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 오천 자로 세상 모든 비밀을 풀다
노자 지음, 정창영 옮김 / 물병자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도덕경(정창영 역)]

함께 공부하는 도덕경 - 학도와 선생의 사이에서

 

 

<도덕경>의 저자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 영화도 누릴 만큼 누려본 사람, 그 시대의 혼란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냐를 깊이 탐구한 사람, 그러다가 도와 덕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환골탈퇴한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천지의 도와 하나 되어 자유인이 된 사람이었으리라. 그가 현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 <도덕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누구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시대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며, 그의 가르침이 오늘 나에게 무슨 뜻이 있느냐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 p.307

노자는 정말 은둔하는 현자였을까, 노자와 도가와 도교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노자의 사상은 주자성리학에 그렇게 위협적인 것이었을까. <도덕경>을 다 읽고 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 속을 가득 채운다. 한번 그 고전의 전체를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앞으로 이 고전을 어떻게, 얼마나 건드려야 할까 과제가 생겼다. 노자의 인생은 불분명하다. 사상가인 동시에 교조로 떠받들어져서일까, 200여년을 살았다고 하질 않나 필요 이상 신화화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표현했다.”고 하였다. 노자는 평생 5천자 정도 되는 책 한권만을 남겼다. 도편과 덕편으로 나뉘어져 있어 혹자는 <노자>라고 부르고 누구는 <도덕경>이라 부르는데 같은 책이다. 그러나 그 5천자가 범인들에겐 결코 녹록지 않다. 수많은 역자와 연구자가 원문을 해석하고 다 다른 방대한 주석과 해설을 제시한다. 어떤 것이 '바르고 정확한' 해석인지에 대해선 늘 논란이고 정해진 바가 없다.  

단순히 원문의 직역 정도만 제시하는 입문자용 <도덕경>도 시중에 수없이 많다. 도저히 선택의 기준이 안 서 최대한 최신의 번역본을 보자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올 3월 중순에 출간된 물병자리 출판사의 정창영 역 <도덕경>이다. 독특한 이력의 역자이다. 전공은 신학이나 30년 넘게 동서양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했고 현재는 천문학에 빠져있다고 한다. <도덕경>의 경우 14년 전(2000) 같은 기획 의도로 시공사에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오늘에 맞는 가장 친근한 번역'을 표방하며 이번에 새 번역을 선보였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각 장마다 원문을 짝수 페이지에, 번역문을 홀수 페이지에 실었다는 점이다. 원문을 실으면서 해석 주석을 달아놓아 원문 직역과 저자의 의역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스포츠’, ‘에고’, ‘도를 체득해 환해진 사람등 당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나 역자만의 개성적인 해석을 보면 이 책이 추구하는 번역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정창영 역의 <도덕경>함께 공부하는도덕경이다. 81장 본문이 끝날 때까지 역자가 제시한 해석을 길잡이 삼아 독자 스스로 원문을 짚고 생각해 보면서 읽게 한다. <도덕경> 본문 자체보다 주석과 해설이 더 많거나, 해제자의 주관성이 너무 강한 <도덕경> 번역서나 관련서에 염증을 느꼈던 독자에겐 반가울 점이다. <도덕경>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이런 책으로 <도덕경>을 시작해 아무런 편견 없이 스스로 원문의 민낯부터 접하고 이해를 높이는 방법이 좋을 수 있다. 그렇게만 끝났으면 학도의 책이었겠지만, 맨뒤에 70여 페이지 분량의 해제를 실어놓음으로써 선생 역할도 약간 한다. <도덕경>의 문장은 촌철살인이나 쉽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는 있지만 느끼고 아는 만큼은 제각각이다. 먼저 <도덕경>에 빠져 탐구했던 사람으로서 역자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주고자 한다.

 

<도덕경>은 노자와 집필 당시 시대 상황을 알고 읽을 때 내용이 더 명확하게 들어온다. 주나라 왕실도서관 관장이었던 노자는 왕실용 정치처세서로 <도덕경>을 썼다. <도덕경>을 읽다보면 상편()과 하편()이 서로 뒤 바뀐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실제 군자의 됨됨이를 논하는 덕편이 먼저이고 이후 도의 의미를 깨치도록 도편을 뒤에 둔 책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덕경은 구전과 필사를 통해 후대에 전해내려오며 순서를 바꾸고 개인의 품성 수행서쪽으로 읽혔다. 춘추전국시대를 살며 노자는 기존 유가사상에 반론을 제기했고, 전쟁에 반대했다. 속세에 환멸을 느낀 은둔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현실 참여하는 지식인이었다. 노자는 공자를 사사했고, 그의 사상도 유가와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라 그 허점을 메우고자 하는 대안이었다. 박세당이나 윤휴처럼 노자의 관점에서 유학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수많은 유생들이 <도덕경>을 즐겨 읽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정창역 역자 덕에 처음 <도덕경>을 완독하면서 어떤 구절에도 표시를 할 수 없었다. 일독자에게 <도덕경> 5천자는 모든 장과 문장이 촘촘이 엮여 한 몸체 그 자체로 보였다. 고전은 오랜() 세월 널리 읽히고 살아남은 명저에 붙는 타이틀이지만 그만큼 그 수준이 높고() 읽기 고된() 책이다. 인문사회학 공부법 중 강독이란 게 있다. 텍스트를 거듭 읽다 보면 그 의미가 들어오고 새로운 것이 보이고 학문 수준이 깊어지는 것으로 대단히 오래되고 기본적인 공부법이다. <도덕경> 역시 이번 일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하였다. <도덕경>으로 괜찮은 책이었다. ‘읽어냄이 언젠가 읽음으로 바뀌는 때를 기다리며, 아장아장 첫 걸음을 떼는 어느 우매한 학생에게 길잡이자 벗으로 함께 해준 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노자를 닮은 책. 표지, 내지 모두 친환경용지로 제작한 센스!

표지가 무코팅이라 약해서 겉표지를 또 둔 상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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