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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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nimal Liberation(1975;미국)

연암서가의 2012년판 개정완역본은 2009년에 출간된 <동물해방> 4판의 번역이다.

 

 

 

[동물해방] 생동하는 혁명서 : 모든 동물의 해방과 안녕을 기다리며

 

 

 

 

 

 

동물 해방 운동은 현대의 여러 사회 운동들 중에서 강단 철학권 내에서의 토론과 연결되어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아닌 동물들의 지위를 고찰하면서 철학계에서는 자체적인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철학은 동물의 지위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도그마를 편안히 따르길 포기하고, 고대 소크라테스의 역할로 되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 p.409

 

"여성도 권리가 있고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면 짐승에게도 그래야 한다." <동물해방>은 1792년에 있었던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는 짐승을 위하는 게 아니라 인간(남성) 우위 관점에서 여성과 짐승을 동일한 지위로 놓고 비하·차별하는 발언이었다. 18세기 말 시작한 여성 해방론은 19세기 중반 흑인 차별 문제가 더해지며 발전한다. 그러나 대중 일반에 이러한 운동이 인지되고 실질적 성과가 나오는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여성의 권리나 흑인의 권리에 대한 법은 동물의 권리에 대한 법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화’에 대한 고민과 차별에 대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같은 동물이면서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는 ‘만물의 영장’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피터 싱어의 말처럼 "대부분의 인간들은 종차별주의자(p.39)"이다.

 

 

종차별주의는 능력적 우월성을 기준으로 종 간 우위와 열위를 나눌 수 있으며 마땅히 우월한 종은 다른 종과 차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가장 우월한 종은 당연히 인간이며, 그래서 인간중심적 패러다임을 정당화한다. 종차별주의는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월 정도에 따라 차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우월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지능·장애·성별·인종 등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피터 싱어는 이러한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며 “동물 해방은 곧 인간해방(p.23)”이란 입장에서 논지를 전개한다. 1975년 <동물해방>이 등장하기 전까지 ‘동물해방’이란 개념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오늘날 동물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 재밌는 것은 흔히 동물운동가들이 보이는 연민이나 애정의 정서가 피터 싱어에겐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철저히 철학적이다.

 

 

평등은 도덕적 개념이지 사실에 관한 단언이 아니다. (...)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다. 도덕 철학의 한 학파인 개혁적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은 "모든 사람은 각각 한 명을 간주되어야 하고, 아무도 그 이상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정식을 이용하여 도덕적 평등의 핵심적 토대를 자신의 윤리학 체계 속에 편입시켰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개별 존재들의 이익은 다른 존재들의 이익과 다를 바 없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또한 동일한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p.33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벤담은 동물의 처지를 흑인 노예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그리고 “빼앗겨서는 안 되었지만 폭정의 손에 빼앗긴 권리를 여타의 동물들이 다시 획득할” 날을 기대하면서 ‘인간의 지배’를 합당한 정치라기보다는 폭정이라고 비판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pp.346~347

많은 철학자들과 저술가들이 이익 동등을 기본적인 도덕원리로 내세웠으나 벤담 등 일부만이 그것이 우리 자신 외의 다른 종에게도 적용된다고 고려하였다(p.36). 피터싱어의 철학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동물해방론 역시 벤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벤담은 이익을 갖고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의 요건으로 쾌고능력을 꼽았다. 쾌고능력은 행동, 신경계의 특징, 진화적 유용성 세 가지 측면에서 입증할 수 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쾌고능력이 있다(1장, 6장). 그래서 쾌고능력이 없는 식물은 해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유전자 조작이나 과다 농약화학비료 사용 등은 식물 학대나 착취가 아니며, 식물은 어떤 죄의식도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피터 싱어는 ‘종차별의 반대’가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분명히 할 것은 ‘동물해방’이란 개념의 중의적 의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간의 종차별주의의 희생양인 ‘동물(Animal)’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이다. 그러나 동물(Animal)이 아닌 짐승(Beast) 등의 대체어를 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결국 인간도 동물이며 그래서 동물해방과 인간해방을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동시에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종차별주의가 동물에 가하는 대표적 착취영역으로 피터 싱어는 각종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을 든다(2장, 3장). 참고는 가능하더라도 이종의 반응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굳이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생명에 치명적인 것을 알 수 있으면서도 필요 이상의 동물실험을 너무나 무감각하게 행하고 있다. 모든 도살행위가 기본적으로 반인도적이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운영되는 공장식 축산과 육류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증가시키는 거대 식품산업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환경에 있어서도 큰 문제이다.

 

작금의 현실에 반대하기 위해 모든 동물 실험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직접적이면서 긴급한 목적에 필요하지 않은 실험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여타 연구 분야에서는 가능한 언제이건 동물 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p.87

 

독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한 종에서 확인되는 사실로부터 다른 종에 대한 사실을 추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이라고 생각해 왔다. - p.114

 

축산 잡지는 동물의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물론 동물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관행을 피하라는 기사가 간혹 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권고하는 이유는 동물들이 고통을 겪을 경우 체중 증가율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장주들에게 가축을 도축장으로 끌고 갈 때 가급적 살살 다루라는 충고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상처가 난 고기의 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p.177

횡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횡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p.317). <동물해방>에서도 종차별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많은 부분은 할애한다(5장). 구약성경-고대 그리스-아우구스투스-토마스 아퀴나스-르네상스(인간중심주의)-계몽주의시대-현대로 이어지는 , 2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동물에 대한 서구의 사유는 인간이 동물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데카르트는 동물들이 자동기계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p.41). 이러한 서구의 사유가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사유 방식이 되었음(p.318)을 피터 싱어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여긴다. 적어도 동물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동양이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나마 서양에서 긍정적인 사상가로는 가톨릭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외 생물들의 복리에 관심을 가졌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있다. 그러나 모든 생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 기반을 두고 동식물과 생물·무생물을 구별하지 않는 그의 사상은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는 점에서 피터 싱어는 비판한다.

 

 

피터 싱어는 “사유 없는 실천은 맹목하고 실천 없는 사유는 공허하다.”는 칸트의 말을 삶으로 몸소 보여주는 철학자이다. 흔히 실천윤리학으로 표현하는 피터 싱어 철학의 준칙은 ‘사상과 행위가 불일치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동물해방론은 채식주의로 귀결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간 아닌 동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식사 시간에 이루어진다(p.173). 어릴 때부터 육식을 하면서 동물을 사랑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동시에 갖게 되는데 대부분 그 모순에 대해 갈등하지 않는다. 적어도 잡식동물의 딜레마(동물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먹는)를 인지할 수 있다면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위해 쾌고능력이 없는 식물만을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피터 싱어가 주장한다. 대량축산이 야기하는 환경오염 문제와 단백질 등 영양분 생산효율성을 고려했을 때도 채식주의가 바람직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비건만을 인정한다. 피터 싱어는 100% 식물성 음식 섭취로도 충분히 모든 필요 영양소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동물을 죽이는 것은 그 자체가 마음이 괴로워지는 행위다. 만약 우리 손으로 먹을 동물을 직접 죽여야 한다면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p.264

 

우리는 “동물을 먹는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라고 물어서는 안 되고, “이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p.279

 

인간이 먹는 1파운드의 동물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송아지가 먹는 단백질은 무려 21파운드이다. 1에이커의 땅에서 콩을 재배하면 300에서 500파운드의 단백질을 얻지만 가축을 키우면 40에서 55파운드의 단백질만 얻는다. (p.287)

 

가축에서 온 고기를 식물성 음식으로 대체한다.

구할 수만 있다면 공장식 농장에서 온 계란을 방사한 닭의 계란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계란을 먹지 말라.

우유와 치즈를 두유, 두부 또는 다른 식물성 식품으로 대체하라.

하지만 유제품이 들어 있는 모든 음식을 피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 p.305

 채식주의자가 소수이고 채식주의와 그 장점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그 단점과 고민부터 부각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잘 못 느끼지만, 사실 채식주의는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이다. 채식주의가 적게는 다섯에서 많게는 열 개 이상까지 종류가 나뉘고, 가끔씩 채식주의자와 그 자녀의 영양실조나 사망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피터 싱어 역시 모든 사람들이 식습관에서 종차별주의적 요소를 일시에 제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인정한다. 대신 문제의식을 갖고 그가 제시하는 지침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려고 노력하고 그 생각을 남들과 공유하려고 한다면 동물해방운동에 동참한 것이라고 본다. 책에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육류의 통소비 같은 것들이 잡식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이 고려해볼 수 있는 예이다. 피터 싱어는 그 스스로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풍부한 사례와 읽을거리를 소개하며 본문을 썼다.

 

<동물해방>이 흥미로운 것은 동물해방운동의 효시인 동시에 끝없이 생동하는 혁명서라는 점이다. 책 스스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1975년 첫 출간 이후 1990년, 2002년 그리고 이번 2009년판까지 3번 개정하였고, 그가 살아 있는 한 또 다른 개정판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주기적인 개정을 통해 이전 판들 동물 해방 문제에 있어 학계 및 관련 산업의 변화와 연구 성과들을 추가해왔다. 2009년판이 이전 개정판과 다른 점은 그에서 더 나아가 주장도 한 가지 수정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더 많은 가축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는 주장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에서 고민하는 입장으로 생각을 바꿨다. 어떤 결론을 내릴지, 또 어떤 새로운 사유들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한편 그의 저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발전하는 그의 사유의 총체를 반영하는데 <동물해방>의 문제의식의 경우 <죽음의 밥상>이나 <사회생물학과 윤리>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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