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나 - 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
김근수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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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나]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이유, ‘나’

 

  

2014년 8월 16일, 드디어 교황이 방한한다. 124명의 한국 순교자를 성인 전 단계의 복자로 인정하는 시복식을 하기 위해서이다. 정부는 국빈 예우를 하고, 공영방송 KBS가 교황 방한 주관사를 맡아 각종 교황 관련 방송을 한다. 출판계는 일찌감치 교황관련 책들을 앞 다투어 출간하였다. 불교의 자존심을 운운하며 달라이 라마를 모셔 오겠다는 으름장처럼 도대체 일개 종교의 수장의 방문이 왜 온 나라를 술렁이게 하냐며 못 마땅한 이들도 있다. 아무래도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대사관도 있는 어엿한 국가의 정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 지도자와 다른 감이 없지 않다. 메디치미디어에서 7월 출간된 <교황과 나> 역시 셀링 타이밍을 노리고 우후죽순 봇물처럼 출간된 수많은 교황 관련 서적 중 하나다. 그 많은 책 중 <교황과 나>를 고른 것은 다른 교황 관련 서적에 없는 ‘나’ 때문이었다. 이 ‘나’가 국적과 종교를 떠나 우리가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2013년 2월에서 3월 가톨릭 역사상 유례없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에 따른 체력 약화와 학문 연구의 재개를 이유로 들며 자진 사임 의사표시를 내민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가톨릭 입장의 첨단에 서 있던 대단히 보수적인 사제 겸 학자였다. 그런데 그 후임교황은 정반대의 입장에 선 인물로 최초의 예수회, 남미 출신의 교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모두 강경하게 부정했던 해방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또 프란치스코회가 아닌 예수회면서 프란치스코란 교황명을 최초로 쓴 인물이기도 하다. 재밌는 것은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요한바오로 2세의 후임으로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16세와 함께 최종후보로 올라갔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가톨릭이 진보적인 소수파 교황을 추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황과 나>를 읽기 전, 비가톨릭 독자가 알아야할 점이 있다. 이 책의 저자 김근수는 해방신학자이다. 그리고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교황을 평가하는 책을 썼다. 해방신학은 가톨릭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분파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단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부정당해온 분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방신학의 본고장인 남미 출신이고 스승 중 해방신학자가 있긴 하였지만 그도 해방신학자인 것은 아니다. 그런 점을 염두하고 책을 읽어야 가톨릭에 대한 오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교황과 나>에서 저자가 해방신학을 강하게 어필하거나 그에 치우친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고, 그래서 독서의 균형을 잡기 위해 굳이 다른 책을 집을 필요도 없다. 별로 두껍진 않지만 교황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는 모두 담겨 있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세 가지 열쇠로 아르헨티나. 예수회, 프란치스코를 꼽는다. 아르헨티나는 대통령이 가톨릭 관련 중요행사에 참여할 만큼 가톨릭 강성 국가이다(전체 국민의 92%가 가톨릭 신자). 흔히 떠올리는 남미 가톨릭의 불편한 진실이 침략자에 의한 폭력과 눈물로 얼룩진 포교의 결과물이라는 것인데, 아르헨티나는 약간 궤를 달리 한다. 아르헨티나는 전체 국민의 97%가 백인인, 남미에서 가장 백인 비율이 높은 국가인데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정착한 곳이 아르헨티나로 침략자인 스페인계와 이탈리아계가 각 35%씩 거의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이탈리아계이기에, 최초의 비유럽 출신 교황이긴 하나 유럽과 연결고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가톨릭이 선교사의 포교가 아닌 학문으로 공부하다가 신앙이 퍼지고 후에 선교사가 들어온 독특한 국가라 예수회에 대해 별 인상이 없다. 예수회 학교 서강대의 종교색은 명함도 못 내미는 강력한 미션스쿨이 옆에 있다 보니 잘 모른다. 예수회가 가톨릭 내 소수야당이긴 하지만 진보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한 원리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가톨릭 내에서 더 이상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야당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회가 강조하는 것은 선교와 교육이다. 이교도의 땅에 평생 투신할 선교사를 보내 학교를 세우고 지역개발하며 포교한다. 타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정통교리를 강요하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제사 거부 등으로 한국의 순교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도 예수회 등장부터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신념 강한 예수회의 일원으로서 평생 일본 선교에 투신하려 했었다. 병 때문에 출국이 좌절되면서 자국에 남게 되면서 학자로 사제로 이력을 발전해나가면서 결국 추기경까지 올랐고 현재의 교황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정체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개혁’이나 ‘다름’의 코드를 읽었다면 대부분 이 측면 때문일 것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톨릭사에서 남다른 인물이다. 동시대의 중세 가톨릭과 전혀 다른 빈자를 생각하는 성인이었고, 모든 생물 뿐 아니라 무생물까지 주님이 만든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인간 중심 철학에서 탈피했던 매우 이타적인 인물이었다. 예수회 소속이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흠모해 그의 이름을 딴 교황으로서, 그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이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거나, 해방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천명하는 등 다양한 면에서 포용성을 보여준다. 동성애자나 창녀의 신앙에 대한 접근이나 비가톨릭교도를 대부모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입장 등은 놀랠 노자이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자가 꼽은 아르헨티나, 예수회, 프란치스코의 정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개혁성은 오히려 그 자신만의 독특한 성향에서 설명할 여지가 많을 수 있다.

 

가톨릭은 전세계에서 가장 중앙집권과 체계화가 잘되어 있는 종교이지만, 교황에 따라 가톨릭의 강조점이나 과제가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 하 1년 동안 가장 많이 체감하는 것은 선교의 강조인 것 같다. 방한 후에 또 새로운 기조들이 논의될 것이다. <교황과 나>의 저자 김근수는 그것들이 ‘개혁’과 관련된 것이 될 것 같다고 무척 기대한다. 부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에서 저자의 의견에 깊이 동의했던 것 중의 하나가 한국 교회는 변해야 할 과제들이 있고, 가톨릭은 자기반성하고 내부개혁할 수 있는 종교라는 점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가톨릭은 교황의 기조가 좌든 우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과거에 저지른 가톨릭의 과오들을 사과하고 반성하고 있다. 그에 맞게 교리가 수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한국가톨릭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교황청보다 더욱 보수적이고 경직화되어 있으며,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해방신학자답게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는 지금보다 더 가난해져야 한다. 종교는 가난한 이들 위에서 누렸던 부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에 강하게 동조한다. 한국 교회의 부가 지금의 10분의 1로 줄였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안 그래도 언제부턴가 한국 성당이 대형 교회의 화려함이나 카페 만들기 같은 걸 부러운지 자꾸 따라하는 모습이 꽤나 많이 보인다. 신축 성당 모금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유를 물으면 주님을 누추한 데 모실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예수님이 화려한 신전, 장사하는 신전에서 깽판친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교황과 나>의 저자는 친가와 외가 모두 200년 이상 신앙을 지키고 순교자를 배출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사제가 되기 위해 가톨릭신학대학에서 수학했던 사람이다. 하수상했던 1980년대의 한국에 염증을 느끼고 사제가 아닌 신학자의 길을 가기로 유학길에 오르고 독일에서 정통신학을 공부하다 해방신학으로 전공을 바꿔 아르헨티나로 갔다. 아르헨티나의 신학도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기 전 베르골리오 신부던 때부터 그를 지켜보고 흠모하면서 그의 학문과 신앙을 고민해왔다. 그래서 책 제목이 <교황과 나>이다. 기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서술하는 책이지만, 그를 통해 그 동안의 교황들을 가톨릭 전체와 한국 가톨릭의 나아갈 바를 그리고 자신이 나아갈 바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책이다. 그를 지켜보는 독자 역시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슨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교황과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우리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교황 관련 서적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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