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
윌리엄 사우더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레이첼 카슨] 지구를 구한 착한 몽상가

 

 

 

찰리브라운과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1963년 연재분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루시가 요즘 레이첼 카슨 타령만 한다는 슈로더의 볼멘소리에 루시는 우리 소녀들에게 여자 영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중 한사람인 레이첼 카슨과 그녀의 불멸의 역작 <침묵의 봄>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해양생물학자인 동시에 내는 책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리고 중요한 당대 환경운동가로서 그녀는 많은 소녀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성별을 판단할 수 없도록 풀네임보다 R.L.카슨이란 필명을 쓰길 권고 받았다는 것, 여자 대학을 졸업하였다는 것, 해양생물학자보다 작가로서 더 성공한 점을 봐도 당대의 여권이 어땠는지, 얼마나 사회가 영웅적 여성 캐릭터를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레이첼 카슨의 저작보다 평전이나 유소년용 위인전이 더 많이 출간되어 있다. <침묵의 봄>을 번역한 에코리브르에서 올해, 레이첼 카슨 사망50주기를 맞아 윌리엄 사우더가 쓴 평전 <레이첼 카슨>을 번역 출간하였다. 기존에 나온 어떤 레이첼 카슨 평전보다 두꺼우며, 그만큼 저자의 면밀하고 치열한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평전이다. 어찌 보면 집요할 만큼의 추적에 감성적이고 예찬하는 문체가 더해져, 읽고 있노라면 자서전보다 더 레이첼 카슨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단짝과의 서신 교환을 거의 레즈비언 연애물처럼 재구성한다거나 저작이나 행실의 공과를 낱낱이 서술평가하는 것을 보며 평전이 나올 만큼 존경받는 위인으로 산다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레이첼 카슨>은 단 한권의 책으로 그녀에 대한 웬만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침묵의 봄>을 이미 읽었고 레이첼 카슨에게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즐거운 책이지만, <침묵의 봄>을 읽어 보기는커녕 그녀의 이름도 모르거나 이름 정도만 들은 독자들이 레이첼 카슨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며 입문하는 책으로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그녀의 저작 중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현재는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무엇일지 판단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의 과학 서적 중 현재에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침묵의 봄> 뿐이다. 이는 저자의 지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당대의 과학적 상식과 믿음이 그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계에 등장한 카슨식 글은 당시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비판적 시선이 있었으나, 이는 오늘날 대중과학교양서의 가장 전형적인 전략이 되었다. 문학적 과학, 그 때문에 과학적 오류가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일반대중의 열광적인 관심을 이끄는 데 크게 성공하였다.

 

레이첼 카슨은 과학과 문학의 본질이 같다고 생각하였고, 과학이든 문학이든 삶과 진리와 유리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녀의 몽상적이고 문학소녀스러운 기질도 한몫 하였다. 예를 들어 헨리 윌리엄슨에게 가장 영향 받은 사실이나, 당대 과학자들만큼 소설가들과도 교류하거나 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을 봐도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철학과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자와 과학서의 책무는 논리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첼 카슨은 때론 비논리나 사실오류가 있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를 글에 담았고 그녀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세간에선 그녀의 저작들을 논픽션계의 <엉클 톰스 캐빈>으로 평가하였다. <엉클 톰스 캐빈>이 흥행하고 사회를 움직인 것도 날카롭고 이지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레이첼 카슨의 책들은 그녀의 생전에만 해도 18개국에 번역되었다. 대중들은 과학자의 경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TV드라마를 보듯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궁금해 하거나 이런 얘기를 써달라 말라 같은 훈수나 열렬한 팬레터를 신문사와 레이첼 카슨에 보냈다. 특히 <침묵의 봄>은 그 책에서 환경운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책이 되었으며, 환경에 대한 그녀의 문제의식은 대통령의 정책 판단을 바꿀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그녀가 생전 가장 주목했던 살충제와 방사능이지만 결국 반환경물질이란 공통점에서 환경운동을 촉발시킨다. 그녀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50, 60년 전의 미국은 대표적인 광고 카피가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이었을 만큼 화학물질에 기대를 걸던 시대였고, 덕분에 그녀는 그녀의 유명세만큼 체제전복주의자, 반기업주의자, 공산주의자, 노처녀 등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만큼 환경 운동이 본격화되고, 그녀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가 늘어 오늘날에 이른다.

 

유일무이한 여성 천재물리학자 마리 퀴리가 무지 때문에 방사능 피폭 부작용으로 사망했듯, 레이첼 카슨 역시 당대 의학의 한계 때문에 암 진단과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 단명하고 말았다. <침묵의 봄> 출간 후 불과 2년 만에 말이다. 무의미한 상상이지만 그녀가 장수하면서 직접 환경운동들을 이끌고, 그녀의 과학서들에 과학적 정교성을 더해갔으면 어땠을까. 아틀라스가 벌로 하늘을 이고 있었다면, 레이첼 카슨은 스스로 지구를 이는 아틀라스를 자처한 작은 거인이었다. 레이첼 카슨의 반향처럼 환경운동 자체가 모순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가 생태의 상생에, 지구의 운명을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란 점에서 착한 몽상가는 계속 필요하다. <레이첼 카슨>이 좇고 재구성한 레이첼 카슨의 삶의 궤적이 일깨우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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