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10가지 - 따봉, 프란치스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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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10가지]

교황청립 대학에서 감수하고 박사 신부가 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하여’

 

 

지난 8월 18일 4박 5일 간의 바쁜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평화방송은 당분간 천주교 신자가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젊은 시절 일본 선교에 평생을 투신하고 싶어 했던 교황의 꿈이 반백년 후 옆 나라에서 조금이나마 이루어진 셈이다. <명량>의 1500만 돌파처럼 교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인간적인’ ‘리더’에 대한 갈급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듯하다. 문제는 백자백답이듯 교황이 원하지 않는 반응도 적잖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공사기업은 물론 지자체까지 교황 관련 관광 상품과 물건 기획에 열을 올리고, 어느 언론은 교황 방한이 별로 특수를 가져다주지 못해 유감이라고 한다. 교황의 행동 하나만 보고 빨갱이라 하질 않나 해방신학자라는 둥 포퓰리즘에 미쳤다는 둥 하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저마다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교황을 쳐다보는 것이다. 방한을 앞두고 몇 달을 주보로 강론으로 주의를 주고 심지어 교황 집전 미사 참석자를 본당별로 미리 조사해 예비소집까지 하는 초유의 단속이 있었음에도, 우상숭배도 아니고 신자씩이나 되어서는 교황을 만지기만 하면 천당 가는지 아는 무지몽매한 이도 있었던 듯싶다.

  

아무리 경박하고 무책임한 세태라지만, 적어도 어떤 이를 힐난하려거든 제발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논리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신도처럼 묻지도 따지지 않고 좋다고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적어도 사회 혼란은 일으키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도 잘못된 걸 알 수 있는 이야기가 SNS로 입으로 인터넷으로 삽시간에 퍼져버리고 커지는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저런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책을 찾아보며 그의 면면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물량의 홍수인데 최근 두세 달 동안에 나온 교황의 어록이나 글을 번역한 책이나 제3자가 교황을 분석한 책들이 수십 종에 이른다. 온라인 서점과 제휴해서 무료 전자책을 대량 배포하거나 장기 광고를 걸 수 있는 출판사, 교회 내에서 대놓고 밀어주고 소비되는 가톨릭계 출판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참으로 피 튀기는 책전쟁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독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 행복한 대신에 괜찮은 책을 골라내기 위해 한참을 서가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차동엽 신부가 쓴 <(따봉, 프란치스코!) 교황의 10가지>는 6월 말에 일찌감치 내놓은 책이다. 스타 신부임은 물론 <무지개 원리> 열풍으로 신자, 비신자 아우르는 팬층을 꽤 확보하고 있는 저자이다. 사목신학을 전공한 차동엽 신부의 장기는 어려운 얘기도 쉽게 푸는 문장력과 뛰어난 편집력인데 <교황의 10가지> 역시 그런 장기를 한껏 살린 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말과 글을 실으며 본문의 모든 내용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의 자문을 구해 집필하였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10가지로 정의를 내렸다. 검증받은 책, 정통 가톨릭의 입장에서 교리적 배경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고픈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교리 소양이 부족한 가톨릭 신자나 가톨릭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비신자에게 유용한 책이다.

 

“가톨릭 교회는 항상 이 부분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 왔다. 나는 교회의 사람이므로 교회와 같은 생각이다. 더 밝은 얘기를 하고 싶다.” - p.230

 

인용한 것은 낙태, 동성애 등 교회가 금기해 온 민감사안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확고한 입장이다.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 최초의 남미 교황, 최초의 개발도상국 출신 교황,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최초의 프란치스코 교황…. 유난히 ‘최초’ 타이틀이 많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싶어 한다.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외계인 보듯, 기존 교회를 뒤집어엎는 매우 별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가톨릭이 내세운 ‘개혁 교황’이란 의미는 점점 대중의 염원으로 둘러싸인 신화를 뒤집어쓰고 있다. 만장일치 콘클라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영속하기 위해선 보수적 기조는 필수다. 사람들은 낮은 곳에 몸소 임하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강조하고 대중 친화적이고 여러 사안에 대해 온건한 언행을 보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며 해방신학이니, 프란치스코 정신이니, 진보 좌파니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단연 ‘예수회’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톨릭 내부의 ‘개혁’에의 갈급 때문에 선출되었고, 요한23세의 뒤를 잇는 ‘개혁’교황으로서의 의지를 보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교황 재임기간 동안 교회법이나 교리, 각종 추문과 부정 등에 대해 상당한 조치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어떤 기존의 근간을 흔드는 개혁이라기보다 가톨릭의 과오를 사과하고 자정하며 교회와 교리, 신앙을 더욱 공고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싶다. 선교(복음화)도 더욱 강조될 수 있다. <교황의 10가지>에서 차동엽 신부가 분석한 교황의 10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대한 애착과 믿음, 사랑의 강조, 항상 웃음과 미소, 자비를 중시, 희망과 긍정주의, 예수를 닮고자 노력, 무릎 꿇고 기도함은 축복, 현장의 목자, 프란치스코의 정신으로, 마지막으로 식별로 상징되는 예수회의 교회 기여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식별을 통해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인식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냐시오(예수회의 설립자) 성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와 시간과 사람의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육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통솔 자세는 요한 23세 교황의 ‘모든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식별하고, 작은 것을 시정하라’라는 문구에서 다시금 드러납니다.” - p.222

"유토피아적인 모든 투사(미래를 향한)나 재건(과거를 향한)은 좋은 정신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실재하시고 ‘오늘’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과거를 향한 그분의 현존은 당신 백성에게나 우리 각자에게나 구원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서는 ‘약속’과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과거에 하느님은 현존하셨고, 당신의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미래는 오로지 약속입니다. 천년도 아니고 막연한 미래도 아닙니다. ‘오늘’은 영원과 가장 닮았습니다. ‘오늘’은 영원의 불꽃입니다. ‘오늘’, 영원한 생명에 투신해야 합니다." - p.238

  

<교황의 10가지>를 읽으며 가장 큰 소득은 몇 안 되지만 중요한 가톨릭의 기조들을 저자의 명쾌한 설명으로 알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와 함께하고’ ‘가난한 교회’를 갈망하는 것에 대한 프란치스코 정신과 교황의 신념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함의를 알기 위해선 가톨릭의 두 비전인 ‘제도’ 교회와 ‘성령’ 교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제도 교회는 말 그대로 교회의 구조와 재산, 규정과 통치 등을 다룬 계보와 조직화의 교회를 의미하고 성령 교회는 약자를 사랑하는 사명을 같고 겸손하고 단출한 평등 공동체를 지향하고 영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둘은 비교적 서로 떨어져 서로의 빈틈을 메우거나 견제하며 발전해왔다. 나름의 신념을 갖고 영성 교회의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수도회 프란치스코회와 예수회의 정신을 제도 교회의 끝판왕인 교황청으로 끌어들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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