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유리감옥] ‘자동화’에 눈멀어 ‘인간’을 잃다

 

 

 

‘자동화’라는 이름의 달콤함에 우리는 기꺼이 ‘유리감옥’에 수감되고자 한다

기계의 편리함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유리’는 깨뜨릴 수 있다. ‘유리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는 쉬운 단어만 쓴다.”는 포크너의 비판에 “글의 울림과 어휘의 수준은 상관이 없고, 쉽지만 쓰고 싶은 바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어휘를 선택했다.”고 일축했던 헤밍웨이처럼 니콜라스 카의 글은 언제나 영리하고 쉽다. 그는 디지털사상가로 활동하기 전, 아이비리그에서 학석사를 마친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이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활자를 인간의 기억을 담은 지도라며 강조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대중들의 독해력과 집중력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초 단위’를 언급하며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대중들의 실태를 분석했던 그였고, 그래서 자신의 책을 하나의 이상적인 ‘블로그 포스트’처럼 일부를 보든 전체를 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중심 주제를 찾을 수 있도록 설계해놓았다. 누구나 문제의식을 갖고 도출할 수 있는 결론임에도 누구도 나서서 진지하고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는 이 시대 흥미로운 저자이다.

 

 

이번 신작을 전세계 동시출간했을 만큼 현재 그의 위상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처음 칼럼을 통해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고 고발하며 본격적인 디지털사상가로 변신하였고, <빅 스위치(2007)>에선 디지털 세계의 특징을 정의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2010)>에선 디지털 시대의 인간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자동화’를 소재로, 컴퓨터스마트폰 등의 스크린이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유리감옥’이라고 고발한 신작 <유리감옥(2014)>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니콜라스 카’다운 선택과 도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용운의 시 <복종>이 떠올랐다. “남들이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중략)” ‘유리’ 화면을 보는 동안 인간은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시간, 관심, 사고 모두를 빼앗는 ‘감옥’에 우리는 기꺼이 수감된다. ‘자동화’라는 기계의 편리함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은 기력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알다시피 여러분들은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다. 여러분들은 이런 특징 없는 유리 조각을 문지르는 것 같다. - 세르게이 브린(구글 창업자)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글래스를 내놓으며, 구글글래스가 기존의 스마트기기와 차별화된 ‘유리’라고 자랑했지만, 니콜라스 카는 이 역시 또 다른 ‘유리감옥’의 등장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370쪽이 넘는 <유리감옥>은 자동화, 희망 오류, 퇴화, 자동화의 역설 네 가지 핵심어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자동화’는 1946년 포드자동차가 자신들의 작업공정을 일컫는 새로운 용어로서 등장하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이끌어낸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은 용어로, 기존 기계화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진보한 무언가를 의미하였다. ‘로봇’이 노예 상태를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기원했다는 것에 알 수 있듯, 기계는 인간에게 시종 인간의 행위를 대신하거나 그 행위에 있어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충직한 종으로 인식되어왔다. 문제는 기계가 할 수 있는 ‘자동화’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기계에 대한 인간의 의존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보낼 때보다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로 인해 더 많은 행복가과 성취감을 느꼈다. 자유 시간에 사람들은 지루함과 불안함을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다시 일하러 가는 걸 가장 싫어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때보다 일을 할 때 더 많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여가를 즐길 때가 아니라 일을 할 때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확인했다.” 이 실험 결과는 어떤 활동이 우리를 만족시켜주고, 또 반대로 어떤 활동이 우리를 만족시켜주지 못할지를 기대하는 데 서툴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 p.37  

 

저장해둔 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가 기억하려는 노력을 덜 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 인터페이스가 인간의 능력을 더 많이 대체할수록 새로운 상황에 대한 사용자의 적응력은 그만큼 더 떨어지게 된다. - pp.128~130

 

 

심리학에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바라고 바라지 않는 것을 좋아해, 일어나길 바라는 일들이 행복감을 높여주지 못하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행복감을 높여주는 것을 ‘희망 오류’라고 정의한다. 즉 우리의 믿음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선호와 이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동화’가 가져오는 비극은 ‘희망 오류’와 관련 있다. 인간이 원하고 좋아해서 더 많은 기계, 더 탁월한 기계를 만들고 의존한 결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와 행복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흔히 떠올리는 ‘자동화’의 비극은 인간의 ‘퇴화’이다. 편리함의 대가는 자율성의 상실이고, 자율성의 상실로 인한 단순화는 퇴화를 일으킨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할수록 공간지각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은 이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손가락만큼 최고의 도구가 없다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처럼 인체만큼 가능성 넘치고 생동하는 자동체가 없는데 우리 스스로 점점 우리의 ‘자동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의 지적 재능은 자동화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현재 온갖 종류의 창조적·분석적 작업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의사, 예술가, 변호사, 음악가, 교사…컴퓨터가 이런 직업들을 100퍼센트 떠맡은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는 분명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직업만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화되고 있는 건 아니다. 취미도 자동화되고 있다. - p.33

 

자동화에 대한 편향은 자동화에 대한 안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모니터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과도한 무게를 둘 때 이런 식의 편향에 빠진다. 정보가 틀렸거나 잘못됐더라도 무조건 믿어버리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맹신하다 보면 본인의 감각 등 다른 정보 출처를 무시하거나 폄하해버린다. - p.114

 

자동화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에 대한 부담을 지우고, 여키스-돗선 곡선(자극 강도와 능력 정도가 종형을 이룬다는 곡선. 자극이 지나쳐도 무기력과 무능력에 빠진다)의 오른쪽으로 그들을 밀어 넣음으로써 사실상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추가적 부담을 가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자동화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종종 업무 부담을 높이고, 불안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자동화의 아이러니다. - p.143

 

아이들이 혼자서 절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간섭하길 좋아하는 부모님처럼 구글과 페이스북과 다른 개인용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은 적어도 과거에는 온전하고 활기찬 삶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천재성, 호기심, 독립심, 인내, 담대함 같은 성격상 특성들을 비하하고 깎아내린다. 미래에는 그런 미덕들을 우리가 컴퓨터 스크린들을 통해 들어가는 판타지 세계에 사는 존 마스턴 같은 영웅들의 위업을 통해서 간접 경험만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 p.271

 

 

‘자동화’는 인간의 노동과 여가 모두에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TV를 바보상자라 부르지 않는다. 전통적인 수제 교구보다 시청각과 터치에 기반을 둔 스마트 교구가 수업을 지배하고, 아무 생각 없이 부모들이 아기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틀어주고 글씨를 쓰는 것보다 문자로 치는 것을 먼저 알게 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새로운 인간’의 양산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은 성인들은 점점 ‘더 많은’ 과거에 겪지 않았던 어려움과 과거에 필요하지 않았던 일들에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직접 쓰고 말해서 끝냈을 일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고장 나면 손 놓고 있게 된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과거엔 직접 수동 작동하면 되던 일을 굳이 자동기능을 쓰기 위해 기계에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데이터를 기록해야 한다. 요리, 운동, 쇼핑, 연애 등 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애플리케이션을 쓰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오늘도 스마트한 하루를 보냈노라고 뿌듯해 한다. 누르고 찾는 현재보다 직접 생각하고 발품 팔던 과거가 더 시간효율적일 수 있음에도, ‘스마트’는 디지털의 전유물이어야 하니까 애써 무시하기로 한다.

 

자동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와 자동화의 선구자인 기계화는 오랜 세기에 걸쳐서 발전해오고 있으며, 그 결과로 우리가 처한 환경은 대체로 크게 개선되었다. 현명하게 사용할 경우 자동화는 우리가 힘들고 단조로운 일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자동화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자동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아주 능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충분하다’ 내지는 심지어 ‘잠시만 멈춰’라고 말해야 할 시기를 모른다. 경제적, 감정적으로 자동화의 장점에만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 p.42

 

우리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망각한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자동화된 시스템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약화시키기보다 강화시키게 해주는 방식을 무시하고 있다. 인간 요인 연구원들과 자동화에 대한 다른 전문가들이 찾아냈듯이, 컴퓨터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많은 혜택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리감옥을 깰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은 분명 존재한다. - p.228

 

 

유리천장이든 유리감옥이든 ‘유리’의 속성은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유리감옥’은 기꺼이 수감되기를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원한다면 충분히 부수고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이 ‘희망 오류’ 속성을 가진 비합리적인 존재임에도 인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니콜라스 카의 주장이다. 성장의 정점을 찍은 인간은 모든 면에서 늙어간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인체의 기능은 나이와 상관없이 쓰지 않거나 잘못 쓰면 망가지고, 다시 쓰고 잘 쓰면 다시 회복한다. 그게 인간의 가능성이고, 그래서 인간을 믿어야 한다. 니콜라스 카는 분명 유리감옥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들을 별로 말하지 못하고 ‘유리감옥’의 속성과 현황을 분석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 책의 한계라면 한계이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 콕 짚어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사람마다 달라 각자 방법을 찾아야 하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는 한 가지 힌트는 프로스트 시 <풀베기>의 한 구절인 ‘사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달콤한 꿈이다’이란 문장이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육체나 정신 중 어떤 것이건 노동은 일을 완수하는 방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은 사색의 한 형식이자, 세상을 유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바라보는 방법이다. 행동은 관점을 조정하지 않고, 우리를 사물 그 자체에 가깝게 데려다준다. 사랑이 우리를 서로 묶어주듯이 행동이 우리를 이 세상과 묶어준다는 게 프로스트의 뜻이다. 초월과 반대되는 일은 우리를 우리의 공간 속으로 집어넣는다. - pp.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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