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필로미나의 기적;잃어버린 아이]

한 모자의 평생으로 드러낸 가톨릭과 아일랜드의 추악한 과거

 

 

 

가톨릭에서 성가정은 평신도의 의무이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고 피임과 낙태는 죄악이다. 원리주의 입장에서는 사후피임약을 살인도구로 몰고, 성폭행에 대해서도 예외를 두지 않아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대에 맞춰, 교리도 융통성 있게 바꾸지만 한계가 있다. 때문에 교도들은 성생활에 대해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모성은 존경받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한 미혼모는 죄인이다. 섹스는 주님이 빚은 신체와 영혼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쾌락행위나, 그것을 기쁘게 즐겨도 될지 번식을 위해서만 거룩하게 임해야 하는지 죄의식과 물음이 늘 짓누른다. 결론은 육욕을 ‘적절히’ 통제하고 기본 교리에 최대한 충실하라는 것인데 그 ‘적절히’의 정도가 항상 고민이다. 성소공동체의 사목이 절대적으로 미혼자인 신부와 수녀에 달려 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필로미나의 기적;잃어버린 아이>는 이러한 가톨릭의 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교리에 대해 재조명하고, 그와 관련해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가톨릭의 과오를 짚었다.

 

 

열여덟, 자연의 섭리는 그녀와 그의 얼굴과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한창 예쁘고 발랄한 청춘남녀가 첫눈에 반해 헤어지기 싫어 함께 밤을 보냈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감정에 충실해 즐겼고 그 한밤으로 아기가 생겼다. 배가 불러오는 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아이 아빠와는 헤어진 지 오래고 찾을 수도 없었고, 확실한 죄의 증거를 품은 아이 엄마는 가족과 동네에서 내쳐져 자선 수녀원에 보내졌다. 타락한 여자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 수녀원에서 조용히 아이를 낳고, 참회와 노역으로 난잡한 성품과 음란한 육욕의 죗값을 치르며, 지인들의 기억에서 잊힐 만큼의 시간이 지날 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100파운드를 내면, 노역 없이 바로 수녀원을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50년대 이러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아일랜드 미혼모는 1만 명에 이르며, 평균 나이는 23세였다. 그녀들은 가톨릭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와 3년의 인생 포기하는 각서를 쓰고, 각종 노동에 시달렸다. 그녀들이 올린 수익과 정부 보조금, 그리고 아기들을 판 돈은 고스란히 가톨릭의 재산이 되었다.

 

  

  원장수녀는 자신이 잔인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녀에게 자선의 임무를 맡겼고, 그녀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선악의 경계는 너무나도 명확했고,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육체적인 사랑이었다. -p.24

 

  죽은 산모와 아기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근처 들판에 있는 묘비 없는 무덤에 묻혔다. (...) 흉측한 모양에 평범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교회에서는 죄지은 여자들이 거주하는 곳에 안락함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 3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이 기숙사 (...) 태양이 세상을 환히 비출 시간에도 방 안은 항상 어두컴컴했다.

  소녀들은 숀 로스 수녀원에 도착한 그날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버려야 했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거친 청 제복을 입었다. 제복은 헐렁한 자루처럼 생겼는데 그들이 지은 죄의 수치스러운 징후인 부푼 배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발에 상처가 날 정도로 묵직하고 딱딱한 나막신을 신었다. 머리카락은 서캐가 생기지 않도록 짧게 잘랐고, 코바늘뜨기를 한 빵모자로 머리를 가렸다.

  소녀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본명이나 고향조차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이곳에서 소녀들의 삶은 비밀과 외로움, 수치심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소녀들은 말 그대로 가족과 사회를 위해 ‘격리’되었다.

  기숙사 소녀들의 하루는 매일 새벽 여섯 시, 수녀원의 직원이 불을 켜고 침대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담요를 홱 걷고 거칠게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소녀들은 보육원으로 가 아기들을 보살핀 다음, 여덟 시에는 미사에 참석했다. 임신하거나 갓 아이를 출산한 백여 명의 비쩍 마른 소녀들이 말없이 컴컴한 복도를 비척비척 걸어 내려가 수녀원 성당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마다 한명 혹은 그 이상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기절했는데, 수녀들은 이를 고의적인 반항으로 간주해 벌을 내렸다.

  미사가 끝난 후 소녀들은 일을 시작했다. 각자 세 가지 일 중 한 가지를 맡았다. 세 가지 일이란 수녀원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 보육원에서 아기와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 혹은 수녀원의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는 일이었다. 소녀들이 가장 바라는 일은 부엌일이었다. 고되고 근무 시간도 긴 일이지만, 음식 부스러기를 몰래 훔쳐 변변찮은 식사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육원에서 일하는 소녀들은 길고 하얀 로브를 입은 보육 담당 수녀들과 수녀들이 고용한 일반인 직원의 감독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밤낮으로 일하며 쉴 새 없이 아기들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고, 아이 어머니를 불러 모유 수유를 하도록 해야 했다. 수녀들은 아기가 먹을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적어도 1년간은 모유 수유를 하도록 지시했으며, 대개는 1년 이상 계속되었다.

  세탁실 일은 가장 인기 없는 일이었다. (...) 세탁실 안에는 물통들이 석탄불 위에서 펄펄 끓고 있었는데, 지치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여자들이 시트와 수녀복, 수감자들의 제복 더미를 가져와 부글부글 끓는 물속에 던져 넣었다.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나무 막대기로 김이 펄펄 나는 물통을 휘저어야 했으며, 맨손으로 젖은 리넨을 만지다 보니 손은 거칠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 수녀들은 소녀들에게 비벼 빨고 비틀어 짜고 다림질을 하는 것이 그들의 영혼에 묻은 도덕적 때를 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지만, 이 세탁일은 또한 수녀원에 수입을 안겨 주는 일이기도 했다. 성당이 정말로 영혼을 구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돈벌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세탁실의 오전 근무는 짧은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나고, 어머니들은 그때 짬을 내어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오후 근무를 마친 후에도 저녁에는 건물 안을 청소하고 그 밖의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뜨개질과 바느질 시간이었다. 소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덕분에 많은 소녀들이 대단한 재봉사 수준의 솜씨를 터득하게 되었다. 라디오나 책도 없었지만, 보육원에서 아기와 함께 앉아 있거나 주간 휴게실에서 젖을 뗀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간은―소녀들이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고, 평생 동안 남을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을 쌓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이러한 사랑을 허락해 주는 것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것 같았다. -pp.32~35

 필로리나는 해산할 때 아기가 다리부터 나오는 바람에 더욱 상처와 통증이 컸지만 죗값을 씻기 위해 진통제 한 알 먹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필로리나는 아기가 죽을까봐 무서웠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산 아기 앤터니를 낳았다. 로스크리 수녀원에서 죽은 아기와 산모들은 근처 들판에 묘비 없이 아무렇게나 묻혔다. 필로미나는 매일 앤터니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3년을 버텼고, 아들 앤터니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컸다. 그런데 앤터니의 이 사랑스러움이 비극이었다. 앤터니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애교 있게 뽀뽀하며, 한 살 어린 여자아기 메리를 친동생처럼 끔찍하게 여겼는데, 그 모습을 보고 메리를 입양하러 온 마지가 앤터니도 함께 입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3년이 지나면 아기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은 필로미나는, 예외 없이 친권 및 양육권 포기 각서 서명을 강요받고 절망한다.

아일랜드의 사생아들은 입양할 부부가 가톨릭 신자고, 아이 역시 신자로 키우겠다고 약속하면 최고 2000파운드까지 받고 팔았다. 표와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정부와 정치인들은 침묵했고, 무분별한 여권발급과 유리한 법 개정으로 적극 협력하기까지 하였다. 주 고객은 미국이었다. 유명 배우부터 자국에서 입양 결격 판정을 받은 문제 가정까지, 엄연한 인신매매를 죄의 씨앗을 성가정의 품으로 보내는 거룩한 사업이라 정당화하였다. 생모와 자식을 강제로 생이별시키는 것은 죄인과 죄의 씨앗이 받을 당연한 처벌이라고 여겼고, 종교의 반인륜적 행위에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앤터니와 메리는 중하위층과 노동자층이 많은 공화당 텃밭 지역인 미국 록퍼드에 입양되었다. 독일계 집안이었고, 이미 네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버지 닥 헤스는 의사였으며, 헤스 부부 역시 오랜 공화당 지지자였다. 이름을 그대로 쓴 메리와 달리 앤터니는 마이클로 이름을 바꿨다.

 

너 진짜 엄마 기억해? 진짜 엄마.

우리 진짜 엄마들은 우리가 나쁜 아이라 우리를 버린 거야.

진짜 엄마들은 우리를 미워한 거야. 그래서 우릴 멀리 보낸 거야. 나 오늘 나쁜 짓을 해서 엄마가 나한테 화냈어.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착하게 굴어야 돼. 만약 엄마가 우리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알게 되면, 엄마도 우리를 미워할 거야. 그리고 우리를 멀리 보낼지도 몰라.

그러니까 항상 착하게 굴어야 해. -p.132

 

마이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했다. 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괴로워했다. - p.141

 

모든 고아는 거부당해 본 경험이 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p.182

 

고아는 전체 인구의 고작 2~3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정신 병원과 소년원, 특수학교 수감자 중 30~40퍼센트를 차지하지. 또한 고아들은 비행, 성적인 방종,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아. 고아는 중독에 빠지기 쉬워.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것, 혹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을 벌충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지. 고아는 항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길 바라지만, 항상 언젠가는 자신이 거부당할 거라 생각하지.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고 자신이 아무 데서도 적응할 수 없다고 생각해. 생모에게 거부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지 자네 아들은 새 부모가 자신을 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내내 순종하고 따르면서 살아온 거야. 그러다 이제는 항상 말썽을 부린다고 했지. 그건 ‘당신이 날 버릴 거란 사실을 알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당신을 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이러한 행동을 ‘시험’이라고 하는데 꽤 극단적인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지. 이런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진 부류는 항상 인생을 망치지. 신뢰와 친밀감, 섹스와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어. 인생의 반은 기존의 사회에 적응하며 평범한 인생을 살려 안달하고, 또 반은 충동과 중독에 빠져들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pp.196~198

 

마이크와 직접 일하는 동료들도 교육받은 점잖은 사람들로, 공화당이 전국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편집증적인 동성애 혐오에 조금도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여성과 동성애자를 위한 평등권이나 낙태에 반대하는 운동조차 지도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저 유용한 아이템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이러한 캠페인에 보수적인 성격의 종파 신자들은 열광했고, 단순 무지한 사람들은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이크는 그러한 위선을 이해했다. 당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언제 어디서나 공화당 당원을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소수자 집단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라도 다수의 득표만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채택되었다. 따라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나 광신자 등의 소수를 제외하면 공화당을 운영하는 운영진들은 대개 재선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 p.390

 

마이크는 생모를 찾지 못한 것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았어. 그래서 아일랜드라는 실낙원에서 자신이 추방당했다고도 생각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때문에 안심도 되는 모양이야. 마이크는 한 번도 자신이 헤스 가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에게 아일랜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환상 같은 곳이야. 스스로 포근하게 감싸 주는 담요 같은 곳. -p.395

 

그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정당에 소속된 게이이자, 뿌리 깊은 확고함의 세계를 살아가는 뿌리 없는 고아였기 때문이다. -p.420

무려 520여 페이지에 걸쳐 1952년부터 현재까지 필로미나의 사연을 추적하는 <필로미나의 기적>은 무척 독특한 형식과 발상의 소설이다. 휴먼드라마의 형태로 전형적인 사회고발소설을 썼고, 굳이 장르를 구분하면 ‘논픽션소설’이라 칭해야 할 것처럼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화를 소재로 하였다. 일단 책 속의 모든 인물이 실명이며, 한 장이 끝날 때마다 현재 시점에서의 작가 마틴 식스미스가 등장해 저널리스트적이고 직접적인 코멘트를 덧붙인다. 그리고 제목과 달리 <필로미나의 기적>은 필로미나보다 마이클(앤터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필로미나와 함께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며 수집했던 자료들을 토대로, 입양 이후의 마이클의 삶을 재구성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마이클은 입양 트라우마로 발현 가능한 특이한 기질―불안정한 애착 형성과 관계 능력,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낳은 자기학대와 완벽주의, 중독 충동과 변태적 탐닉 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게이인 공화당원이었다는 것은 화룡점정이다.

  앤터니가 1955년 12월에 로스크리를 떠난 후, 필로미나는 이 주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수녀들은 그녀를 더블린에서 출발하는 페리에 태워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1956년 1월 14일부터 그녀는 리버풀 외곽의 비행소년을 위한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예수 마리아 성심수녀회는 수십 년간 옴스커크 소년원을 운영해 왔다. 몇 세대 동안 죄를 지은 소녀들이 그곳에서 소년들을 돌보며 하느님께 진 빚을 갚아 나갔다. 필로미나는 자신의 일을 싫어했다. 그녀는 소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운명 또한 동정했지만, 기회가 생기자마자 소년원을 떠났다.

  1958년 1월에 필로미나는 간호사 훈련을 받은 뒤 런던 북쪽에 위치한 세인트올번스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녀는 힐 엔드 병원의 정신병자들을 위해 일하면서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기는 끔찍한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녀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그녀는 매일같이 잃어버린 아이를 떠올렸고 꿈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리버풀과 세인트올번스에서 보낸 지난 12년간 그녀는 고통과 상실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서랍 한 개에 그곳에서의 기억을 가득 채워 넣었다. 아눈치아타 수녀가 브라우니 상자에 넣어서 준 조그마한 흑백 사진과, 아이가 처음으로 신었던 신발과 오랫동안 쓰면서 다 해진 크롬 버클이 달린 가죽 벨트, 한 웅큼의 까만 머리카락을 필로미나는 성물처럼 아꼈다. -p.514

<필로미나의 기적>에서 ‘기적’은 우리가 번역하며 우리 정서대로 덧붙인 것이다. 원제(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소설은 ‘기적’보다 ‘존재’에 중점을 둔다.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필로미나의 삶을 빠르게 보여주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하염없이 마이클의 삶을 보여준다. 마치 아일랜드의 정책과 가톨릭이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똑똑히 보라고 시위하는 듯한 모양새다. 휴먼드라마로선 전혀 반전 없이 예측한대로 전개되고, 작가가 저널리스트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려 좀 더 극적인 문체로 썼음에도 전반적으로 담담하고 이성적이다. 그럼에도 필로미나의 사연이 겨냥하는 실체는 세간을 술렁이게 하였고, 1950년대 벌어졌던 이 추악한 과거에 대해 작년 2월 아일랜드 총리 엔다 케니가 공식적으로 사과 표명을 하였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마이클이 게이에 모순적인 삶을 살게 되고, 양가족과 절연하고 생모를 찾는다는 점에서, 입양아에 대해 갖는 주요 편견을 강화하는 또 다른 사례가 될까 약간 걱정은 된다. 책과 영화 모두 국제적으로 히트했기에 더욱 걸린다.

 

   

필로미나는 자신의 비밀을 50년 동안 가슴에 묻고 애써 잊으려 하지만 실패하였고, 마이클은 입양된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사려 애썼지만 평생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였다. 천륜과 본능은 두 사람을 기적적으로 스쳐 지나게 하고, 기이한 인연으로 서로의 흔적을 찾게 하였다. 한 개인의 용단이 사회를 흔들고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그의 삶 자체가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우리 정서 식으로 해석하면, 기적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재와 삶 자체가 기적이다. 여전히 수천 명의 아일랜드 여자와 그녀들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서로를 찾고 있다. 작가는 그렇게 긴 서술로 채워 온 이 소설을, 미완성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후속을 염두에 둔 듯 한 애매한 서술로 결말짓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소설과 영화가 서로의 틈을 메우고 있지만, 여전히 작가가 언급한 소재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할 말처럼, 필로미나 사건이 안은 이슈와 교훈은 우리 시대가 매듭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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