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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 1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ㅣ 이미지 인문학 1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6월
평점 :
[이미지 인문학1]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키워드 ‘파타피직스’
어느새 ‘디지털’이라는 낱말은 낡은 것이 되었다. ‘디지털’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어진 것은 디지털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로 아날로그 매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p.007
‘인문학 위기’란 결국 텍스트에 기초한 고전적 인문학의 위기다. 정보의 저장 및 전달의 매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 p.008
미디어는 세계와 인간을 매개하면서, 동시에 그 둘을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은 미디어와 더불어 공진화한다. 이렇게 변화한 세계는 과거와는 다른 ‘존재론’을 요구하며, 그렇게 변화한 인간은 과거와는 다른 ‘인간학’을 요구한다. - p.009
저자는 현재를 포스트디지털 시대로 규정하고, 포스트디지털시대의 디지털인문학은 기존의 디지털인문학과 다른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든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키워드는 ‘이미지’다.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라는 그의 촌철살인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니콜라스 카 등 디지털 트렌드 전문가들의 분석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논문에서 시작하였다. 기본적으로는 2008년부터 ‘디지털 미학과 미디어 미학’을 주제로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진행했던 각종 연구와 토론, 원고들을 바탕으로 하나 이번에 단행본화하면서 대폭적으로 수정, 가필하였다. 미학자인 동시에 이 시대 대표적인 논객으로서, 특히 PC통신에서 트위터까지 온라인매체를 십분 이용해왔던 그이기에 더욱 이러한 주제를 잘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지 인문학1>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미술작품 감상을 통한 포스트디지털예술과 이미지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동향과 풍경들이다.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디지털 혹은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을 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이미지 인문학’이다. 제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 이 책은 한권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키워드가 다르다는 점-1권의 키워드는 ‘파타피직스’, 2권의 키워드는 ‘언캐니’-을 제외하면 각 권의 구성은 유사하다. 다만 1장과 3장 때문에 <이미지 인문학1>이 좀 더 개관적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 ‘파타파직스’는 무엇일까. 프랑스 작가 알프레드 자리가 주창한 개념으로 일종의 사이비 과학을 의미한다.
‘상상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시대의 주요 키워드는 메타포, 하이브리드, 하이퍼텍스트 등이었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영역과 여지가 거의 없어진 시대, 끊임없는 변주와 새로운 매체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창조자들의 숙명이다. 이러한 논의가 있은 지는 불과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의 분석에 따르면 그 시대도 벌써 종언했으며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완전히 다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지 인문학1>을 읽으며, 과거 구디지털 시대는 모더니티와의 결별이 아닌 모더니티와 현재의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교두보로서의,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이행기’는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였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메타피직스(형이상학)와 메타포(은유)가 구디지털 시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1장 中] 첫째 전설에서는 인간이 가상으로 걸어 들어가고, 둘째 전설에서는 가상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셋째 전설에서는 가상이 살아 움직인다. 이 세 가지는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되었다. 이 첫째 마술을 우리는 ‘가상현실’이락 부른다. 이른바 ‘몰입기술’을 통해 현실의 주체는 가상의 세계에 입장한다. 둘째 마술은 ‘증강현실’이라 불린다. 여기서는 영상인식, 위치추적 등을 통해 가상의 좌표를 현실적 좌표와 매치함으로써 가상이 현실적 공간에 중첩된다. 셋째 마술은 ‘인공생명’이라 부른다. 오늘날 이미지는 ‘진화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증식하고 진화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살아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다. - p.063
[2장 中]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사진은 지표성을 잃었다. 디지털 사진은 복제가 아니라 생성이나 합성의 이미지다. (...)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사본’이 아니다. 그것을 여전히 ‘재현’이라 부른다면 그것이 재현하는 현실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합성 이미지는 우리 현실을 열등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 우리의 현실은 이미 현재와 잠재가 어지럽게 뒤섞인 혼합현실이다. ‘가상현실’은 어느새 ‘현실가상’이 되고 있다. - p.109
[3장 中] 과학과 기술을 전유한 상상력이라는 면에서 파타피직스는 과학과 기술을 적대시하던 과거의 낭만주의적 상상력과는 구별된다. 외려 과학과 기술을 상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빌렘 플루서가 말하는 ‘기술적 상상력’애 근접한다. 다만 이 기술적 상상력을 진지한 목적이 아니라 지적 농담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파타피직스의 본질을 이루는 과학기술과 시적 상상력의 융합은, - p.125
[4장 中] “디지털 이미지는 전통적 사진의 시각적 사실주의보다 열등하지 않다. 완벽하게 사실적이다. 오히려 너무 사실적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과도한 선명함은 (...) “인간의 시선보다 더 완벽한 어떤 다른 시각”, 즉 “컴퓨터의 시각”에서 나온다. 컴퓨터의 눈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그저 재현의 옛 방식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 리얼리즘을 지향하든 포토리얼리즘을 지향하든 디지털 이미지가 보여주는 현실은 언제나 ‘낯설게’ 나타난다.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가 전통적 사진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이미 고유의 미학을 추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 p.253
[5장 中]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디지털은 사진의 기록적 성격을 파괴한다. 이로써 조롱당하는 것은 역사, 더 정확히 말하면 역사주의 의식이다. (...) 역사는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사실은 허구로, 증명은 날조로, 진리는 오락으로 대체된다. (...) 관거에 역사는 해방된 미래를 위해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하는 행위였으나, 디지털 부족에게 과거는 사극의 재료요, 미래는 SF의 배경일 뿐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의 재료, 허구의 배경이자 농담의 소재일 뿐이다. - pp.312~313
플루서의 지적처럼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은 ‘기술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파타피직스가 도래한 디지털 시대의 심화기, 탈지디털 시대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파타포의 세계이다. 실제로 지어지지 않을 가설적 건축 프로젝트 ‘아키그램’이나, 존재하지 않는 대학의 교수를 자처하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의 음악작품을 발굴해 발표하는 작곡가 피터 시켈레, 만화의 주인공을 예언자로 모시는 패러디 교회 ‘서브지니어스 교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것은 진중권이 포스트디지털 시대, 파타피직스의 예로 드는 것 중 상당수가 20세기(심지어 초중반까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이전의 포스트디지털적 특성, 시대 구분의 무의미성, 진중권의 안내에 따라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면면을 확인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역시나 동시대를 스스로 정의할 수는 없는 건지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의 무책임할 만큼 광범위하고 근본 없음처럼 탈디지털 시대의 특성 역시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중첩 속에 생동하고 있는 (역사의)‘흐름’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미지 인문학1> 책 전체도 하나의 파타피직스 놀이처럼 여겨질 정도다. 흥미를 돋우는 예술 작품 해석,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명, 그래서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감안했을 때 생각보다 대단히 편하게 읽게 되는데 얼마만큼 많이, 정확히 이해하느냐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일 듯싶다. 모든 인문학이 그러하듯.
어쨌든 <이미지 인문학1>을 통해 누구나 얻어갈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 있는데, 가장 꼽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해외 예술가와 작품 예시도 많지만) 한상필, 이명호, 정홍섭, 안상석 등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과 현재 트렌디한 예술작품의 감상법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2권이 궁금해지게 하는 ‘언캐니’ 개념과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대중적 파타피직스 놀이 개념을 들 수 있다. 두 개념 모두 관련 단행본이 예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전자는 <이미지 인문학2>, 후자는 <게이미피케이션-게임의 미학>)이 있다. 한편 책을 읽으면서 편집에도 눈이 갔는데 주제상 총천연색에 수많은 이미지 자료가 삽입될 것은 예상했지만 본문 안에 QR코드를 넣어 독자의 하이퍼텍스팅을 유도하는 것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