나인 것처럼 해놓았고 내용적인 연결도 어느 정도 있지만 공백을 두고 따로 연재했던 별개의 작품이다. 금발 여인은 사사건의 핵심까지 다가가는 데까지의 전개가 무척 재밌는 작품이다. 수학교사 제르부아는 딸 쉬잔에게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 중고 마호가니 책상을 사는데 한 젊은이가 자신에게 되팔라고 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런데 다음 날 책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본격적인 불행은 두 달 후 제르부아는 복권에 당첨되는데 그 복권이 도둑맞은 책상 속에 있어 당첨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책상을 다시 사려 했던 젊은이가 뤼팽이었고 뤼팽이 이 책상을 훔쳐서 복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뤼팽은 쉬잔을 납치해 당첨금을 50만 프랑씩 나누자고 협박하고, 쉬잔 때문에 당첨금 절반을 뺐긴 제르부아는 이를 간다.

 

한편 도트렉 남작을 죽이고 그가 갖고 있던 푸른 다이아몬드가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푸른 다이아몬드는 경매에 붙여져 크로종 백작 소유가 되는데 크로종 백작 역시 도난을 당한다. 두 사건에는 모두 뤼팽의 한 패인 금발 여인이 있었다. 복권 사건에서 쉬잔을 납치했고 뤼팽과 함께 사라졌던 여인이 푸른 다이아몬드를 훔치고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래서 크로종 백작 부부와 도트렉 남작의 상속자, 제르부아는 뤼팽을 잡기 위해 가니마르 형사 외에 숌즈와 윌슨을 부른다. 이미 전작에서도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과 여성 캐릭터들을 잘 엮는 편이었지만 이 장편을 통해 뤼팽 시리즈 전개에 있어 뤼팽의 여인들역시 주요한 코드임을 분명히 한다. 유대식 등잔에서는 금발 여인 사건 후로 별다른 사건 의뢰가 없어 심심해하던 숌즈와 윌슨이 도둑맞은 유대식 등잔과 그 안에 든 보석을 찾아달라는 앵블방 남작의 의뢰와 이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는 뤼팽의 경고장을 동시에 받고 다시 프랑스로 오면서 뤼팽과 대결한다. 그리고 뤼팽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여자의 의리 때문에 어이 없이 숌즈가 당한다.

 

뤼팽 씨, 무슨 일을 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두 명 있습니다. 한 명은 나고, 다른 한 명은 당신입니다.”

이들 사이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숌즈는 아르센 뤼팽을 체포하지 못했다. 숌즈에게 위팽은 체포를 포기해야 할 만큼 어려운 적수였으며 맞붙는 과정에서 번번이 뤼팽에게 우위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 영국 탐정은 끈질긴 집념으로 결국 유대식 등잔을 찾아냈다. 푸른 다이아몬드를 찾아냈던 일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에서 숌즈의 공적은 덜 빛났다. 유대식 등잔을 되찾은 정황도 그렇고 범인의 이름도 모른다고 발표해야 했으므로 대중이 보기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사나이 대 사나이, 뤼팽 대 숌즈, 도적 대 탐정으로서 볼 때 이 대결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막상막하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 모두 승리자인 셈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무기를 내려놓은 채 서로의 정당한 가치를 알아보는 맞수로서 점잖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p.297

 

코난 도일은 자신의 캐릭터가 다른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 나빠 했지만, 모리스 르블랑은 다른 작가의 캐릭터를 자기 작품에 쓰면서 어쨌든 뤼팽과 숌즈는 서로 인정했다고 하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하였다.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원래 연재분에 없던 에필로그가 추가되었다고 하는 게 이 부분을 말하는 것 같다. 제목은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인데 의외로 여인들의 활약에 더 눈이 갔던 책이었다. 문득 코난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이 사이좋게 교류하며 함께 글을 쓰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서로에게 없는 면을 채우고 서로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완벽한 꽤 재밌는 책이 나왔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웠다. 더 아쉬운 것은 아르센 뤼팽 전집에서 숌즈의 등장은 세 번째 책인 <기암성>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총 장편 16, 중단편 37, 희곡 4편으로 총 20권으로 구성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전체세서 숌즈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숌즈 때문에 뤼팽이 나타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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