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혁명사 -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 쿠바 바로 알기
아비바 촘스키 지음, 정진상 옮김 / 삼천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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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사] 가능성인가 실패인가, Dynamic Cuba!

 

 

 

작년 아버지의 중남미 여행 준비를 돕고 후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생각보다 지리적·외교적으로 먼 곳이고, 생각보다 위험하고 여행에 제약이 많으며, 의외로 한국이 상당히 좋은 나라라는 점이었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가 연수차 중남미를 간다고 하면 무조건 ‘외유성’으로 모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 후 아버지 소감 중 지구 반대편이라 그런가, TV에서 우리나라 등 아시아 뉴스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새삼 그들과 우리가 먼 나라였음을 느꼈다는 얘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해외토픽이나 스포츠, 중요하거나 심각한 사건사고가 아니면 뉴스에서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오히려 식자재로 가장 많이 접하는 듯하다. ‘제3세계’란 말이 익숙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대중 여론이 학문 분석과 차이가 나는 사안 가운데 쿠바혁명만큼 격차가 두드러진 경우는 드물다. 쿠바혁명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미국 학생들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다. 내가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꼽아 보라고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답변이 피델 카스트로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카스트로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는 거의 똑같다. 카스트로를 묘사하기 위해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동원하는 수식어는 ‘위험한’, ‘사악한’, ‘나쁜’, ‘독재자’ 따위가 대부분이다. 여론조사는 미국 국민들도 대체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견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 조사 대상자의 98퍼센트는 피델 카스트로를 알고 있으며, 82퍼센트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쿠바혁명에 관한 진지한 연구는 대부분 피델 카스트로라는 인물보다는 쿠바혁명의 과정과 정치, 사람들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 p.12

 

<쿠바혁명사>의 첫 장이며 이 책의 기저를 이루는 문제의식이다. 미국의 우방국이자 이념 차이로 분단한 우리의 쿠바 인식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몰이해와 무관심은 더욱 심하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의료보험이 잘되어 있는 나라, 카스트로가 장기 독재한 공산국가 정도 이미지 아니면 카리브 해, 모히또, 시가 등 문화적·소비적 측면에서 쿠바를 알고 있다. 체 게바라? 2000년 국내에 체 게바라 평전이 출간되었는데 한 5년 정도 웬만한 당시 대학생들은 끼고 다닐 만큼 유행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체 게바라 정신에 대한 깊은 관심과 동조라기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조롱과 상업적 측면에서 패션 아이콘화된, 피상적인 자유 등 몇 가지 껍데기만 취하며 그를 소비할 뿐인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에겐 그래도 체 게바라인 걸까. 저자의 지적처럼 쿠바혁명은 정치, 역사 등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면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생각할 텐데, 그래서 쿠바를 이루는 수많은 군상 중 하나로 체 게바라가 삽입되는 원서와 달리, 삼천리의 한국어 번역본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 얼굴에 쿠바의 모습을 담은 표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이런 해석도 틀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외국인이고 단명한 혁명 실패자였지만, 쿠바사회에서 체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한 신화적 존재이다. 저자 아비바 촘스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노엄 촘스키의 딸로 미국 세일럼주립대학의 역사학부 교수이다. 7개 국어를 구사할 만큼 명민한 그녀는 아버지처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넓은 시선에 서슴없이 미국을 비판한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마주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어린 학생들은 “우리는 체처럼 될 거야!”하고 외치면서 학교 수업을 시작한다. 체 게바라는 몇 가지 이유로 누구보다도 신화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다른 혁명 지도자들과 달리 체는 본디 쿠바인이 아니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의사로서 자기 조국을 떠나 혁명적 대의에 삶을 바쳤다. 그는 또한 게릴라 전쟁의 사회주의의 목표 및 성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자신의 사상 흔적을 남긴,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적 철학자였다. 그는 모든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1960년대 초 쿠바에서 진행된 가장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경제개혁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는 혁명운동들과의 연대를 상징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볼리비아 산악 지대에서 자신의 혁명이론을 전파하려고 애쓰다가 1967년 끝내 순교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하여 체의 이미지는 수십 년 동안의 혁명 권력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타협을 연상시키기보다는 혁명 초기 시절의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면서 영원히 남게 되었다. - pp.60~62

   

그런 그녀에게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쿠바와 그 혁명사를 다루는 일은 당연한 과업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쿠바혁명을 정치사 중심이 아닌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종교, 문화 등 사회문화사의 관점에서 다양한 쿠바 사회의 면면을 파헤쳤다. 2011년 출간된 책이지만 쿠바혁명 55주년인 올해, 그녀의 쿠바혁명 분석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자유를 향한 뜨거운 여정’과 ‘새로운 인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쿠바의 혁명과 사회주의는, 소련식 사회주의 실험의 완벽한 실패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며 오랜 고민에 빠져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마지막 끈이다. 또 비슷한 운명공동체인 라틴아메리카에서 약간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관심대상이다.

 

<쿠바혁명사>는 현재 쿠바의 인구통계학적 배경과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처럼 작은 섬나라 쿠바 역시 원주민에 정복 백인과 아프리카 노예들이 더해져 독특한 문화정체성과 다양한 인종구성을 갖게 된다(한 가지 의문인 것은 번역서에 제시된 수치와 문맥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타인지 독자의 문제인지 궁금하다).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르페데스, 안토니오 마세오, 호세 마르티가 이끄는 20년간의 독립전쟁으로 수백 년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미군정이 실시되고 그 이후에도 반세기 이상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영향은 계속된다. 그런 상황에서 바티스타의 독재정부가 집권하고 그를 축출하기 위해 벌어진 1959년 1월 혁명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쿠바혁명이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로 상징되는 1959년 혁명 사상은 68혁명을 비롯한 20세기 중후반 전 세계 곳곳의 대안적혁명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여기까지의 얘기가 <쿠바혁명사> 2장까지의 내용이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쿠바혁명사>는 사회주의 실험(경제;3장), 외교(3,4장), 문화(6장), 사회(7장), 1990년대 이후의 쿠바의 행보와 과제(8,9장)로 나눠 다양한 관점에서 1959년 이후의 쿠바를 그린다. 혁명 전 쿠바는 종속적 발전국의 전형이었다. 단기간에 병폐를 잡는 데 사회주의 급진 개혁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쿠바의 개혁은 복지에 가장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 외 사회주의적 실험들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쿠바의 사회주의는 소련과 따로 또 같이 노선을 간다. 쿠바는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 모두의 개입 하에도 휘둘리지 않았던 강하고 독특한 국가이다. 책의 중반부를 차지하는 국제·외교 부문 역시 흥미롭다. 반공정책을 밀어붙이는 미국은 쿠바민 이민장려정책을 펼치는데, 과거부터 미국 흡수를 원했던 상당수 쿠바 백인들이 환영한 것은 물론이고 피 델 카스트로 역시 이를 적극 장려하면서 이민자와 본국 간의 커넥션 양상은 쿠바 정치 사회 분석에 중요한 주제가 된다.

 

 

쿠바혁명은 소비에트의 독단과 단절할 수 있는 혁명의 사례를 세계에 제시하여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혁명적 변화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쿠바는 아프리카에 군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그리고 제3세계 곳곳에 의료, 기술, 교육 원조를 통해 혁명 50년에 걸쳐 진보적, 좌파적, 혁명적 운동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p.160

 

쿠바가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국가와 차별화되는 특징으로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문화의 수단화, 이념화에 빠져 말살시킨다는 것이다. 쿠바 역시 혁명 초기 사회적 리얼리즘을 종용받았다. 그러나 곧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등 자유롭고 활발하게 문화가 꽃핀다. 이는 쿠바혁명의 문자해득운동 강조와 ‘새로운 인간’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문학, 영화, 춤, 음악, 스포츠, 음식 등 어느 것 하나 쿠바적이고 찬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쿠바혁명에서 취약한 것도 있었다. 인종차별과 페미니즘, 동성애에 관한 부분이다. 페미니즘과 동성애는 진보적 운동이나 약간 성격이 달라 그런 것도 있지만 쿠바사회의 은근한 보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대 이후 쿠바혁명의 양상은 달라진다. 주원인은 소련의 붕괴와, 피델 카스테로의 하야다. 소련의 기조에 무조건 따르지 않았지만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소련과의 무역 및 원조관계가 쿠바 경제 30년을 지탱하였다. ‘특별시기’로 불리는 1993년에서 2006년까지는 쿠바의 시련기이자, 급변기이다. ‘특별시기’는 다시 2003년을 기점으로 시장 개방과 각종 정책 실험 및 개혁을 추구하는 ‘마무리 전략’ 시기와 그를 제한하거나 되돌리는 등 재정비하는 ‘재집중화’ 시기로 나누어진다. 2006년 건강 악화로 47년의 집권을 뒤로 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지만 동생 라울에게 권력이 이양되면서 여전히 독재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정치적 평가를 떠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벌어진 혁명의 결과가 더 긴 독재란 건 참 아이러니다.)

 

 

쿠바의 55년 혁명사는 결코 이상적이고 성공적이지 않다.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독특한 사회주의를 구축하고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 이론 실현의 불가능성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쿠바는 절대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열매가 되지 못한다. 진행 중인 실험체로서 가능성과 아이디어의 보고로서 기능할 뿐이다. 아비바 촘스키의 <쿠바혁명사>는 쿠바혁명과 현대 쿠바 반세기를 이해하는 개괄서로 안성맞춤이다. 번역을 맡은 경상대 정진상 교수는 이 책 번역과 함께 <쿠바식 민주주의>도 번역하였고 역시 삼천리에서 곧 출간될 것이다. 그가 2010년 번역한(그 역시 삼천리) <쿠바식으로 산다>와 함께 쿠바혁명55주년 기념 ‘삼천리 쿠바3부작’에 도전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끝으로 <쿠바혁명사>의 읽을 의의에 대해 책을 마무리하며 쓴 저자의 말을 옮기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나는 쿠바혁명의 경험을 요약하거나 그것에 관한 전반적인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혁명은 거칠고 대담하고 실험적이고 다양했다. 그것은 때때로 불리한 환경 아래에서 전진해 왔다. 그것은 전에 없었던 사회·경제적 평등을 창조했으며, 가난한 제3세계 나라가 자기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하고, 보건의료를 제공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그것은 놀라운 예술적·지적 창조성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한편으로 숨 막히는 관료제를 만들어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경제적 저발전을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보여 주었다. 쿠바혁명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낙관과 비관적 전망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대체로는 장래가 궁금하게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자 한다면, 쿠바혁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pp. 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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