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그리움 많은 아들과 소박한 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박동규.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아비와 맏이의 이야기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들고 나와 아버지와의 인연을 글로 쓰고자 한 것은 참 오래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그해 내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돋아났고 나는 이 머리카락을 만지며 아버지의 우산 안에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가를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셨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의 골짜기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 아버지의 글 곁에 내 글을 가져다놓은 부끄러움을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살다 가셨다’는 목매인 소리를 하면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았던 행복을 이제야 고백함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 박동규(머리말 中)

 

 

 

나의 아버지는 젊을 적에 몹시 아들을 갖고 싶어 하였다. 목욕탕에서 같이 등을 밀 수 있는 인생의 경쟁자이자 벗이자 제자인 당신을 꼭 닮은 동성, 비단 우리 아버지 뿐 아니라 피가 뜨거운 모든 사내의 본능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매우 이름은 매우 여성스럽게 짓고선,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선머슴처럼 나를 키우셨다. 나에게 아버지는 평생의 태산이다. 어릴 적엔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내 방황과 성장의 대부분도 아버지를 의식하는 데서 일어났다. 아버지를 단 한번이라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에게 “제발 책 좀 읽어라 그렇게 무식해서 어디다 쓰니” 따위의 핀잔을 듣는데 언젠가부터 그 소리가 싫지 않아졌다. 영원히 나의 영웅 나의 거인 아버지가 나보다 강하고 똑똑하셨으면 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얼떨결에 아버지가 된다.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으로 품으며 차근히 어미가 되어 가는 여자와 달리, 어느 날 갑자기 아내의 임신 사실을 듣고 다시 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닮은 핏덩이를 품에 안아보게 된다. 처음 똥기저귀를 갈고 밤에도 분유를 먹으며 1일 몇식을 하는지 모르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존하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인간이 어느 날 삶에 등장한다. 그래서 부모로서의 성장은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고 성질도 약간은 다른 듯 하다. 언젠가 나의 아버지는 내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부모에게 맏이는 ‘함께 처음’ 해본 일이 많아서 자식보다 동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모든 맏이들에게, 모든 부모와 맏이 간에는 공통적인 특유의 정서가 있다. 설령 맏이 구실을 못하는 맏이라 하더라도, 맏이는 맏이구나 싶은 다른 형제들과 다른 구석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서른 먹은 딸에게 아직도 종종 아기라고 부르곤 하신다. 남동생은 한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맏이 구실도 제앞가림도 못하는 내 무능력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응급실에 실려 갔던 작년 가을,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떡해요. 우리 아기가 아파요. 많이 아파요.” 손을 떨며 병원에 전화를 건 부모님의 이구동성, 늙고 큰 내가 언제든 당신을 핏덩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서툴고 어린 부모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의 ‘함께 처음’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를 엮으며 ‘아버지와 아들’을 강조했지만, 아버지 박목월 시인과 영원히 아버지를 그리고 좇는 장남 박동규 교수를 보며, 이 책이 모든 아비와 (성별을 초월한) 맏이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같이 있어도 눈에 가득 담아도 늘 그립고 애틋한 내 아버지를 새삼스럽게 품고 책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였다.

 

내 필명은 내 글의 지향을 상징하는 두 명의 시인을 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게 시는 좀처럼 가까워질 줄 모르는 콤플렉스다. 박목월 시인 역시 학창시절 문학시간에 배운 몇 시들을 제외하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그저 먼 당신이었다. 친일하지 않은 대표적 시인이라 존경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래서 우습게도 시인으로서의 박목월 시가 아닌 아버지로서 박목월 일기 발췌본으로 그에게 더 먼저 다가간 셈이 되었다. 분명 이 책이 7년 전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 같은 내용으로 나온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란 제목으로 책을 기획했다는 책 머리말을 읽고 처음에 잠깐 갸우뚱하였다. 알고 보니 제목만 수정해 머리말을 쓴 것이었다. 본문은 같지만 아버지 박목월의 글보다 아들 박동규의 글이 먼저 나오는 것도 재간본의 다른 점이다. 두 분 다 워낙 한국문학계의 거목이다 보니, 부끄럽게도 처음엔 나도 모르게 부자의 문장미를 따지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반성할 겨를도 없이 내용 자체에 빠져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비와 맏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울림에, 문장 수준의 높고 낮음은 무의미하였다.

 

 

박목월 시인의 일기를 읽으며 내 아버지의 일기를 떠올렸다. 꼼꼼하게 기록한 하루의 소사와 그 정결한 글씨하며, 책벌레 문학청년다운 문장력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존경했는데, 박목월 시인의 일기를 읽으며 그 생각과 함께 시인은 일기조차 군데군데 시 같은 면모가 있구나 싶었다. 많지 않은 발췌 분량임에도, 소재도 내용도 문장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참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기들이었다. 박동규 교수의 글과 함께 읽으면 책 속에 일기 외 실린 박목월 시인들의 시들과 잡문들의 배경을 알 수 있어서 더 감흥과 이해가 배가되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모든 자식들을 ‘어린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훗날 박동규 교수 역시 자신의 자녀를 그리 부르게 되는데, 별것 아닌 호칭인데도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애정과 안쓰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함축적으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 가슴에 박혔다.

 

 

‘아버지와 아들’을 주제로 한 공동 저작을,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 사후에야 아버지 글 옆에 자신의 글을 나란히 슬쩍 얹는 모양새로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한없이 수줍고 인간적인 아들의 고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책과 정서는 맏이만이 낼 수 있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눈물범벅인 내 손을 꼭 잡고 우리 아버지가 내게 해주셨던 말이 있다. 두 가지 일을 모두 겪을 때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데 하나는 부모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친을 모두 잃는 것이라고, 당신은 25년에 걸친 성장통 끝에 마흔 다섯인 오늘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였던 말, 스무 살 때 아버지를 여윌 때 단 한 번도 돈 벌이를 해보지 못하고 아프기만 했던 병약하고 무능력한 아버지였지만 당신에겐 온 세계가 무너진 느낌이었다고, 그런데 어머니를 놓아드린 오늘은 슬프지만 제법 견딜 수 있는 것은 이제 당신이 아버지고 아내와 우리 남매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어린 나는 부모가 되는 것은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한 인간이 사회를 위해 할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조금 커서는 어떤 인간을 20년 이상 지켜보며, 그의 삶을 도와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누구보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지금은 감히 품어볼 엄두가 안 나는 사치가 되었다. 철딱서니 없는 ‘어른이’에 멈춰버린 내게, 그냥 여전히 맏이(자식)이기만 할 뿐인 내게 장남에서 장남이자 아버지가 된 박동규 교수와 그 부자의 글이 담긴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은 아버지에서 아이로 다시 그 아이로 이어지며 혈관에 새겨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진짜 어른만이 남길 수 있는 한 부자의 글 모음을 보며 마지막 책장을 덮던 날, 아버지를 맏이를 어른을 한없이 헤며 꼬박 밤을 지새웠다. 생판 남인 부자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우리 부자를 겹쳐보며 속에 담고 곱씹다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생각난 김에 아버지 좋아하는 팥찹쌀도너츠나 몇 개 사서 쭐래쭐래거리며 찾아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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