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경제 -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마크 뷰캐넌 지음, 이효석.정형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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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경제] 경제학에 엿만 열심히 먹인 경제물리학 서론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한창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자기 극복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퀀트의 시대가 종말하고 다시 정통 경제학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지금도 금융인의 절반이 이공계 출신이며, 그 전공의 면면도 과거 수학과 통계학 일색에서 다양화되고 있다. 때문에 과거 사회과학의 꽃은 경제학이요 경제학의 꽃은 금융(경제학)이라는 말은 과거의 영광이 된 지 오래다. 현재 4년제 대졸자 취업의 경우 인문계가 이공계보다 다섯 배 이상 어렵고 여대 인문계는 더욱 불리하다고 한다. 그 주요인이 금융권 인문계 채용TO의 급감이다. 수많은 경제학도와 경제전문가들이 오늘도 경제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런 위기감과 문제의식에서 만난 경제물리학서 <내일의 경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어떤 인사이트나 아이디어라도 얻을까 싶어 열심히 읽었다.

 

 

복잡계 물리학에서 태동한 복잡계 경제학(경제물리학)과 금융물리학, 경제학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은 사실 1990년대부터 이루어진다. 1990년대 말 노벨경제학상수상자 등 내로라하는 경제학 석학들이 정통 이론에 근거해 운용한 롱텀 헤지 펀드의 대실패는 복잡계 이론의 가치를 높이고 기존 경제학에 의문을 갖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내일의 경제>는 상당히 기발한 발상으로 대중들에게 경제학과 경제물리학의 차이를 보여주고 경제물리학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준다. 경제학이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려면 적어도 일기예보만큼의 시스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상청 소풍날은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기상과학의 예측성이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의 예측에는 없으나 기상과학의 예측에는 있는 것을 경제학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 마크 뷰캐넌의 생각이다.

 

 

 

 

그것은 ‘탈평형’이다. 효율적 시장가설(EMH)로 대표되는 경제학이 일으킨 모든 문제는 학문의 성격이 '평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가 꼽는 탈평형적 사고가 강한 학문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대기 과학, 지질학 등이다. 기상학은 평형적 사고에서 탈평형적 사고로 거듭난 학문이란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래서 원제가 ‘Forecast’이다. 부제인 ‘What Physics, Meteor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 Can Teach Us About Economics’를 고려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파악된다. 이 직설적인 전형적 영어식 책 제목을 <내일의 경제>로 바꾼 사이언스북스(민음사)의 작명도 일리 있고 감각적이다. ‘탈평형’과 관련하여 양적인 되먹임, 플라즈마, 불안정성, 동역학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강력한 기제가 1990년대 물리학에서 등장한 복잡계 이론이다.  

 

 

"복잡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복잡계를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 복잡계를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 머레이 겔만

 

대중들에게 가장 인지도 높은 복잡계 물리학자를 꼽는다면 머레이 겔만과 이 책의 저자 마크 뷰캐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전공을 바꿔 여생을 복잡계 연구에 바치고 있는 머레이 겔만과 달리 복잡계 물리학만 파고 있다는 점, 복잡계 과학의 ‘전도사’라는 별명처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문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이기에 <내일의 경제>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역시 그였다. 고졸 이하는 약간 버거울 수 있어도 대학 재학 이상이면 경제학이나 물리학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잘 읽힌다. 역자가 두 명인데 둘 다 물리학 박사고 한 사람이 복잡계 전공자지만 두 사람 다 경제물리학과는 별 상관없는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용어들을 제대로 쓰고 이해도 상당해 놀라웠다. 그들의 깔끔한 번역 덕에 더 읽기가 쉬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발췌한 것들이다.

 

 

물리학과 집단행동 패턴 사이의 이 놀라운 관련성이 물리학자들이 금융과 경제학에 갑자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월 스트리트에 있는 회사에 고용되어 돈을 벌기 위해 금융 상품에 가격을 매기는 계산을 하는 물리학자들이 많지만, 명확하게 말하면 나는 매기는 계산을 하는 물리학자들이 많지만, 명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물리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 시장이나 경제를 자연적인 시스템으로 보고 이해하려 하는 물리학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 p.39

 

바슐리에의 가설(랜덤위크가설)이 확실하게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한 구간에 걸쳐 가격 변화비로 정의된) 시장 수익률 분포는 가우스 분포나 정규 분포가 아니고, 두툼한 꼬리를 가진 분포 곡선이다. 바슐리에는 틀렸다. 하지만 얼마나 틀렸을까? 정규 분포 이외에도, 그는 역사를 가정하지도 않았고 미래 움직임에 대한 가정이 시장에 관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위아래로 요동치는 신호(또는 주식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한 방법은, 실제보다 훨씬 복잡하게 들리는, 소위 “자기 상관관계(autocorrelation)”를 계산하는 것이다. 자기 상관관계는 “예측 가능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 p.148

 

여기서 메시지는 복잡한 게임에서 동역학은 정말 중요하며, 경제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동역학 없는 이론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평형 이론은 결국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시스템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시장을 효과적으로 모델링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매우 복잡한 게임을 분석하는 것이 유망한 방법처럼 보인다. - p.188

 

아서의 모델은 전략들의 경쟁만 남긴 매우 간단하고 추상적인 형태만 남았을 때도 그런 예측을 보여 주었다. 1997년 아서의 연구에 자극받은 2명의 물리학자 이쳉 장과 다미엔 샬레는 아서의 엘 파롤 게임을 전략을 계속 적응시키고 학습하는 부분만 남긴 간단한 지능적인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이 게임을 “소수자 게임(monority game)”이라고 불렀다. 물리학자들은 종종 하나의 전자와 하나의 양성자로 이루어진, 모든 원자 중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 원자”를 어떤 상황의 정수를 나타내는 간단한 모델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수소 원자를 이해함으로써 수십 개의 전자를 가진 복잡한 구조의 원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통찰력을 얻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수자 게임 역시 시장의 법칙에 대한 수소 원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p.216

 

이론은 과학의 창조적 원동력이다. 이론은 새로운 가능성과 숙고, 그리고 그럴듯한 전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론은, 그것이 과학 분야의 이론이라면 실험에 의해 다듬어져야 한다. 현실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이론은 쉽게 희망적인 사고, 또는 현실적 의미를 전혀 가지지 않는 아름답기만 한 이론으로 바뀌기 쉽다. 불행히도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이끄는 주요 거장들에게는 실제 현실에 대한 어떤 혐오가 종종 발견된다. - p.318

 

평형을 가정하는 것은 곧 시간의 역할이나 시장 동역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대학원 경제학 교과서에는 자랑스럽게 “우리는 동역학(dynamics)을 다루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오히려 각 개인이 그들의 모든 미래의 행동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최적화 문제의 해답으로서 지금 이 순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 시간과 동역학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 p.322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미시적 토대는 그 이론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p.329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모델들은 미시적 토대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인간 행동의 다른 중요한 모델들은 미시적 토대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인간 행동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335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며 읽지는 않지만 서평에 인용할 만한 인상적인 대목은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는 데 이 책의 경우 스무 개 정도나 나왔다. 그런데 이를 다시 정리하며 경제물리학이나 물리학과 관련된 내용을 추리니 별로 건질 것이 없었다. 그렇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해 조목조목 엿을 먹인다. 그런데 정작 그 해법이라는 경제물리학에 대한 내용은 ‘개론’도 아니고 ‘서론’에 그쳤다고 느꼈다. 그 이유 추측해보자면, 저자가 대중교양서적 측면을 너무 의식해 너무 쉽게 글을 썼거나 아직 경제물리학이 한창 성장형일 뿐 학부 교재를 만들 만큼의 이론적 체계와 완성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학문이 태동한 지 거의 20년이 된 지금 복잡계 이론이나 복잡계 경제학이란 용어는 전혀 낯설지 않다. 물리학에서 복잡계 이론이 등장한 것은 시대적 필연이었다. 20세기 말 거의 모든 학문의 주제가 ‘간학문’, ‘통합’, ‘통섭’이었으니 말이다. 복잡계 이론은 ‘통합 학문’이라는 거대한 꿈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물리학의 지대한 야망이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자본과 엄청난 인재들을 요구하는 분야이며, 전공자도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신화’의 영역이다. 현대물리학은 이미 그런 매력적인 괴물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어쭙잖은 인문계 전공자부터 약 파는 사기꾼까지 마치 ‘절대무기’. ‘만병통치약’처럼 갖다 쓰는 ‘양자역학’이다. ‘복잡계’는 더 혹하는 개념이며, 유의미성에 대한 논쟁도 첨예하다.

 

 

<내일의 경제>는 마크뷰캐넌이 현재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와 연구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책이었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어떤 이론이 폐기되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할지 이 책을 통해 지각할 수 있었던 것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경제물리학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설서 수준의 교양서를 원한 독자들에겐 실망스러운 책이다. 마크 뷰캐넌은 2011년부터 금융물리학을 주제로 한 개인블로그를 운영해왔는데 수많은 포스트를 일일이 읽어보는 대신 단행본 한권으로 저자의 현재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그럼에도 충분히 읽을 이유는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얼리어답터의 기분을 만끽해보는 차원에서. 각종 비문학 교양서를 킬링 타임 콘텐츠로 즐기는 독자, 경제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경제학도라면 시간 날 때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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